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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Nov 04. 2023

비웃음에 대한 단상 中

비웃음과 상대적 박탈감은 현대 사회의 현상 아닐까?

  이전 글 '비웃음에 대한 단상 上'(https://brunch.co.kr/@kcljh5067/231)에서 비웃음은 자본주의를 위한 훌륭한 도구라고 비유하였다. 서열적인 사회에서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돈, 권력, 명예, 외모, 학벌 등)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비웃어 서열적 가치 및 재화들을 적게 가진 개인들을 헬스장 산업, 뷰티 미용 산업, 자기 개발 산업, 학원 산업, 투자 산업 등에 끊임없이 들어가게끔 유도하여 경제활성화를 한다는 개인적인 견해였다.


  지난 글에서는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중심으로 짧게 나의 견해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비웃음과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이어서 생각해보려는 시도는 주변 지인들이 자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급화를 하려고 한다', '계급이란 존재한다'라는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대기업에 들어간 사회초년생 친구들의 재수없는 빻은 발언들로 느껴졌으나 곱씹어볼수록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어보였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헌법 제11조는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박아넣으며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신분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강조하였다.


  평등한 현대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로 사람들이 계급화 되는 상황이다. 둘은 다소 충돌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개념이 충돌할 때 '현실'이라는 낱말로 후자를 정당화하고 전자를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판사들의 무의식+의식 속에도 내재되어있다. 특히나 화이트칼라 범죄는 판결이 관대하다고 예전부터 수차례 지적되어왔다. 이유는 다양하겠으나 '학창시절에 공부도 잘 했고 근면성실하게 일했던 사람이 범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질렀으니 다소 형량을 낮춘다'는 말도 있다. (참고자료 : '화이트칼라 범죄' 여전히 관대한 판결,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1Z939VPZT9) 하지만 그렇다고 평등의 가치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평등의 이름 아래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헌법으로는 '개인 모두가 평등한' 사회 속에서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를 쟁취한 사람들은 쟁취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웃는' 행위는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서 계급화를 이루어 너와 다르다'라고 표현하는 하나의 문화적 행동양식이 아닐까 생각들었다. 비슷하게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은 '너와 내가 모두 평등한' 사회 속에서 '내가 가지지 못한 서열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들에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생각들었다.


  이는 고대, 중세, 근대에는 없었던 현대 사회 현상이 아닐까 생각들었다. 만약에 내가 조선시대의 농부였고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던 사람이었다면, 돈도 쌀도 많은 양반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아이고 양반 나으리~ 지는 예 오늘 한 끼도 못먹었는데 한 끼만 줍쇼~ 아량을 베풀어 줍쇼~"라고 말했을 것 같다. 비슷하게 양반이 가난하게 사는 농부들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이는 '노력해서 계급화를 이루어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느낌보다는 '천한 새끼들'이라고 생각하며 신분제, 계급제 사회 속 이미 주어진 계급을 무시·동정·비하하는 행위일 것 같다.


  나는 재수학원까지 다니고 건강에 무리가 올 정도로 공부를 해서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보다 낮은 서열의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한없이 비웃었다. '공부를 얼마나 못했고 안 했으면 저 대학에 갔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20살 전에 내가 자란 공동체 속에서 이런 생각은 당연했다. 나는 '노력해서 계급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생각이 상당히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세상을 알아가면서부터였다.) 동시에 나보다 더 높은 서열의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지금도 연고전 싫어한다. 상대평가로 대학 간 학벌 쟁취자들의 파티 같은 느낌.)


  이렇듯 사견으로 비웃음과 상대적 박탈감은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였다. 평등한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끊임없이 노력하여 돈, 권력, 명예, 외모, 학벌 등으로 계급화를 이루는 행위로 비웃음과 상대적 박탈감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사회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라는 바닷속에서 파도나 급류에 휘둘리기도 하며 살아가니깐.)


  나 자신이 비웃음이 나타나고 상대적 박탈감이 나타날 때 나는 '아 그냥 계급이 다르니까'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불편한 감정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을 봐도 '아 학벌 계급이 다르니까. 대신에 다른 부분에서 노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라고 생각하니 비웃는 성향이 누그러졌다.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을 봐도 '아 학벌 계급이 다르고 기업 계급이 다르니까. 저 사람은 저런 가치를 추구하고 저런 재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나 보지 뭐'라고 생각하니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종종 '타인이 불행하길' 바래하는 경향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은 별거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나보다 잘나지 않고 불행하길 바래하는 경향이 있다. 지인이 땅을 사둔 지역이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지 않길 바라며,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애가 더 좋은 학교/기업에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종종 타인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타인이 불행하길' 바래하는 경향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이 성공하면 축하하기보다는 배가 아프다. 이런 현상들도 결국 우리 모두 평등한 사회 속에서 계급이 지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보인다. (연예인 악플도 마찬가지)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이자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로 계급화 되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단 자아실현 할 수 있는 직장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나는 후자에 거부감 든다. (후자를 좇는 과정 속 정치질, 친목질, 싫은 것도 해야하는 일들 너무 거부감 든다.) 혹은 모두 다 던지고 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회피성 출가는 하수들이나 하는 일 같다.)



※ 관련 글

비웃음에 대한 단상 上

: 비웃음은 자본주의를 위한 훌륭한 도구

https://brunch.co.kr/@kcljh5067/231


※ 참고자료

'화이트칼라 범죄' 여전히 관대한 판결,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1Z939VPZ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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