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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Jun 09. 2020

철봉

2020년 6월 9일 새벽 1시 30분.
나는 마음을 회복하고자 오랜만에 명상 영상을 감상했다. 명상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어도 자연스레 생각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러면서 잠자리에는 들지 못하고 행복했던 감정을 떠올리게 됐다.

철봉.

나는 어렸을 때 철봉을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중간 높이의 (6살의 나름 내 키보다 높은) 철봉도 거뜬히 잡아 올라가서 다리 하나를 걸고 빙글빙글 돌곤 했다.
나는 엄마가 일하시는 학원 맞은편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자주 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주로 구름사다리와 철봉,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어느 누군지도 모를 아이들과 통성명도 안 하고 그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기를 잘했다. 나는 그냥 노는 게 좋았던 어린이였다.

특히나 철봉을 좋아한 나는 언제나 거기서 철봉 돌기를 했다.
어느 날엔가 내가 언제나처럼 철봉을 즐기려고 가는데 우글우글 초등학생 언니 오빠들과 선생님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조금 철이 들었다면 그 광경을 보고 수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하겠지만 나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지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철봉으로 가서 언제나처럼 다리 하나를 걸고 빙글빙글 돌았다. 특히 나는 어린 나이에도 내가 나름 철봉을 잘 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언니 오빠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리고 내심 내가 철봉을 돌면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오기를 바랐다. 실제로도 뭐야 뭐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 쟤 작은데 잘하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당연히 수업에 방해되는 어린 나는 선생님이 제지해서 다른 곳으로 가서 놀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초등학교 놀이터가 초등학생 수업을 위한 곳이란 걸 100프로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상하게 내가 행복하고 자유로웠던 느낌을 떠올리고자 했더니, 무려 거의 20년이 넘는 그 머나먼 기억 속 철봉을 빙글빙글 돌던 감각과 기분, 시원하게 나를 스치는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런 것들이 떠오르는 게 참 신기하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어렸을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철봉을 손으로 잡고 돌면서 놀다 보면 언제나 손바닥과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뜯어지면서 아프고 낫고 굳은살이 반복하면서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적어도 7년 이상 나는 철봉을 계속했던 것 같다.

교복 치마를 입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철봉을 잘 안 하게 됐는데, 참 그 전엔 얼마나 오랫동안 구름사다리와 철봉을 오갔는지 모르겠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면 아프고, 철봉을 잡고 돌리다가 마찰에 의해 물집 난 피부가 벗겨지면 그 쓰라림은 말도 못 한다. 갑자기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철봉에서 툭! 하고 떨어진 적도 있다. 너무 무리하게 돌다가 어지러워서 떨어진 적도 있다. 아무리 나라도 가장 높은 철봉은 무서워서 잘 돌지도 못했다. 그래도 점점 높은 철봉으로 정복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같이 놀던 남자아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떻게 그때는 고통이 있더라도 그렇게 철봉을 즐겨 할 수 있었을까? 나름 견딜만한 고통이어서 그랬을까?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철봉을 잘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서 더 재밌었을까.

우리는 커가면서 다양한 고통의 크기를 맛보기도 하고 그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웃는 이유는 그 아이들이 우는 이유가 '고작' 자기 풍선이 눈 앞에 사라져서인 것처럼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사실 풍선이 뒤에 떨어져 있다고 해도 아이는 풍선이 눈에 안 보인다고 울어버린다.) 나도 어릴 적 사소한 것에 자주 울었고 아직도 울보인데도 그 귀여운 아이들의 우는 이유는 더 하찮고 귀여워 보인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눈 앞에 풍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울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음이 아플 땐 아픈데 어렸을 적 철봉을 즐겨했던 것처럼 앞으로 크고 작은 고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조금은 내가 감당할만한 인생이 될까?

참 신기하게도 철봉도 기타도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나면 상처가 더 이상 잘 안 생긴다. 이제 물집이 잡히지 않게 되면 얼마나 더 철봉을 잘하고 싶은지, 얼마나 더 기타를 잘 치고 싶은지가 중요해진다. 물리적 고통은 심리적 고통으로 전환된다.

현재 나의 삶도 심리적인 고난이 가끔 혹은 자주 찾아온다. 얼마나 내 마음을 단련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은 산들바람에도 부서질 수 있고, 태풍에도 끄떡없을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던 철봉돌기나 경쾌한 음색의 기타 소리처럼 내 마음을 치료해주는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렸을 적 철봉 하고 놀 때와 가장 감정이 유사한 상황은 신나는 음악을 자유로운 몸짓으로 즐길 때 같다. 굳이 춤을 잘 추진 않지만 관광버스 율동으로 리듬만 타도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나의 어렸을 적 철봉처럼,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어느 정도 견딜만한 고통이 있더라도 너무나도 재밌어서 즐길 수밖에 없던 오락거리가 어떤 게 있었을까? 지금은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웠던 일들이...


-언제나 행복하고 뜻깊은 삶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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