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은 자본주의를 위한 훌륭한 도구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 부쩍 비웃음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나조차도 비웃음이 다소 많던 사람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 졸업 후로 누군가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20살 이후로 철이 다소 들면서 타인을 비웃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졸업 후부터는 누군가로부터 비웃음을 받거나 비웃음을 받을 가능성이 신경쓰이다니 다소 재밌고 흥미로운 상태이다. 내 업보를 돌려받는 느낌이랄까?
비웃음에 대한 깊은 생각의 시초는 대학교 졸업 후 나를 비웃거나 잔소리하던 적이 없던 친구들이 나를 비웃고 잔소리하기 시작하기부터였다. 나의 비전과 맞는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일할 때 나의 연봉에 대해 한 친구는 무척 괄시하는 말투로, "그 돈 밖에 안받는데 열심히 일하지 말아라"라고 말하며 대단히 나의 선택을 평가절하 하는 발언을 했다. 또 다른 친구도 한국의 유명 탑 대기업에 들어가더니 타인을 대할 때 얼굴에 비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나를 무척 좋아해주던 친구가 졸업 후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에 신기함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대학생 때 학구열이 넘치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 친구였기에 이 친구들의 친구였던 걸까?
개인적으로 고찰해보니 비웃음은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에서 나타난다. 못 생긴 사람을 비웃거나(외모), 나보다 더 낮은 대학을 다닌다고 비웃거나(학벌), 부동산 및 집의 소유 여부로 사람을 비웃거나(자산), 연봉 소득수준으로 사람을 비웃거나(소득), 임신이 가능한 기혼 여성의 승진 및 성과를 곧 나갈 사람이라 말하며 평가절하 하고 비웃거나(젠더) 등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에서 비웃음이 피어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웃음은 끊임없이 개인들을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를 추구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비웃음 받고 싶지 않아 외모를 꾸미기 시작한다거나, 학부 학벌은 별로여도 대학원 석사라도 좋은 대학으로 간다거나, 영끌 혹은 투자로 자산을 얻으려 한다거나, 끊임없이 자기계발로 연봉 소득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거나, 여성이 공무원 및 공공기관으로 진출함으로써 젠더로 평가절하하는 조직을 기피하는 등.
즉, 비웃음은 개인을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를 추구하도록 채찍질하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뷰티 및 헬스 경제 활성화, 투자 경제 활성화, 자기계발 학원 경제 활성화 등 사회의 각계에서 경제활성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즉, 비웃음은 자본주의를 위한 훌륭한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다. 서열적인 세상에서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한 사람의 상대적 패배이다. 더불어 사람은 누구나 어느 부분에서나 사회적 소수자이다. 외모, 학벌, 자산, 소득, 젠더 등 다중적인 불평등 및 격차 속에서 모두 다 가진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 가보면 어느 부분에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종종 마주친다.
결론적으로 나의 사견으로는 비웃음은 자본주의의 폐해로 보인다. 서열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어떤 면모(외모/학벌/자산/소득/젠더 등)를 보고 비웃는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는 우리를 보며 어떤 면모를 보고 비웃는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결핍된 - 서열이 낮은 - 부분을 채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끊임없이 소비한다. 하지만 사람은 어느 부분에서나 사회적 소수자이다. 서열적인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비웃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비웃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비웃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이자 이 구조의 방조자인 것이다. 비웃음과 자본주의의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비웃음의 굴레를 초월하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현재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노동을 하고, 서열적인 가치 및 재화에 대해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소외시키는 노동을 하여 공허감을 느끼거나 타인의 말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 소외 현상, 자아실현하는 삶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또한, 타인을 비웃거나 차별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노동이든 삶이든 자기로부터 소외된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비웃음에 대해 다소 초연해지게 되었다. 아무리 서열적인 세상이라지만 서로 사랑할 시간도 적은데 누군가를 비웃거나 차별하는 분위기만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 노동 소득이 자산 소득을 따라갈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 서열적인 세상이 되어가며 비웃음이 극대화되어가는 걸까? 과연 더욱 서열적이게 되는 게 좋은 걸까? 못 가진 자는 가지려고 악을 쓰게 되고,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을 쓰는, 더욱 팍팍한 사회가 되는 건 아닐까?
비웃음이 자본주의와 연동되어있는 것 같아 써보는 글. 비웃는 사람은 서열의 굴레 속에 떨어진 안타까운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보고 싶어 써보는 글.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아실현과 가치관 정립이 아닐까 출구를 열어보는 글. (물론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해야하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로서의 관점에서 바라본 글.)
※ 관련 글
비웃음에 대한 단상 中
: 비웃음과 상대적 박탈감은 현대 사회의 현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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