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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샤프란 꽃이 다시 피었다.

by 승환

9월은 샤프란 꽃이 다시 피었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 오래갈 것이라 한 일기예보만큼 체감상 여름이 그리 덥지 않았다. 많은 비가 내릴 거라던 장마도 별 존재감이 없었다. 물론 내가 사는 곳만 그랬으니 사는 터가 다른 이들, 아래 녘에서 물난리가 났고 호우로 걱정으로 보낸 이들이 있었지만 서울은 비가 찔금거리다 그치고 몇 번을 계속 반복했다. 그 비가 그치면 이제는 가을이 성큼 오리라 기대를 했지만 양치기소년처럼 가을은 올 듯 말 듯 오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내린 비가 온 후에 다음날 아침은 제법 선선해졌다. 계절은 늦어지는 일은 있어도 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선선해지는 날씨에 옆지기와 저녁에 산책을 오래간만에 나갔다. 저녁에 체육센터로 운동을 다니다 보니 하루에 짬이 나는 시간이 없었다. 특별히 열심히 산 것은 없었지만 하루하루 쫓기듯 보내고 보면 마음도 몸도 지친다. 어쩌다 보니 계절이 지나는 길목을 지나고 숨을 돌린다. 모처럼 같이 땡땡이를 치기로 하고 저녁밥을 간단히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신촌로터리를 찍고 경의선 숲길을 지나서 오래된 구옥들이 있는 신수동 염리동의 좁은 골목도 힐긋거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골목의 좁은 길 한편에는 의례 화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집이 보인다. 집만큼이나 오래된 사람이 살 것이다. 복덕방 앞에도 미용실 앞에도 한두 개씩 또는 화원인지 상점인지 구분 안되게 많은 식물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이름을 아는 화분을 보면 괜히 반가워 한번 더 눈길을 주곤 한다. 우리가 언젠가 키웠었던 꽃나무와 키우고 있는 꽃들을 보고 묘한 동질감에 흐뭇해진다.

대로변의 멀끔한 상가 앞에서는 지저분하다고 절대 보이지 않던 화분들이 골목골목에는 숨어서 자라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식물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무엇 때문 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멀끔하고 예쁜 화분도 아니고 투박한 고무화분이나 스티로폼 다라이 같은 것에 이것저것 심어서 내놓은 화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질색을 했었다.

우울한 노년을 보는 것 같아 보였다. 작은 철문을 열고 늙수레한 할머니가 튀어나올 것 같고 궁색하고 왠지 눅진 가난의 그늘이 비치는 것 같았다.

'외국에 집 앞의 꽃들은 다 이뻐 보이는데 우리는 왜 지저분해 보일까?' 혼잣말처럼 한 말을 듣고 옆지기가 한 마디를 거든다. "당신 취향이랑 비슷한데 뭘 그래? 당신은 원래 살짝 할머니 같은 취향인 거 몰라? 집에 화분들 내가 치우라고 하지 않았으면 이 골목 앞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영감님도 아니고 할머니 취향이라는 소리는 정말 듣기 싫었지만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할 즘 초기에는 직구에 맛을 들여서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사들였다. 메이시스니 아마존에 올라오는 할인된 식기며 찻잔들을 막 사들인 이유는 한국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 하나였다. 옆지기가 좋아할 문향이나 취향은 고려하지 않았고 사고 보니 제다 꽃무늬였다. 빌보며 레녹스 웨지우드 같은 디너세트가 세일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없는 것일 텐데 내 눈에는 꽃무늬나 요란한 것들이 다 예뻐 보였다. 도자기나 커피잔, 피겨들까지 쓸데없는 소비를 하고 나중에 다 팔면 된다고 했는데 완판은 못했고 정리하는데 십 년은 걸린 듯했다.


십여 년 전 집을 짓고 이사를 왔을 때 그때는 젊어서일지 겉멋에 취해서 비싼 화분이나 화초를 사들이기도 했다.

한 두 개 선물을 받고 사들이다 보니 이상한 욕심에 눈이 멀어서인지 아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꽃들이나 식물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화분을 자꾸만 사들인 적이 있었다. 인테리어 화보에서 보던 모던하고 식물과 조화로운 뭔가 있어 보이는 삶을 꿈꾸었던 것 같았다. 알로카시아의 넓고 풍성한 잎들이 하늘거리고 벤자민나무의 늘어진 줄기에 달린 잎들의 색이 초록으로 빛나는 상상을 했다. 나름 인테리어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 내 눈에도 보기 좋으니 다른 이들도 좋아하리라 생각도 들고 과시욕도 없지 않았다.

투머치 김이라는 별명에 맞게 아내의 눈치를 받으면서도 이것저것 호기심으로 집으로 들이다 보니 좁은 집에는 공간이 모자라 계단참이며 여기저기 화원처럼 화분들이 뒹굴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테라스와 옥상으로 끙끙거리며 옮겨 놓고 찬바람이 불면 실내로 들이는 일은 하루 온종일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잎들은 왜 자꾸 떨어지고 꽃들은 금방 피고 시들고 떨어지는지 며칠이 안 돼서 늘 빗자루를 들고 쓸어담아야헀다.

하지만 몇 해 가지 못해 웃자라기 시작하는 화초들은 골칫거리가 되고 수형을 잡아주고 분갈이를 한 번씩 해야 할 때마다 힘들어 방치를 하고 나니 기괴한 식물들이 되어버렸다.

빨간 잎사귀 같은 예쁜 꽃이 피는 부겐베리아는 넝쿨처럼 키가 위로 오르더니 3미터 가까이 되어버렸고 색이 고운 일본장미는 시름시름 앓고 말라갔다. 알로카시아는 뭐가 불만인지 삐딱하게 옆으로 크고 자꾸 새끼를 쳐서 한 화분에 잎대가 두세 개가 삐져서 같이 자라고 있었다. 란타나의 작은 꽃알갱이들이 떨어져 내리고 줄기가 5미터가 되는 호야라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기괴한 편력이었다.

치자꽃, 영산홍, 금귤, 수국, 국화, 몬테스라, 군자란 등등 이름도 가물거리는 거쳐간 식물들은 종류만 많았지 무엇인가 마음에 교감이 남는 것이 없었다. 애정이 없는 연애와 같은 시간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너무 잘 자라서 또 어떤 것들은 자라지 못해서 결국은 나의 가드닝은 싫증이 나고 마음에서 멀어졌다. 살때는 그래도 다 돈이고 수령이 있다고 당근마켓에 팔려고 내놓기도 했다. 알람이 떠서 들어가 보니 어떤 이가 신랄한 비난을 쏟아 놓았다. 화분들이 어쩌다 그 모양인 게 어디서 주워다 파는 거 아니냐는 메시지를 받고 부아가 치밀다가 정신을 차렸다. 애정 없이 방치하여 제 값어치를 잃버리게 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나눔으로 결국 여기저기 나누어주고 버리기도 많이 버렸다.

몇 가지는 그래도 남겨두었는데 몇 해를 지나가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잘 안 죽는 것들만 남긴 것 같다. 그리고 간직하고 픈 것들도 몇 화분이 있었다.

옥상에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것인지 잘 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씩은 마음이 쓰여 올라가 본다. 그것도 생각이 날적마다 가니 발걸음이 드물어졌다.

여름내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깜 박을 하기도 하고 부러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다행히 여름내 비가 오다 말다 찔금거리게 내렸기에 물을 주는 수고가 줄었다


옥상으로 올라오니 그래도 얼마 없는 화분들이 일제히 나를 반겨준다. 죽은 줄 알았던 제라늄 꽃이 폈다. 엘레강스는 화분여백에 버리기 아까워 올려둔 것이 화분들 마다 무성해졌다.

처음 구매해서 애정이 있는 나무, 이미터가 넘는 키를 자랑하는 벤자민나무가 회색빛 몸을 고추 서서 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그리고 누이가 보내온 실난 (나도 샤프란)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날 때 즘 늘 피던 꽃이 올해도 여지없이 약속한 꽃을 펴낸다.

어머니가 키우시던 것을 누이가 가져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꽃이다. 새끼를 치고 또 자라고 25년을 넘게 버텨온 화분이다. 우리 집에서 한 화분이 더 늘었다.

샤프란을 보면 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샤프란 줄기가 말라서 푸석해지면 어머니의 흰머리를 뽑듯 하나씩 뽑아주었다.

집안에 늘 화분을 넘치게 들여놓으시던 어머니, 아끼는 난이나 화분은 아버지의 담배연기를 피해 우리 방에 놓아두셨다. 크리스마스트리대신 고무나무에 장식을 하던 추억, 봄가을로 마당으로 넣고 빼낼 때마다 투덜거리고 마지못해했던 추억이 지나간다.

통통하고 작은 키에 맞춰 입으시려고 새 옷을 뜯고 단추를 갈아 입은신 다고 미싱 앞에 앉아 계시던 모습이 떠 올 오른다. 옷이란 옷은 온통 치마며 블라우스며 원피스까지 꽃무늬만 된 옷을 좋아하시고 입으셨던 어머니.

키우지도 못하는 꽃들에 집착하고 꽃무늬 물건들에 천착을 하는 나는 어머니가 그리웠던 것일까

게으른 여름은 물러가려는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바람 끝으로 가을이 오려는지 아련한 흙냄새처럼 퍼진다.

그 시절 어머니는 꽃이었던 것 같고 나도 이제 꽃이 되어가는 나이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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