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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Jun 21. 2020

머리가 복잡한 사람에게



새 핸드폰으로 바꾼 지 두 달,
새로운 핸드폰으로 바꿨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핸드폰으로 바꾸면서 요금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해서 그랬다.

아주 아주 멀쩡하던 핸드폰을 같은 기종으로 바꾼다니 많이 망설여졌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다 옮기지 못하고 결국 삼성의 자동 동기화 기능을 믿으며 쓰던 폰은 반납하고 집으로 왔다.

사진만 팔천 여장, 동영상 팔천여 개, 그리고 앱과 수많은 데이터들.

이전 핸드폰을 옮기면서 옮겨온 것이라 거의 2~3년 치의 데이터다.

막차시간은 다가오고, 먼 길을 가야 했기에 급한 마음이었다.


내 계정에 로그인을 했지만 데이터가 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다양한 글을 적어 둔 메모도 없어졌다.


매우 화가 났지만 그 감정은 지금 생각하면 데이터에 대한 집착이었다.

오랜만에 본 잡다한 앱이 없는 깨끗한 화면을 보니 내 집착도 사라진 느낌이다.



명상은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아무리 30분 가이드를 들어도 결국 10분 15분이면 포기했던 나는

이번에는 잡생각이 많이 들더라도 30분을 버티자고 마음먹고 자리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중간엔 심지어 다리가 저려서 한쪽 다리를 펴고 불량한 자세로 앉아서 했다.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나는 내가 마치 지구가 된 것 마냥 상상했다.

혹은 벽에 붙은 파리가 된 것 마냥 상상하며 나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았고 걱정이 많았다.

나는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능력도 가능성도 많이 가지고고 있어 보였다.

네가 결국 원하는 건 그런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야.

내가 남에게 조언해주듯 나를 보면서 조언하기 시작했다.

위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했던 그 위기가 내 인생 통틀어 그렇게 엄청난 위기인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버려야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핸드폰이나 나 자신이나 똑같았다.

사람은 무엇을 하겠다고 생각하기 11초 전에 이미 그 선택을 결정한다고 한다.

무의식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습관도 무의식으로 움직인다.

내 습관, 행동, 무의식을 바꾸려고 한다면 나를 비워야 하고 그러기 가장 좋은 방법이 명상인 것 같다.

30분 명상을 할 때는 길다고 느꼈는데 다 하고 생각해보니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즈음이 30분 정도였다.

그렇게 하고 나니 30분은 너무 짧고 효과가 적다고 느껴졌다.


데이터를 악착같이 옮기려던 나는
나 자신이 비워지는 느낌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명상을 오래 하지 못했던 것도 이러다 정신분열증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는 건 결국 없었고
내가 없어질 일도 없었다.

비워진 핸드폰처럼 나는 나를 비울수록 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더 오래 명상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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