쿵, 쿵 현관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깼다.
"총각 있어? 준석 총각! 거기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아이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왜 전화도 안 받고 문도 안 열어 증말짜증 나게"
현관문 손잡이가 덜그럭거리고 몇 번 더 현관문에 손 망치를 내리친 후에야 멀어지는 발소리가 났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시간은 두 시였다. 받지 않고 읽지 않은 문자들의 숫자가 찍혀있다.
준석은 창가로 가서 커튼을 살짝 들어서 하늘을 보았다. 땅에서 낮게 위치한 시선으로 보는 거리와 하늘의 모습은 자못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주인아주머니의 발이 보인다 준석은 얼른 커튼을 펼쳐 창문을 꼭 가리고 멀찌감치 물러섰다. 침대 밑바닥에 누워 가만히 있었다.
창문을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알 수 없는 말소리와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릴 듯 말 듯 하늘이 찌푸린 채 구름만 몰려들다 흩어졌다.
며칠이고 계속 이런, 날이면 사람이고 집이고 세상은 온통 습한 기운들로 서서히 잦아든다.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문밖으로 얼마나 세상이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세상이란 걸 습기가 세상을 다 지배하고 나서야지만 그제야 인정한다.
"혹시 5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
"야 나 이제 유튜버를 다시 시작했어 베그 게임도 하고 곧 다른 것도 올릴 거야"
"다음 달, 여유 있게 그래 다음다음 달에는 갚을 수 있을 거야"
"내 실력 알지 이번에는 홍보도 엄청나게 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같은 내용의 문자를 친구들과 전 여자 친구까지 여러 곳으로 복사해서 보냈다.
"병신, 일을 해 방구석에서 헛지랄하지 말고."
"ㅠㅠ 미안 나도 거지임"
"말도 버버거리면서 베그만 잘하면 뭐 하냐? 차라리 먹방이나 눕방을 해라 너는 개 잘 어울림"
'아 절라 무정한 새끼들….'
준석은 주위에 자기를 인정하거나 동정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제는 화가 나던지 섭섭하다는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너희들은 내가 우습겠지, 나도 내가 이렇게 될지는 몰랐으니까 조금 억울하긴 하지 그냥 난 그대로 별짓을 한 건 아니잖아. 어느새 요 모양이 된 건지 나도 어리둥절하긴 하지 솔직히 조금 무섭다. 그런데 꼼짝을 못 하겠어! 너희들은 이해가 안 되겠지 그래 안될 거야.'
준석은 스며들고 익숙 해저 버리는 공포를 안고 살고 있었다. 가끔은 너무도 익숙해져 버려서 감각의 기능이 사라진 듯했다.
무섭고 험한 것들은 인생에서 정면으로 당당히 오는 것이 없었다. 조금씩 야금야금 잠식하는 것들이 진정 두려운 존재들이다.
이런 가난이나 곤궁을 누가 일부러 찾아다니며 챙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온 걸 준석도 세상 사람들도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준석은 침대 위로 다시 누웠다.
하루에 대부분을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잠깐 앉는다. 소가 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소가 돼도 그만 아닌가. 준석은 어쩔 수 없이 눕는다. 좁은 방이라고 서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닥치면 다 된다고 안 하고 뭐라 하는 거지 준석은 와식생활을 비난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며칠만 내 방에서 지내보라고 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준석이 잘하는 것 중 몇 안 되는 베그게임인데 자신의 현란한 플레이를 보고도 그런 악평을 하다니 친구 놈에게 쌍욕을 퍼부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준석보다 더 잘하는 플레이도 많고 멋지게 편집하고 개그맨 싸다구칠만큼 멘트를 잘 치는 애들이 차고 넘쳤다. 그래도 그렇지 친구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섭섭함에 우울해졌다.
준석은 문득, 자신이 여자였다면 더 쉽게 벌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짧은 옷을 입고 흔들거리기만 해도, 돈은 억수로 쏟아졌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으면 크지 않은 키도 어정쩡한 외모도 화장으로 다 커버할 자신이 있었다.
'미련하게 먹는 먹방도 그렇고 아니 당장 뭘 차려 먹거나 배달할 돈도 없으니 먹방은 안 되겠군! 찐다 같은 젊은 남자가 누워있는 걸 볼 사람도 없을 테고 갑갑하네 휴,아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감긴다.'
자도 자도 졸려….
"서걱, 서걱."
낮지만 분명하고 선명한 소리였다.
발밑인지 바닥인지 아님 귓가인지 갑자기 소름이 끼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준석은 꼼짝을 안 하고 다시 누워서 가만히 있는다. 별일이야 있을까? 그냥 착각이었나 꿈을 꾼 건지도 모르겠다.
자리에 누워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잠이 들고 싶어 심호흡을 깊게 했다.
"서걱서걱 우득우득"
'틀림없는 소리다!'
발밑에서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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