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1. 천주교를 던지다
2. 템플스테이를 가다
3. 불교대학을 가다
*** 본 글은 특정 종교를 홍보하거나 비하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
종교 관련 관해 겪은 개인적인 경험과 종교 관련 생각들을 모은 이야기입니다.
1. 천주교를 던지다
때는 바야흐로 2017-2019년, 군대에 있을 때였다. 나는 군대에서 천주교 신자로서 천주교 군종교구 예배에 참가했다. 하지만 예배에 매번 참석할 때마다 나는 ‘내가 왜 이 종교를 믿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있었다. 어릴 적에 받았던 유아세례, 성인이 되고 받았던 견진세례(천주교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성인식)를 받았지만, 마음 속 깊숙이 천주교를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군종교구 신부님께 천주교 교리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교리 서적들을 얻었다. 그리고 교리 서적들을 모두 읽고 분석했다. 안식일(주일)의 존재 이유, 성체 성모 등등.. 이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들도 있었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잊고 있었던 개념들도 있었다.
철저히 정독하고 분석한 결과, 천주교 교리의 핵심 키워드는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절대적, 무비판적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천주교 교리의 핵심이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정언명령 같은 말이 바로 천주교의 핵심 사상이었다.
나는 이 분석 결과에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왜 모두를 사랑해야해?’ 나는 나 사랑하기도 힘들었다. 남까지 포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라는 아가페적 사랑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 전역 1개월 전, 천주교 예배 시간 후 티타임에 신부님께 질문을 드렸다.
“저는 교리 공부를 한 후, 천주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신부님의 부모님, 친척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살해한다면,
신부님께서는 그 살해범 또한 용서하고, 사랑하실 수 있나요?”
신부님은 5초 간 당황하셨다. 눈알 원 운동 5번 정도 굴리다가 입을 떼셨다.
“비록 그 상황에 가보지 않았지만, 나 또한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또한 용서와 사랑을 말했고,
그것이 예수님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용서할 수 없겠지만,
제자로서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할 것 같단다.”
나는 신부님께 명언을 들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근본적인 회의감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또한 군종교구 신부님은 장교 신분으로서 병사 신분인 군종병을 열심히 갑질하며 부려드시는 것 같은데, 발언의 신빙성이 깊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2019년 3월, 나는 마음 속으로 천주교를 던져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평소에 책들을 통해 매력적으로 느꼈던 불교를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2. 템플스테이를 가다
나는 2019년 봄에 전역을 했다. 전역하자마자 바로 불교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칼복학하고 평일에 전공공부, 대외활동, 봉사활동을 하고 주말에 아르바이트까지 소화하니까 삶의 여유 자체가 없었다. 1학기와 여름방학과 2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2019년 12월에 종강을 하고, 나는 쉼이 필요했다. 여유가 필요했다. 일단 2020년 1학기에 러시아로 교환학생 파견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 전까지 쉬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바로 2020년 1월에 강북구에 있는 화계사에 1박 2일 ‘오직 쉼’ 과정의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일체유심조, 무아, 공, 채식주의 등 좋은 교리들을 추구하는 불교의 공간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1월 14-15일 1박 2일을 절에 머무르게 되었다. (홍보 X)
나는 화계사에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었다.
(1) 내가 절에 들어가자마자 본 광경은 자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님들의 기도 모습이었다. 그 기도 옆에는 온갖 불교 신자들의 소원들을 모아놓고 달집 태우기(? 나뭇가지들을 쌓은 후,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종이들을 걸고 불로 태우는 의식으로 보였다)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이 자아낸다)와 공수래 공수거(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 무아(존재는 항상 변하며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 공(空)을 표방하는 불교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개인적인 온갖 소원들을 빌고 있었다. 모순성에 웃음과 슬픔이 절로 났다.
스님과의 티타임 시간에 이에 관해 물어보았다. 스님은 웃으면서 한국에 불교가 들어올 때 기복신앙(복을 바라는 신앙)을 버릴지 혹은 안고 갈지에 대해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무래도 토속신앙 및 민간신앙에 기복신앙적 요소가 있었으므로 불교가 이를 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한 달집 태우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들을 소원으로 걸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통일, 세계평화, 세상의 행복 등 나와 우리, 타자를 향한 따뜻한 소원들도 건다는 사실을 덧붙여주셨다.
(2) 점심과 저녁에는 절 음식을 먹었다. 온통 나물 뿐이었는데 나름 맛이 괜찮았다. 오장육부가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먹다보니 불교는 시대를 앞서 나간 채식주의인 것으로 보였다. 오..
(3) 나와 함께 2020년 1월 14-15일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분들은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2명은 나와 동년배 여성 분들이었고, 1명은 학교 상담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 정경대 돕바를 입고 자주 여기저기를 활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2020년 겨울은 별로 안춥기도 했고, 내가 옷에 관심이 거의 없기도 했고, 패딩을 본가에서 가져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서울시립대, 정경대, 장산곶매가 박힌 돕바를 입고 다녔다.
같이 템플스테이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2명 여성 분들은 자기 자신들이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 전에 쉬러 오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문득 이야기를 나누면서 첫날 때도 그렇고 그분들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느꼈다. 내 기분 탓일수도 있는데, 그 분들께서 학벌이라는 서열적인 지위 속에서 우리학교 마크 달린 돕바를 보며 살짝 열등감을 느끼신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입고 다니는 이 돕바 자체가 누군가에게 기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고 기분탓일 수도 있지만, 나는 섬뜩한 나머지 템플스테이를 마친 뒤 나는 돕바를 버려버렸다.
그렇게 기복신앙, 채식, 서열적 지위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템플스테이를 마무리했다. 1박 2일의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화계사를 나오는 순간, 나는 무언가 세속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불교 교리 공부도 좀 하고, 좀 더 불교에 신실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3. 불교대학에 가다
(1) 불교 대학에 등록하다
(2) 일체유심조를 깨닫다
(3) 연기법을 깨닫다
(4) 중도를 깨닫다
(5) 불교 신자가 되었다
(1) 불교 대학에 등록하다
그렇게 기회가 닿아 2021년 2학기에 온라인 불교대학을 수강하게 되었다. 유튜브 및 SNS에서 연예인이 되어버린 법륜스님이 운영하는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정토불교대학’이었다.
매주 70분짜리 스님 법문 2개 정도를 스스로 듣고,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조별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한 학기 동안 불교대학을 수강하면서.. 느낀 점이 상당히 많았다. 이 글은 배우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글들이다. (홍보X)
(2) 일체유심조를 깨닫다
#일체유심조
불교대학에서 일체유심조에 대해 배웠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라는 말이었다. 화, 짜증, 욕심 모두 우리 마음에서 짓는다는 말이었다. 사전적 정의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었다. 일체유심조를 배우고 다음과 같은 썰들이 생각났다.
#국어선생님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께서는 되게 쾌활하고 열려있으시고 재미있으신 중년 남성이셨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하시면서 종종 썰을 푸시며 틀에 갇혀있지 않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그 중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은 뱀썰이었다. 어느 날, 국어선생님께서는 또 수업시간에 썰을 풀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원래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신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이번 여름방학 때는 너무 바빠서 해외를 못가셨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신 채 뱀썰을 풀기 시작해주셨다.
다름 아니라 선생님께서 야산을 지나가다가 뱀에 물리셨다는 이야기였다. 뱀에 물려서 병원에 가니, 독사에게 물린 것일수도 있어 뱀의 모양을 알려줘야했다고 한다. 의사는 뱀마다 해독제가 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하셨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이래저래 치료를 받게 되셨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물린 입장이었으면 정말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었을텐데, 선생님께서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신 채 뱀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자신은 뱀이 이렇게 다양한지도 몰랐고, 해독제도 뱀마다 다 다른지도 몰랐고, 이번 여름방학 때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지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위대한 발견을 해 흥분해하는 학자 분처럼 흥분하는 말투로 말씀해주셨다.
이 때 행복은 자기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가장 인상깊게 알게 된 날이었다. 내가 선생님이었으면 무척 스트레스 받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비록 아프지만 뱀과 자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무척 흥미로워하시며 뱀에게 물린 사건을 고통이 아닌 기쁨으로 받아들이셨다. 나는 이렇게 기뻐하는 국어선생님이 신기했다. 아마 이때가 나 또한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첫 단추였던 것 같다.
이 국어선생님 썰을 들은지 몇 주 후, 나는 학교에서 집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도중에, 정전이 일어나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 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다가 멈추었다. 나는 당황했다. 빨리 내리고 집가고 싶었는데 짜증났다. 그러다 갑자기 국어선생님 썰이 생각났다. 이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보지 않았던 엘리베이터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엘리베이터 구조가 이랬구나, 점자는 이렇게 생겼구나 등등. 그러다 비상호출 버튼이 보였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 내에서 비상호출 버튼을 눌러보았다. 경비 아저씨가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놀랬다. 나는 소심하게 "저 엘리베이터에 갇혔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아저씨와 대화도 해보고 비상호출도 눌러보고, 엘리베이터를 찬찬히 뜯어보는 경험을 해보았다. 그렇게 유유히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며, 평소에 누구나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해보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정신승리..?)
#고시원
대학교에 입학 후, 처음으로 상경했을 때 나는 고시원에 들어갔다. 정시로 늦게 입학해 집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있고, 알아본 주변 부동산 시세가 비싸기도 했고, 나는 방이 좁든 넓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이보다는 서울에 왔다는 것, 싫어하는 공부 안해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전공공부만 해도 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방은 잠잘 곳만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며, 내가 고시원에 산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들 놀라곤 했다. 그 작은 방에 산다는 사실, 공용샤워실을 이용한다는 사실 등에 당황스러워 하거나 충격을 받거나 나에게 연민의 시선을 주곤 했다.
나는 이런 반응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나는 별로 신경 안쓰는데 왜 다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인지 더 의아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며 점점 더 사회를 알아가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집 및 방에 대한 가치관을 알아가면서 왜 다들 그렇게 반응한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점차 그런 가치관을 내면화 하게 되었다. '고시원 거주=부끄러운 것'을 내면화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내가 고시원에서 산다는 사실을 다소 숨기고 싶어하게 된 것 같았다. '부모님이 일정 소득 미만이다', '좁은 방에 거주한다' 등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하나의 '신분'이 된 것 같았다.
현재는 대학가의 작은 원룸에 지내고 있는데, 신축원룸에다가 학교와 가까워서 고시원 및 지난 번에 거주한 곳들보다 훨씬 좋은 방이긴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몇몇 지인들은 당황스러워 하고, 너무 좁다며 나에게 연민의 시선을 주곤 했다. 이런 반응들 또한 신기했다. 연민의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8평 남짓한 방에 살아야 하는 것 같았다. 혹은 평창동 단독주택 or 강남 고층주택을 구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연민의 굴레에 빠질 것 같다.
#외모지적
나는 평소에 외모에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평소 패션 및 외모에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는 것 같다.
그러다 2019년에 고향에서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내가 꾸미지 않고 머리도 단정하지 않다는 등 외모지적을 쉴새없이 해댔다.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정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 거울을 볼 때마다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쓰게 되었다. 원래 그냥 넘어가던 것도 거울을 볼 때마다 계속 신경쓰게 되었다.
마치 동화 속처럼 마녀의 저주에 걸린 기분이었다. 평소에 하나도 신경쓰지 않다가, '경멸하는 눈빛'과 '지적'을 통해 나의 외모가 '미디어에서 그리는 정상적인 외모'에서 벗어나있다는 사실을 쉴새없이 지적받은 후, 나는 스트레스 받으며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쓰게 되었다. (그렇다고 꾸미진 않음)
#불교대학
불교대학을 다니며 쉴새없이 들었던 이야기는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잘 이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대학을 졸업하며 ‘타인의 말과 행동 or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떻게 내 마음/생각에 내면화 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받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바깥과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연습을 하고 보니, 행복이 자기 내면에 달려있다는 말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국어선생님 썰, #고시원 썰, #외모지적 썰이 생각났다. 고시원썰과 외모지적썰은 이전까지 마음에 없었던 바깥의 이야기를 나 스스로 마음에 내면화하여 나를 스스로 고통받는 위치로 내몰은 것이었다. 반면 국어선생님썰은, 다소 정신승리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고통 혹은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이었다.
(3) 연기법을 깨닫다
불교 대학 수업 중 하루는 연기법에 대해 공부했다. 연기법의 뜻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로 표현될 수 있고, 사전적 정의는 “모든 현상이 생기(生起) 소멸 하는 법칙. 이에 따르면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이었다. 연기법의 예시 몇 가지를 배웠다. 개인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연기법 수업의 시작 질문에는 "밥 한 공기가 내 앞에 이르기까지 연관된 사람은 몇 명일까요?"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쌀을 가정해보자. 내가 쌀을 주문해서 쌀이 내 방까지 오는 과정을 역추적해보았다. 쌀이 내 방까지 오는 데에는 배달 기사님의 노동이 있고, 물류 창고에서 담당자의 노동이 있고, 쌀 포장 기계를 관리하는 노동이 있고, 쌀 포대의 디자인 노동 또한 있었을 것이다. 쌀 포장 전에는 농부들께서 한 해 동안 벼를 기르는 노동이 있으셨을 것이다.
문득 농부들께서 트랙터를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트랙터를 생각하자마자... 응..?? 하나의 우주를 고려하는 기분이었다. 일단 트랙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트랙터를 구성하는 철, 알루미늄 등이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엔진을 만드는 기술, 트랙터를 만드는 도면이 필요하다. 갑자기 공대 교수님들이 떠올랐다. 근데 공대 교수님들이 엔진을 만들든 기계 외형을 만들든 일단 수학은 기본적으로 공부했어야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수학은... 근본부터 따지고 들어가자면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라비아 숫자까지... 올라가야 했다. 지금 트랙터라는 기계만 고려했고, 트랙터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기계만 고려해도.. 응..? 무언가 인류의 역사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렇다. 트랙터는 인류 지성의 총합이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던 스마트폰도 인류 지성의 총합이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내가 평소에 당연하게 쓰고 있는 이어폰, 노트북, 프린터, 종이, 책(인쇄술) 등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인류 지성 총합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불교 대학 수업에서 도반들에게 위와 같이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니 다들 놀람+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셨다.
다른 도반 분께서도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씀해주셨다. 도반 분께서는 농부라는 사람을 생각하셨다고 한다. 도반님이 생각해보니, 벼를 기르는 농부가 있다면 농부를 낳고 기르신 부모님이 계실 것이고, 부모님을 낳고 기르신 조부모님이 계실 것이고, 조부모임을 낳고 기르신 증조부모님이 계실 것이고, 증조부모님을 낳고 기르신 고조부모님이 계실 것이고... 쭉 생각하다가 정신이 멍해져서 그만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인류 계보의 마지막 결과물 혹은 인류 계보를 잇는 과정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날 수업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인류 계보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동시에 우리는 수천년에 걸친 인류 지성의 총합으로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연기법의 깨달음을 얻었다.
(4) 중도를 깨닫다
#중도
불교대학에서 불교 개념 중 '중도'라는 개념을 배웠다. 강의에 따르면, "일어나는 욕망에 따르지 않고, 그렇다고 욕망을 억압하지도 않고, 그저 욕망을 바라보는" 것을 가리켜 '중도'라고 한다고 한다. '화'든지, '외로움'이라든지, '배고픔' 등 다양한 욕망을 따르지도, 억압하지도 않고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야식
나는 원래 밤마다 야식을 자주 먹었다. 하루에 두 끼 먹는 편이고, 주로 내가 자취방에서 스스로 해먹다보니 다소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지 밤마다 야식이 자주 끌리곤 했다. 그래서 과자든, 아이스크림이든 야식을 종종 먹었다. 무언가 '배고픔을 참기'에는 나는 살짝 서러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도서실에 있다가 와서 칼로리가 부족해서 야식이 끌리는 것인데, 이를 참자니 다소 인생이 서러웠다. 그래서 그냥 먹었다.
그래서 덕분에 코로나 시기에 살이 펑펑 쪘다. 이대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서 줄넘기나 달리기를 했다. 하지만 배고픔을 참기가 힘들어서 운동하면서 같이 먹어주었다.
그러다가 '중도' 개념을 배운 후, 나의 배고픔을 관조하게 되었다. '내가 배고프구나' 생각하며 굳이 배고픔을 따라가지도 않고, 배고픔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새벽 2시에 꼬르륵 소리가 나도 '내가 배고프구나' 생각하며 나의 배고픔을 관조했다. 욕망을 따라가지도, 억압하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서러움이 사라졌다. '내가 그냥 배고프구나'라고 생각하며 알아차리고 냅두니, 욕망은 그냥 창문을 열어놓은 듯이 바람처럼 환기되어 사라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야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
#화
불교대학을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은행에 갈 때, 마트에 갈 때, 회사 콜센터들에 전화를 할 때 불친절한 사람이 있으면 속에서 화가 불같이 났다. 너무 화나면 내 마음에 마치 관악산 북한산 배봉산 모두 전소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듣다가 못봐주겠으면 “선생님 지금 뭐하세요?”라고 따지곤 했다.
화가 난 상황이 종료되어도 나는 화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았다. 속으로 ‘쉬바휘바’ 생각하며 속에서 잔불들이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불교대학에서 배운 중도, 관조를 하니 방 공기 환기하듯 감정이 환기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물론 한번에 탁한 공기가 맑아지지는 않는다. 단지 마음 속에서 화가 일어날 때마다 ‘내가 화났구나’, ‘내가 우라질 놈들 때문에 화가 났구나’, ‘내가 화가 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적적으로 감정이 조금씩 환기되는 기분을 받곤 했다. 그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이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보니 불교대학에서 배운 대로 행했을 뿐인데 어쩌다가 나는 어느 정도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나의 즉흥적인 감정(화, 배고픔 등)이나 남들로부터 비춰지는 명예, 체면이 아닌, 내가 삶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중도를 여러 욕망들에 적용하고 있다. 감정들 및 욕망들에 따라가지도, 억압하지도 않기. 나는 화, 배고픔, 외로움, 슬픔, 짜증 모두 관조하니 모두 환기되어버리는 것을 느끼고 있다.
(5) 불교 신자가 되었다
나는 지난 2월 초에 불교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정토회의 회원으로 등록하였다.
나는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연기법, 중도를 깨닫게 되었다. 이전보다 외부로부터 초월한 삶을 살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연민의 시선을 던지든, 화를 내든, 비난을 하든, 나는 점차 웃으며 내면화하지 않는 능력을 길렀다. 내가 화가 나든, 짜증이 나든, 슬프든, 불교 수행연습 방법으로 감정을 환기시키는 능력을 길렀다. 모양과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을 보는 능력을 길렀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천주교를 잘 던졌다고 생각한다. 천주교에서 추구하는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절대적 사랑, 아가페적 사랑 또한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설득력이 적었다. 반면,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있다는 연기법적 사고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 봉사, 용서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이상으로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천주교와 불교를 넘나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성불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