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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by 승환

작년은 버라이어티 한 한 해였다.

정치적으로는 사악함을 넘어 인간자체가 불쌍하고 이상하기까지 한 못난 대통령의 계엄이 몰고 온 큰 충격과 불안 공포가 지배했었고 그를 호위하며 잇속을 차리는 많은 세력들이 정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계엄을 막아선 시민들을 보았다 눈물겨운 역사의 한순간을 지켜보았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산자가 아닌 죽은 자가 산자를 구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작년 겨울 여의도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온 시민들 많은 사람들을 보고 글은 그냥 인쇄로 책 안에만 남아 있지 않고 거리를 도시를 온 나라를 지구를 떠 돈다는 믿음을 확인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있었던 저녁은 들뜬 사람들의 단톡방에 오가는 글들이 생생하다.

순식간에 저녁에 카톡과 온갖 sns에서는 소식을 옮기는 사람들의 알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한강 작가의 책을 전권 온라인으로 구매를 했다.

경박하고 속물적 일지 몰라도 이 정도의 사치는 한강작가의 축하를 위한 세리머니로 어떠랴 싶기도 했다. 법정스님이 입적하시기고 나서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사기는 두 번째였다.

별별사람이 다 많아서 별별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한강작가의 수상에 대해 시기와 정치와 지역을 엮어 폄하 내지 비난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거짓으로 편향되게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이야기했다고 일부 사람들은 축하보다 폄하하기를 주저 않는 모습에 개탄스럽기도 했었다. 작가의 능력이나 글을 폄하하며 글 자체로는 더 잘 쓰는 소설가를 자기는 열명을 뽑을 수 있다는 작가의 sns를 보고 팔로우를 끊기도 했다.


한강작가의 책들이 한동안 정말 반년이상 독서모임의 도서로 선정되어 여기저기서 읽히고 또 읽혔다.

빛과 실은 노벨상 수상 이후 나온 책이다. 이 책으로도 서로 다른 독서 모임에서 두 번의 독서토론을 했었고 두 번째 다시 천천히 읽으니 좀 더 글들이 선명히 다가왔다.


시인은 작가는 타고나는 것은 아닐까 어린 유년의 작가가 쓴 시를 읽고 감탄과 절망을 같이 느낀다.


사랑이란 어디에 있을까? 팔짝팔짝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그 어린 나이에도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인연과 관계의 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 부러운 감상이었다.


그녀가 시인으로 그것도 어린 나이에 등단한 재능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깜박했다 한강 작가의 시는 과하지 않고 다정한 듯 무덤덤하게 가벼운 듯 중량감이 있어서 좋다


나는 오십 년 늙고 코트는 이십 년 늙었네

함께 이별한 것 끌어안은 것 간절히 기울어져 붙잡았던 것 그러다 끝내 놓친 것 헤아릴 수 없네

-나와 코트 한강 시중에서


50년 된 시인과 20년 된 코트의 비유는 코트만큼 오랜 시간 작가가 붙들고 있던 어떤 상징은 아닐지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작품일 수도 있었고 그것은 글일 수도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한시름 놓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은 낡은 그러나 친숙한 코트처럼 어쩌면 평생 가지고 가고 입어야 할 옷은 아닐까 하는 제가 한강작가랑 비슷한 연배라서 코트의 비유가 다가왔다. 코트는 나를 감싼 외부에 보이는 외적인 것이지만 사실 나를 보여주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공감.


좀 더 많은 시가 읽고 싶었으나 조금 아쉽다 한강작가의 새로운 시집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유년의 기억들과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연설문 그리고 시들이 끝나고 정원생활을 하는 작가의 일상이 일기처럼 써내려 져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데면데면 지루했던 내용들이 다시 찬찬히 읽어가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정원생활을 하면서 거울이용한 것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삽화를 보면서 매우 몽환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이 자라나듯 글을 쓰는 것은 뿌리를 심고 기다리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십여 년을 생각하고 마음에 품고 쓰는 동안의 긴 시간을 버텨내는 것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빛과 실에서 실에 대한 것 사람의 마음은 단절되고 고립될 수도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건 그냥 가만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사물과 식물과 살아있는 것들의 공감과 소통을 생각한다.

유년시절의 기억도 나고 작가의 하루하루를 엿본 일기 같아 그녀가 더 친숙해진다.


정원에 관한 이야기들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그때 나는 무엇을 하나 보고도 상상력이 올라오고 심심할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찰나적으로 지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

오래도록 그렇게 꽃을 나무를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글을 쓰고 생각이 깊어지기 위하여서는 좀 더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마음을 열고 보아야 하는데 그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화분을 키우고 식물을 키우지만 죽지 않을 만큼 물을 주고 그냥 알아서 살거라 무심하게 내버려 둔 적이 많았는데 분갈이나 물 주기 들여다 놓고 내놓고 이런 일들이 너무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만 했는데 정말 식물을 자세히 보고 교감할 수도 있었는데 못한 것 같다. 어떤 날은 몹쓸 짓도 했다. 겨울에 그냥 방치해서 죽도록 내버려 둔 화초도 생각이 났다. 생명을 아끼는 마음보다 귀찮음이 더 컸고 죄의식 같은 것이 없었다. 생명은 너무 가볐게 생각하고 대했다. 새로운 것들 예쁜 것들 비싼 것들에 치여 오래된 것들을 소홀히 하고 구박했다. 한강작가의 정원 가꾸는 일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일이라 아무나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를 지켜내는 일 천천히 오래 보는 일 느끼는 일이야 말로 나를 깨우는 일일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빚어내는 일 같다는 생각.

머릿속의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 감정들은 형태도 없고 나만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인데 이것을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말을 해야 무엇인가 뚝딱 나오는 것 같다. 그중에 글을 쓰는 것은 빵을 만들듯 머릿속 반죽으로 빚어내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게 주는 일이 아닐까 어떤 이는 크로와상을 어떤 이는 쿠키를 식빵을 도넛을 내놓으면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일 그것으로 나누고 교감하고 공감함으로 혼자라는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떨쳐내는 일을 하는 것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머릿속에 반죽이 너무 많이 생겨서 빵을 구워야 하지 않을까 모른다.


북향집이고 아주 작은 마당있던 우리집, 너무 작아 부끄러운 기억들

촌스럽게 수세미넝쿨이 담장위 옥상에 꽃을 피던 시절

빗소리를 듣던지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어도 하루는 길기만 했던 기억

골목보도블록에 낀 이끼 비 오는 날 흙냄새

집 앞 공터의 해바라기 사루비아 꽃


나에게도 있었던 빛과 실을 생각한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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