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학기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매주 월수금에 3~4시간씩 러시아어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게 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10학점(?) 수업같은데 러시아 학점으로는 3ECTS, 우리 학교 학점으로는 2학점 수업이었다.
내가 들은 러시아어 수업은 5명의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 친구, 워싱턴주 출신 친구, 프랑스 친구, 루마니아 친구, 한국인 나, (그리고 자주 빠지던 리투아니아 출신 영국 친구. 거의 안들은 거나 다름 없었다.)
애들과 얘기를 들어보니, 애들은 다 러시아어를 1년 정도 배워온 친구들이었다. 오잉? 나는 한 학기 교양수업으로 들은 게 끝인데 왜 이 반에 분반되었는지 몰랐다. 애들은 러시아어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나보다는 잘했다.
러시아어를 가르치신 교수님의 경우, 이름은 나탈리아 (Natalia, Наталья)이셨다. 러시아 문학 책 읽을 때 나오는 주인공 이름같았다. (근데 러시아 와서 맨날 TV속에서만 보던 백인들이 내 주변에 다 있으니 나는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기분이긴 했다) 신기한 점은 교수님께서 영어를 못하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 못하는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키릴 문자권 국가여서 정말 알파벳권의 영어와 친숙하지 않은가 보다 생각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교수님들이 거의 다 미국 대학원 출신임을 고려해볼 때, 우리나라가 학력 인플레가 너무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교수님은 성격이 무척 좋으셨다. 나같이 러시아어 잘 못따라가던 사람도 무척 배려해주셨고, 매일 매일 "말해 말해 (Говари Говари)"라 말씀해주시며 차근차근 러시아어 연습을 독려했다. 교수님께서는 당황하거나 부끄러우실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시던 분이었다.
1. 무슨 언어를 배우든, 처음에 항상 "나는 무엇을 좋아해"를 배운다. 나는 사과를 좋아해. I like apple. Я люблю яблоко. 나는 러시아를 좋아해 I like Russia. Я люблю Россия(?).
러시아어 시간에도 이를 배웠다. Basic보다는 Elementary 과정이라 그런가 "나는 어떤 과목을 좋아해"를 배우게 되었다. 경제, 문학, 경영 등을 러시아어로 배웠다.
나는 당차게 "나는 정치학을 좋아해 (I like politics. Я люблю Политик)"을 말했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교수님은 내가 정치학 이야기를 하니 얼굴이 빨개지셨다. '왜 당황하시지?' 생각들었다가 넘기곤 했다. 이후로도 나는 매 수업시간마다 정치학 이야기를 했고, 나는 정치학 덕후로 이미지 메이킹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러시아어 교수님은 매번 얼굴이 빨개지셨다.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가, 프랑스 친구는 나에게 러시아어로 "푸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봤다. 러시아어 교수님은 폭소하셨다. 얼굴은 무척 빨개지셨다. 나는 "러시아 경제가 너무 나빠서 푸틴 잘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뱉으며 생각컨데, 러시아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푸틴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 안되는 것 같았다. 부정적인 시선(?)을 나름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도 매번 정치얘기할 때마다 당황하셨던 것 같다.
2. 러시아어 교수님은 1970년대생이셨다. 듣다가... 오잉?? 그럼 교수님은 소련 시절 때 유년기를 겪으셨다. 브레즈네프와 고르바초프 시절을 겪으셨다. 나는 놀라서 "그럼 소련 시절 살으신거에요???????!!!"라고 물어봤다. 프랑스 친구도, 루마니아 친구도, 교수님도 팡팡 터지며 폭소하셨다. 교수님은 또 얼굴이 빨개지셨고 폭소하시다가 가라앉히고 나서 "물건도 얼마 없었고, 별로 기억도 좋지 않다. 나는 지금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3. 러시아어 교수님 어머니께서는 경찰이시라 말씀해두셨다. 듣다가... 오잉?? 그럼 러시아어 교수님 어머니께서는 >>소련 경찰<<이셨다. 나는 놀라서 "그럼 소련 경찰이셨던 거에요??????!!!!"라고 물었다. 프랑스 친구도, 루마니아 친구도, 교수님도 팡팡 웃음보가 터지셨다. 교수님은 진정한 뒤 어머니께서는 그냥 간부도 아니고 직원이셨다고 말씀해주셨다.
4. 나는 러시아 기숙사에서 넷플릭스들을 많이 보곤 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김에 The last Tsar, 트로츠키 등 러시아 혁명, 로마노프 왕정, 소련 이야기 다큐 및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넷플 가입하고 처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한국 자막은 지원해주지 않았다. 영어와 러시아어랑 핀란드어만 지원해줬다. 반강제적으로 영어공부하며 러시아 드라마를 보았다.
러시아 드라마를 보며 재밌던 점은, 북한에서 '동무'라는 말이 러시아에서는 '따바리쉬(Товарищ)'라는 점이었다. 소련을 살아온 교수님, 소련 경찰이었던 교수님의 어머님께서는 따바리쉬를 많이 사용해왔을 것 같았다.
그래서 드라마 본 다음 날 교수님께 '따바라쉬' 많이 쓰셨냐 여쭤보았다. "따바리쉬 나탈리아", "따바리쉬 알렌(프랑스 친구 이름)", "따바리쉬 디앤나(루마니아 친구 이름)", "따바리쉬 추횬(내 이름은 주현인데, 러시아어에서는 ㅈ 발음이 없어 ㄷ 혹은 ㅊ로 번역해 쓰고 있었다. ㅕ발음도 없어서 ㅛ로 번역해 쓰고 있었다. 내 이름 주현을 교수님은 추횬이라 발음해주셨다.)"라고 말해보았다.
교수님과 친구들은 개폭소했다. 교수님은 당황스러움과 폭소 사이에 어쩔 줄 몰라했다. 얼굴을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교수님은 지금 따바리쉬는 친구라는 의미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내가 북한에는 아직도 동무라고 쓴다고 말씀해드렸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다시 폭소하며 얼굴이 빨개지셨다.
5. 그리고 러시아어에서는 "아스따로즈나 (остарожно)"라는 단어가 있었다. 이 단어는 "신중해!", "조심해!", "깊게 생각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였다. 영어로는 watch out, deliberate, discrete 뜻을 포함하는 단어 같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트로츠키에서 트로츠키가 동무들에게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서 러시아 혁명을 이루어내자는 의미에서 "아스따로즈나"라는 표현을 100번 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레 학습했다.
교수님께 또 드라마 '트로츠키'에서 '아스따로즈나'를 배웠다고 말씀드렸다. 또 나탈리아 교수님은 폭소하시며 몸둘 바를 모르셨다. 일단 '트로츠키'라는 소련 설계자에 거부감이 있어보이셨고 내가 '아스따로즈나'를 배워온 게 참 웃기면서도 신기하셨던 것 같다. 그 때 마침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여서 교수님께서는 '아스따로즈나 비루스(바이러스를 뜻하는 러시아어 단어)' 표현을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매일 매번 아스따로즈나~ 아스따로즈나 비루스~를 연일 외치고 다녔다.
6. 아스따로즈나 비루스~를 연일 외치고 다니다가, 문득 북한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보았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전대미문의 비루스 사태에...'라고 말하고 있었다. 무척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세상에.... 공산권의 유산이 이렇게 남아있는 것인가 싶었다.
다음 러시아어 시간에 곧장 달려가 교수님께 또 말씀드렸다. "남한은 바이러스라 말하는 데 북한은 비루스라 말한다." 교수님께서는 처음 알으셨다는 눈치였다.내가"냉전 시대 남북한 분단의 역사가 느껴지시지 않으신가요. 러시아와 북한은 친했군요."라고 말씀드리니, 교수님께서는 얼굴이 또 빨개지시면서 폭소하시고, 진정하신 뒤 그렇구나 말씀하셨다.
7. 또 하루는 HBO 회사에서 만든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았다. 근데 무척 잘만든 영화같았다. 러시아어 시간 초반에 또 일상을 묻는 대화 시간에, 나는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수님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친구, 프랑스 친구도 놀랐다. 다들 보고 싶었던 드라마였나보다. 동시에 나야 극동아시아의 한국에서 와서 체르노빌 이야기가 뉴스 속 남 얘기처럼 들리지만, 프랑스 친구, 루마니아 친구, 러시아어 교수님 모두 다 남 얘기가 아닌 듯 해 보였다.
러시아어 교수님께서는 놀라다가, 교수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사실 (당시 소련) 우크라이나에 살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7080년대 우크라이나에 조부모님 뵈러 종종 갔고, 그 때 조부모님이 종종 체르노빌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나는 듣고 너무 충격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정말 현대사의 산 증인이시구나 싶었다.
동시에 러시아 사람들에게 체르노빌 봤다고 말하니까 "아 그거는 왜곡이 적은 것 같더라. 잘 만든 것 같더라."라고 말해주었다. 이 말이 되게 좀 신기하면서 이상했다. "왜곡이 적다"라는 표현... 소련도 그렇고 현대의 푸틴 독재의 러시아도 그렇고 아무래도 다 베일에 싸여있다보니 러시아 이야기가 정말 왜곡이 많았던 것 같았다.
또한 생각해보니,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소련의 역사인데 미국 HBO film 회사가 만든다는 것은 좀 이상했다. 우리로 치면 한국전쟁 관련 영화를 미국 기업이 세세하게 만든다는 것 아닌가? 당연히 왜곡을 따지고 별로인 점은 비판할 것 같았다.
그렇게 2020년 1학기는 나탈리아 교수님의 러시아어 수업을 뜻깊게 들었다. 비록 러시아어 아무리 공부해도 너무 어려웠어서 성적은 잘 못나왔지만, 정말 너무나 뜻깊었던 수업이었다.
소련 시대 태어나신 교수님, 소련 시대 경찰이었던 교수님의 어머니, 체르노빌 사건을 바로 옆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조부모님. 교수님의 가족 분들은 세계사의 산 증인이셨고, 유럽-러시아 사람들은 현대에 이런 경험을 겪어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탈리아 교수님과 유럽 친구들 사이에서 '정치 전공을 좋아하는',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 공부를 좋아하는', '소련과 러시아 드라마 및 영화를 좋아하는', '똘끼 넘치는', '호기심 넘치는' 학생이었다. 교환학생 와서 유럽 친구들은 코로나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고 친해지지 못했는데, 교수님과는 계속 수업을 이어나가고 소통하면서 무언가 교환학생에서 제일 뜻깊은 인연을 얻은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페이스북 메신저로 교수님께서 종종 선톡을 하신다. 모스크바 사진, 상트페테르 축제 이야기 등등. 이에 나는 되게 놀랐다. 보통 한국인이면 한국 교수님께서 먼저 선톡하지는 않는 편이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가, 혹은 러시아는 그런 문화가 아닌 건가, 혹은 교수님은 나에게 '정'을 느꼈는가 궁금하다. (교환가서 유럽애들에게 정없다는 기분을 너무 많이 느꼈다. 반면 러시아 분들은 정이 정말 많았다)
한번은, 러시아어 교수님께, "한국 친구들에게 교수님 이야기하면 다들 무척 놀란다. 소련, 체르노빌 이야기만 해도 다들 눈 커진다. 비루스 이야기할 때도 놀란다. 식견을 넓혀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경험, 추억 감사하다"라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나도 너가 정말 흥미로운 학생이었다. 너무 재밌었다. 고맙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만리 타지 발트해 연안에 거주하고 계신 교수님. 극동아시아에 한반도 남한에 살고 있는 나. 어느 날 한번은 꼭 상트 가서 교수님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말 이런 맛에 다들 여행가고 교환학생 가는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