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동경은 빵이었다.
그 시절 간식이란 게 사실 싸구려티가 나는 동네구멍가게에서 파는 주전부리가 대부분이었으니 제과점의 빵은 신세상이었다. 달기는 어찌 달고 부드럽고 입에서 녹는지 맛뿐만 아니라 멀리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유럽의 풍요로움과 문화를 입으로 느끼는 일이었다.
생긴 거로 봐도 빵빵한 얼굴이며 빵돌이처럼 생긴 나는 요즘 빵을 거의 안 먹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탄수를 기피하는 것도 있지만 빵값이 좀 만만치 않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실상 빵값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먹거리 가격이 어마무시해졌다. 경기는 어렵고 소득은 정체되어 있는데 모든 것이 가격이 올랐다.
집값은 말해 무엇하며 생필품과 외식물가는 가히 살인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흔한 삼겹살도 고등어 오징어등 어린 시절 흔한 생선가격도 오르고 제절이면 박스로 사 먹던 귤이며 사과 그리고 여전히 비싼 수박, 싸고 흔했던 참외까지 한 번 사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요즘은 빵을 억수로 사 먹고 있다.
럭키밀이라는 앱을 알고 나서 당일 팔고 남은 빵을 반값이하로 파는 것을 구매 중이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마포 홍대부근은 빵집이 편의점만큼 많고 흔한 동네인지라 이런저런 빵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뭐든지 투머치라 한 번 맛을 들인 나의 빵 폭주를 아내는 못마땅해하면서 내 용돈으로 사 오는 빵에 식비를 아끼는 효과를 보건 인지 한 두 번 잔소리를 하다 만다.
아내가 좋아하는 에그타르트나 식사빵용의 곡물식빵, 그리고 바께트나 깜바뉴 같은 것을 사 오기도 하고 좋아하는 도넛도 산다. 올드페리 같은 도넛은 사실 두고 나중에 먹으면 제 맛이 안 난다. 그렇다고 그 단것 하나 먹으러 일부러 행차하기도 귀찮은데 알아서 대령을 하니 잔소리가 쏙 들어갔다.
열 번을 채우면 보냉가방을 준다기에 목표를 채우고 이제는 슬슬 생각날 때만 앱을 둘러본다.
실상 음식이라는 것이 두고 먹어서 좋은 것은 별로 없다 바로 만들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많은 빵집들은 당일 만들고 당일판매를 목표를 하지만 남는 것들을 먹어치울 수도 없고 누굴 주기도 그렇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나눔이라는 것을 실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눔이 많아지면 자신의 제품이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있고 매번 할떄마다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작은 빵집들은 홍보의 목적도 분명히 있어서 원가격의 절반으로 할인한 오천 원에서 만원 사이의 돈을 받지만 인심 후하게 넉넉히 담아주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다 보면 어느 빵집이 정말 고수이고 고퀄인지 비교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입만큼 간사한 것이 없어서 대번에 판결이 난다.
아직 몇 달이 안되었기에 인심이 후하지만 사실 그런 걱정도 한다. 할인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저렴한 빵을 미리 만들어 놓고 판매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는 않을지. 그런데 그것이 기우인 것이 사람들은 귀신 같이 다 알아차릴 것이다.
빵하나 싸게 먹는다고 이리 요란스럽게 하는 나를 보면서 솔직히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우리는 예전보다 정말 없던 어린 시절보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사는 게 퍽퍽할까?
지금 시절이 역사 이래로 보통서민들의 삶이 가장 풍요롭다는 말이 수긍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 옛날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 올리면 의식주의 풍요는 과거와 비할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쓰고 입고 자는 것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나 지금은 별반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한정된 재화는 우리가 마음껏 쓸 수 없기는 매한가지인 듯하다.
절대적인 수준은 올라왔으나 우리의 기호와 눈은 높아지고 상대적인 부족과 불만이 가시지 않는다.
시장의 질서는 누군가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인지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십 년 주기의 경제공황이나 자본주의 속성상 무한한 발전을 향한 성장그래프는 있을 수 없고 한 번씩 변곡점을 맞고 그래프의 선형은 우상향에서 횡보를 하다 꼬구라드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는 옷이나 사는 집은 어쩔 수 없어도 우리 인심이라는 게 먹는 것에는 인심이 후했다.
배고픔의 고통이나 서러움을 가장 무서워했고 인류애라는 것의 발현이랄 것 없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활동, 하루에도 쉬지 않고 세끼 찾아 먹는 일에는 공통의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도 옷이나 신발 사게 십만 원만 달라는 사람도 없지만 달라고 해도 줄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돈이나 저 돈이나 비슷해도 친구나 지인에게 밥값 술값을 십 만원 쓰는 것을 우습게 쓰는 것을 보면 먹는 것에는 너나없는 인류애를 느낀다.
회사에 사장실이나 임원실이 더 고급지고 멋져도 뭐라 하는 직원은 없다. 비싼 공용업무차를 써도 그러려니 한다. 단 회사식당이나 밥을 먹을 때 직급 따라 메뉴가 다르고 먹거리가 차이가 나면 우리는 분개한다. 먹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틀림없이 공산주의다.
어린 시절 입는 옷을 나눠주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맛난 것을 가지고 와 먹으면 무리에서 왕따가 된다. 깜보니 뭐니 하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어야 무리에서 인정을 받았다. 도시락반찬통 뚜껑을 닫아놓고 하나씩 꺼내먹는 친구를 비웃었다. 내걸 내가 먹는데 이리 눈치를 보는 게 억울한 일이지만 적어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차별이나 독식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였다.
같은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식구라 한다. 건달들이 말하는 어디 식구 어디식 구라는 말은 정체성을 나누는 말이기도 해서 우리는 너나없이 한편이고 동지라는 것을 보여주려 회식도 하고 만남이란 게 주로 먹는 일이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시장통의 길거리 음식이나 서민음식을 먹는 퍼포먼스를 하는 정치인들의 연례행사는 끊이지 않는다.
세상은 부유해졌지만 기본적으로 써야 될 치러야 될 비용들도 따라 올라서 요즘은 밥 한 끼 사 먹는 일이 부담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서넛이고 부모를 모시고 살던 대가족들은 한 달에 쌀 한가마를 먹는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밥을 그리 많이 먹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는다.
육류소비가 늘고 밥이 아닌 먹거리들의 늘어나다 보니 어느새 밥을 한 끼도 안 먹는 날도 늘어난다. 개중에는 간식처럼 먹었던 빵을 밥처럼 대용하기도 하니 백반집보다 빵집이 더 많이 보이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슈퍼에서 파는 공장빵이 아닌 제과점 빵은 일 년에 몇 번 먹어보기도 힘이 들었는데 이제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빵도 시시해지고 개인이 하는 맛집 베이커리 빵이 아니면 안 먹으려고 한다.
어린 마음에 어른이 되면 꼭 해봐야지 하는 게 청춘물 영화에 나오는 형이나 누나처럼 찐만두를 판으로 열반즘 쌓아 놓고 먹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 가는 빵집의 빵을 실컷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비쌌고 내가 어른이 된 지금 빵 값은 역시 버겁다. 소원풀이 한다고 십만 원 이십만 원어치 빵을 사 먹을 수는 없고 간간이 한번 사 먹으려고 하면 살짝 놀라곤 한다.
빵이 비싸봤자 이제는 우리도 먹고살만한데 싶지만 비싸다 많이 비싸다. 백화점 지하 푸드코너에 파는 빵은 그러려니 했고 시내 몇 곳 없는 고급제과점들은 많지 않았다. 유명 제과셰프가 만들고 멋진 인테리어에 비싼 동네에 수입한 고급 식자재를 사용해서 비싼가 그러려니 해도 밥값보다 비싼 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신라제과니 독일제과 몽블랑빵집 이런 정겨운 이름들의 빵집만 가보다가 결혼 전 총각시절 이런저런 모임에서 빵집 투어가 여자들 사이에 붐이 일기도 했다. 하남의 무슨 빵집이니 오월의 종이니 성북동 어디니 몇 곳 안 되는 그렇지만 대형베이커리의 시초 즘 되는 빵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강진에 갓 생긴 패션 5를 갔었을 때는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손바닥보다 작은 빵 하나가 짜장면 값이었던 도대체 몇 개를 먹어야 나의 배를 채울 것인가 아무리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지역마다 유명빵집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성심당 이성당 등등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로컬의 빵집들을 헤매는 마니아들도 있었다. 지금도 sns를 떠도는 사진과 영상마다 빵집들은 새롭게 자꾸 늘어만 간다.
이제는 지방으로 도시의 외곽마다 대형 베이커리카페가 넘쳐난다.
누군가는 땅을 많이 가진 부자들이 자식들에게 증여목적으로 사업을 차려 운영을 시킨다고 하기도 하지만 십 년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경쟁이 되고 많은 빵들이 나오면서 품질이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고급빵에 맛 들인 소비자를 위해서 저렴해도 맛은 안 저렴한 빵들이 나올 것이다.
어려운 시기이고 경쟁은 늘 치열하기만 한다. 사업이 장사가 성공하기까지 몇 집이나 살아남을지 모른다. 대부분 젊은 사장들은 친절하고 열정이 넘친다.
자영업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을 견디는 빵집 사장님들에게도 작은 유행이 점점 커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총을 쏠 때 나는 소리를 우리는 빵이야 빵빵한다.
지금 우리는 주변에서는 빵, 빵, 빵이야를 외치는 베이커리들이 전쟁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