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두사람>, 에세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후기
#다큐_두사람
동네 도서관에서 "두사람"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고 공개했다. 독일에 살고 계신 6070대 한국인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라고 한다.... ????????? 이전에 친구로부터 해당 다큐 얘기를 들어본 것 같았다. 그리고 김인선님도 유튜브에서 묘하게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닷페이스 채널에서 영상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레즈비언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슝~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 김인선님과 그녀의 배우자 이수현님의 이야기를 80분 가량 봤다. 어르신들이라 그런지 2030대처럼 불꽃튀는 사랑은 없었다. 대신, 동반자같은 가족같은 서로에 기대어 함께 소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동성 커플이 있었다. 수현님이 "서로 등에 로션 발라주는게 섹스지"라고 말할 때 흥미로웠다.
김인선님은 어머니께서 독일로 오라 하셔서 갔고 간호학교를 다닌 후 간호사가 되어 생활하다가 이수현님을 만나 눈이 맞았다고 한다. 원래 독일에 있던 한국인 남성과 결혼도 했고 당시 시대상과 다르게 남편이 인선님의 공부도 적극 지지했으나,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이혼하고 수현님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런저런 사연들도 겪고, 인선님은 호스피스 단체도 만들어 운영했고, 인선-수현님이 서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이 열거되었다.
내가 성소수자로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이 꽤 있어서 그런지 다큐를 보고 이혼한 사실도, 수현님과 눈맞아 사랑에 빠진 사실도 모두 그다지 예외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좀 믿기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나는 해외 살이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인선님이 1970년대부터 독일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심지어 인선님은 '아시아인'이었고, '여성'이자 '성소수자'였다. 20세기에 한인 사회에서는 지탄받는 '이혼 여성'이기까지 했다. 소수자 정체성이 3중으로 있는 가운데 이를 버틸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그리고 보통 나이들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인선님은 독일인이 되었다. 이유가 뭘까?
#에세이_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다큐 <두사람> 중에서 인선님이 에세이를 작성하는 모습이 나온다.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인선님이 2021년에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라는 책을 쓰셨다. 궁금해서 바로 다큐 상영 끝나자마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첫 챕터부터 인선님의 삶에 압도당했다. 인선님은 1950년에 태어나고 자라면서 가족들로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인선님의 어머니께서는 신여성이 되어 능력있고 멋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여러 명의 여성을 만나던 남자를 만나 우연히 인선님을 낳았고, 인선님을 혹처럼 생각했다. 인선님을 책임지지 않고 일본으로 말도 없이 떠났고, 외할머니, 이모 등 어머니쪽 가족들이 인선님을 도맡아 키웠다고 한다. 가족들이 인선님을 키울 여력이 되지 못해 아버지의 집에 보내졌고, 다른 정부 및 정부의 자녀들과 차별받으며 소외되며 자랐다. 1970년대에 인선님이 겨우 성인이 될 즈음, 당시 어머니께서 인선님을 독일로 오게 해서 간호학교에 다녀 독일에 살도록 권유했다. 그렇게 인선님의 독일 생활이 시작되었다. 해외살이, 간호학교 진학, 사랑스러운 수현님과의 만남, 호스피스 병동 운영 등...
#인선님을 보며
에세이를 읽으며 전철에서 한 3번 정도 눈물을 훔쳤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선님같은 사람을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고생들을 묵묵히 버티고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가족이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고 자신의 삶을 일구어내셨다.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나약하고 징징대는 성격임을 깨닫고 나도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장벽을 직시하고 나의 삶을 일구어내고자 노력한다.
나는 다큐와 에세이를 보며 아쉽게도 '레즈비언'의 삶보다 '어려웠던 젊은 시절을 버티고 이겨낸 아시아계 독일인 여성'의 삶을 더 주목했다. 인선님의 에세이에도 절반 이상이 가족 이야기이다. 유년 시절 겪었던 일화들도 나오는데, 되게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나이 70이 되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였던 것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기독교의 힘과 삶의 원숙함으로 분노와 원망은 가라앉으시고 대신 나의 삶을 사회에 어떻게 베풀고 기여할 것인가 고민하신 것으로 보였다.
우연히 동네 도서관 영화 상영을 봤을 뿐인데, 사서 선생님들 덕분에 또 한 명의 성인같이 멋진 어른을 발견했다. 인선님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독일과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과 성소수자 권리 증진에 큰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