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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May 01. 2022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에 게임이론 대입하기

  한국 사회에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대체로 불가능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데이트 어플은 참 애증이 느껴지는 복잡한 존재이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어플로 돌아온다. 몇 개월 or 1년~ 이후 다시 깔아본 어플에는 예전에 있던 사람들이 "안녕~ 다시 왔니~?"라고 인사라도 하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다.


  예전에 경제학 전공시간에 게임이론을 공부하다가 문득... 데이트 어플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생 미시경제학 수준에서 게임이론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 게임이론 내용을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게임이론이라고 말하면 되게 어렵게 들리는 데 용의자의 딜레마(죄수의 딜레마?)가 게임이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용의자 A와 용의자 B가 있는데, 범죄 혐의를 인정하느냐 부인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A가 인정하고 B가 부인하면, 감옥에서 A는 짧게 살고 B는 오래 산다. 이렇게 행위자들이 어떻게 판단내리는지 고민하며 전략적으로 행위를 탐색하는 것이 게임이론이라 알고 있다(?? 배운지 좀 되어서 내 기억은 이렇게 남았다.)


  학부생 수준에서 배우는 게임이론은 고작해야 내쉬균형 정도이다. 행위자 A와 B가 있고, A가 할 수 있는 행동 1, 2가 있고, B가 할 수 있는 행동 1, 2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와 B는 1, 2 중에 하나를 택한다. 내쉬균형은 A와 B가 서로의 선택지를 공유하며 자기에게 가장 효용이 큰 균형점이다. 단, 일탈이 없어야 한다(no deviation). 행위자 중 1을 선택했던 사람이 2로 갈아타서 일탈할 때 더 효용이 높다면, 내쉬균형이 아니다. (실제로는 내쉬균형이 일어나는 사례는 적다고 한다.)


  나는 연애 욕구가 없다가도 [독거청년 -> 독거중년 -> 독거노인]의 삶이 두려워 가끔 데이트 어플에 들어가보고 있다. 데이트 어플에는 수많은 행위자들이 있고, 수많은 행위자들은 수많은 화려한 사진들로 신호발송(signaling)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레몬 재화(lemon, 상품 시장에서 불량품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고 화려한 사진들로 신호발송(signaling)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플리케이션 애인 구인 시장에서는 일종의 역병이 퍼지고 있다. 나는 이를 좋게는 '나르시시즘 역병'이라 부르고 싶고, 나쁘게는 (부적절한 용어같지만) '공주병 역병'이라 부른다. 부적절하게 말하자면,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며 도도하게 '너가 나를 가질 수 있겠느냐'라고 입장을 취하는 역병에 심취한 공주님들이 존재한다. 좋게 말하면 나르시시즘이 하늘을 찔러 항상 질문에 대답만 하고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들 다정하고 리드하고 적극적인 사람을 찾는 것 같다. 뭐 그런 사람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사람을 찾는 분위기라 내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이 흥미로운 애인 구인 시장에서 행위자 A인 나는 나와 잘 맞을 듯한 사람들에게 '대화하기' 행동을 선택하곤 한다. 행위자 B, C, D, E는 '대답하기' or '차단하기' 등 다양한 행동을 선택한다. 잘 맞는 사람인 듯해서 나는 '질문하기'라는 행동을 선택하면, 상대방은 대체로 '대답만 하기'라는 행동을 선택한다. 마치 내가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고, 자기는 보살핌 받고 싶다는 뉘앙스가 확 올라온다. 나는 기대와 효용이 급감한다. (내 효용은 마이너스로 향한다) 아, 이 분도 역병에 걸린 분임을 깨닫고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는다. 나는 '퇴장하기' 행동을 선택한다.


  이 역병은 내가 먼저 선쪽지를 하지 않아도 나타난다. 행위자 F, G, H, I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에게 '대화하기' 행동을 선택한다. 나는 잘 맞을 것 같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행동을 선택한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내가 질문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상대방들이 '대답만 하기'라는 행동을 선택한다. 또 나의 기대와 효용이 급감한다. 어느 정도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나는 '퇴장하기' 행동을 선택한다.


  나는 2015년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데이트 어플을 처음 사용했지만 지금도 어플이 어렵다. 성욕에 뇌가 지배된 사람을 걸러야 하고, 호감이 가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성격과 취미가 어느 정도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게다가 역병에 걸린 분은 피곤하다. 어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좋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대학생 때보다 더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어플 킬 때마다 맨날 자주 계신 분들 보면 누구나 어려운가 싶다.


  어플에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있다. A, B, C, D 등 .... 행위자들은 다양한 행동을 한다. '대화하기', '질문하기', '대답만 하기', '차단하기', '퇴장하기' 등... (개인적인 견해로) 이론상 내쉬균형은 모든 행위자들이 '대화하기'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효용이 더 커지고 싶어서 '대답만 하기'로 비효율적 일탈을 하는 현상들을 목도하고 있다. 이 애인 구인 시장에서 나는 효용이 마이너스로 향해서 '퇴장하기' 행동을 선택했다. 솔로가 오히려 효용이 더 높다. 하지만 또 외로워서 들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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