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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은 전화

by 승환

1.반갑지 않은 전화


핸드폰을 늘쌍 보고있지만 전화는 놓치기 일쑤다

요란한 벨소리를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묵음으로 해두었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 보면 꼭 필요한 전화는 별로 없다. 혹시나 해서 대부분은 광고나 홍보를 하는 업체의 기계음성들이거나 영업하는 이들이다.

가끔가다가 차단한 전화번호도 있다. 모질지 못한 것인지 무슨 생각인지 전부 삭제를 해버리면 좋으련만 가급적 차단한 이들의 번호도 등록은 되어있다.

십여년전 잠깐 인연이 되어 아는 H였다. 학연 지연 직장 전혀 연관이 없는 아는 형님의 친한 친구여서 어울리게 되었다.

딱히 접점이 없고 호감이 가는 양반은 아니었지만 친했던 형님의 절친이라는 이유로 H와 늘 엮이게 되었다.

15년전 결혼 전 노총각의 싱글이었던 나는 딱히 사는 목표랄까 인생에 진지함이 부족했었다.

술을 좋아하는 비혼의 남자들은 아무래도 술이나 미혼 또는 싱글이라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어울리게 되었다.

가정이 없는 독신에 유산을 물려받고 수중에 돈이 있으니 늘 술먹자는 인간들이 들끓었다.

지금같음 그렇지 않겠지만 그당시에는 어울리는 무리를 나누어 누구에게만 술을 사주고 누구만 따로 만나고 하는 것이 치졸해보였었다.

당연히 H는 친한 형님의 절친이라는 이유로 같이 보게되었다.

친한 형님도 사는 결이 다르다 보니 내가 결혼을 하고 멀어지고 보는 일이 줄어들다 이제는 연락이 끊겼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사는 그 형님이 멋있어 보이던 것이 나도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니 한꺼풀 깍지가 벗어지기 마련이었고 그냥 시절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근황들은 건너 들으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그 형님은 취해서 중간이 없었다. 홍대며 강남이며 유흥의 밤을 보내다 인생이 다 지나버렸다. 마약이나 약물을 손을 대기도 하고 전과도 생기고.

이제는 더 만나보기가 껄끄러운 사람이 되었다.

내가 구지 연락을 안하듯 형님도 연락을 피하는 듯 싶었다.

그런데 H는 형님을 통해 본 잠깐의 인연인데 꾸준히 내게 연락을 했다.


나이대가 나보다 연배인 이 양반은 환갑이 다된 나이에 뭐가 아쉬워 동생뻘의 나에게 전화를 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지 모르겠다.

격조한거야 당연한 것이고 서로의 큰 교감이나 정을 쌓지도 않았는데 자꾸 친분을 엮으려한다.

실상 한창 만날때는 술도 밥도 많이 샀다.

한 번 볼때 몇만원 몇십만원 얻어 먹었으면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인사나 싼 소주나 막걸리 한 번 산 적이 없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난 후 불필요한 모임이나 사람관계를 정리하면서 멀어지게 되었는데 내 결혼식에 오지 않은 H는 몇년 후 자기도 늦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자기 여친의 무슨 향수테라피니 뭐니 하는 것을 만든다고 하여 구매 한번 해주고 시시콜콜 자기 연애 상담을 요청해 왔다.

내가 무슨 여자에게 인기 많은 스타일도 아니요 언변이 좋거나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닌데 귀찮아도 끊지 못하고 응대를 몇번해주었다.

그리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하며 연락이 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중 형이 늦게 결혼하는데 네가 신부에게 면이 서게 뭐 좀 통 크게 선물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슬몃 꺼내었다.

그 앞에서는 차마 말을 못해 속으로만 욕을 했다.

'뭔 그지같은 소릴 하는 거야 병신같은 놈!'

그 전화를 끊은 후 연락을 차단했다.

도대체 나의 젊은 시절은 얼마나 호구였었을까? 이런저런 사람을 가려서 만나지도 못하고 다 받아주고 호인소리를 듣는 것을 왜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고도 몇년 지나 연락이 오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통화를 했지만 영 껄끄럽고 부질없는 시간이라 여겨졌다.

다시 차단을 하고 빈말의 인사와 안부도 별로 달갑지 않다는 표시를 한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수시로 부재중전화 중 차단한 번호를 남긴다.


혹시 그 옛날 나도 취중에 여기저기 외로워서 심심해서 늦은 밤에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걸었던 것 같다.

애궂은 헤어진 이성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도 걸었겠지...


늦은 밤 H의 전화를 확인하면서 나의 카르마를 이생에 다 지우고 가려는 것은 아닌지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2. 아버지를 찾는다.



거실 응접실 테이블에 전화가 있는 풍경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되고 핸드폰이 앞앞이 하나씩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전화기에 옷을 입히고 바닥에는 천을 깔고 있는집은 요란하고 고풍스런 중세 유럽의 전화기 같은 것이 유행일 때도 있었다. 옛 사진에는 전화를 처음 사고 있는척 보이려고 빈 수화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어머니의 사진이 남아있다. 지금은 다 고리적이야기지만.

밖에서 아버지가 집에 전화를 걸면 통화중이면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뭐라 하신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전화가를 붙잡으면 한두시간은 뚝딱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집에 일반전화를 없애지 않았다.

사실 집전화는 고사하고 작은 사무실에서도 이제는 일반 전화가 거의 필요가 없다.

일반전화를 인터넷전화로 변경하면 요금을 할인해준다는 등 유혹이 많았지만 집 전화를 지키고 싶었다.

전화번호를 없애지 않으면 처음에는 소식이 뜸한 친지나 사람들이 집전화를 기억해서 연락이 혹시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도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연결되는 마지막 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그 때의 집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두려웠다.

허접한 무선전화기를 사서 방 한쪽에 연결해 놓다가 없애버렸다. 내 핸드폰 번호로 착신을 해서 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해두었다.

한달에 몇천원씩 나가는 요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는 유별나다고 못마땅해 하지만 못들은 척 고집을 부렸다.

무엇인가 혹시 아나 내심 내 사업을 하면 이 번호를 써먹어야 겠다는 계산도 했지만 언제가 될려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실제로 몇년은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핸폰은 기억못해도 전화번호는 외우거나 적어두신 분이 더러 있어서 아버지의 부고나 소식을 전해드리고 전해받기도 했다.

그리고 몇해 더 지나니 전화벨이 울리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없어졌다. 하다 못해 설문조사나 보이스피싱마저도 외면을 하고 조용했다.


몇달 전에는 신월동에서 안경점을 하셨던 아버지 옛 친구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다시 인식시켜드리고 건강하시라는 말을 드리고 끊었다.

그런데 또 얼마전에 전화를 와서 아버지 친구이름을 대며 아냐고 연락처를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하신다.

당연히 모르니 알 수 없다고 이제는 제가 아는 연락처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또 어제 전화를 하셨다.

친구 중에 진세를 아냐며 친목회를 했었는데 아버지가 총무를 그만두시고 친구 누구가 하다가 없애버렸는데 친목회비 모은 돈을 빌려주었는데 받았냐고 못 받은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신다.

가만 생각해보면 예전에 아버지가 친목회를 하신것은 20여년도 지난 일인데 친목회를 깨서 여행도 가고 나눠가진것으로 기억이나는데 신월동아저씨는 다른 소리를 하신다.

기어도 가물가물한 옛 아버지 친구분들을 하나씩 물어 보신다.

공장을 하던 누구며 누구는 돈을 많이 벌어서 아파트를 두채나 샀는데 지금 연락이 되냐는 등...

대부분 돌아가신 이름을 이야기도 하신다.

나는 아버지 장례때 내내 사흘을 지키고 가셨던 친구분 소식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저씨는 자기말만 계속 하시고 틈을 주지 않으신다.

차마 끊지 못하고 삼십분을 통화를 했다.


또 몇년이 지나면 아마도 집전화는 울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집전화를 끝끝내 지키는 나에게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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