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의 날

by 승환

시의 날이라 아침에 잠깐 생각을 해본다.

시는 무엇인가?

시를 왜 읽고 쓰는가?

시에게 기대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은 세계 시의 날이다.

원래 한국 시의 날이 먼저 제정되고 11월 1일로 알고 있는데 오늘은 세계시의 날이라고 유네스코에서 제정을 하였다고 인터넷에 뜬다.

뭔 뭔 날이 하도 많아서 다 챙기다간 바빠서 화장실도 못 갈 것 같이 많기도 많다.

그래도 시의 날이라니 시를 한참 공부하는(독학이지만) 중이라 눈에 확 들어왔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소견들이다. 맞지 않은 이야기 잘못 이해한 것들 일 수도 있다. 어차피 세상사가 다 이해하고 알고 살 수는 없기에 그냥 적어 본다.


시가 무엇인지를 요즘 딱히 어떤 정형화된 스타일을 말하기는 힘들다.

어릴 적 국어시간에 배운 운율이니 시조니 하이쿠니 여러 형태가 전형적인 나름 모습이 있었다면 한참만에 최근 시들을 읽다 보면 산문 같은 시도 있고 암호 같은 시도 댓글 같은 시도 있다.

시를 따로 강의를 듣고 시작법을 꼼꼼히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는 글로 이미지를 끌어내어 상상하게 만들어서 공감을 이끄는 글인 것 같다.

어느 시인이 얘기하듯 글로 쓰는 그림이란 표현도 그런 뜻이 아닐까 싶어 공감을 많이 했다.

이미지로 상상력을 발휘케 하는 것은 그림과 사진이 영상이 더 효과적이지 않나 싶지만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스스로 이미지화한 것들이 더 인상적이고 자극을 주는 것 같다.

글이라는 것이 읽히고 어느 이미지를 연상케 하고 느낌과 공감을 가져다주는 것이 더 인상적이고 강력한 것은 스스로 능동적으로 읽는 이도 창조에 닿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글자 발명이 위대함은 이런 데서도 새삼 놀라게 된다. 영상과 사진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21세기를 통과하면서도 글이, 책이 살아남고 효용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란 어떤 면에서는 놀이이다.

내가 만드는 세계관에, 그림에 내 마음을 보잘것없는 작은 것이라도 마음껏 양껏 실을 수 있다.

스스로 만들고 쓰고 흐뭇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 보고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 혼자도 여럿이 도 참여가능한 놀이이다.

창조에 대한 기쁨을 큰 비용 안 들이고 글을 배웠다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예술에 대한 욕구는 누구나에게도 있지만 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

가성비 갑인 범용적이고 저 비용적인 놀이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비교적 짧은 글이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공감을 받고 보다 멋지고 세련되며 참신하고 인정을 받는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비유와 은유로 나의 마음과 사상을 그려나간다는 것은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고 설명으로 물건이름을 맞추는 티브이 게임과 같은 작업이다.

내 비유와 묘사가 아무리 멋지고 그럴싸하더라도 스스로 만 알고 느끼는 정서와 이미지라면 독자들은 공감을 못할 수 있다. 세상에는 한정된 사물과 이름과 관념과 상상들인데 새롭게 무엇인가 더 상징화시키고 창조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시를 읽고 또 쓰려고 한다.

이것은 나도 그렇겠지만 마음의 본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인 것 같다.

말과 글을 배워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인생과 자신에 대한 근원을 다시금 곱씹게 만들고자 한다.

세상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사물과 이름 지어진 모든 것들에 대하여 고민하고 사색하게 만든다.

또 즐겁다. 어린 시절 깔깔거리고 말놀이를 하듯 언어유희는 재밌는 놀이이다.

조금은 아날로그스럽지만 시를 쓰고 읽는 것은 대화이기도 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재미이다. 바로바로 리엑션과 댓글이 없어도 나도 누군가도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암묵적 믿음이다.

세상 일이 공부가 되고 어려워지면 하기가 싫어지고 마음의 짐이된다.

시는 적어고 그냥 내게 재밌는 놀이였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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