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이 같이 움직이는 코스 둘레길은 제주에서 올레길이 생기고 올레꾼이 입소문을 내면서 전국적으로 걷기 명소를 만들면서 서울에 둘레길을 만들었고 그것이 북한산 둘레길이며 박 시장이 서울을 한 바퀴 돌게 만든 것이 서울 둘레길이다.
서울 둘레길은 서울을 한 바퀴 돌면서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 인근을 걷기도 하지만 갇기 좋은 곳도 그 지역의 걷기 명소를 연결하기도 하였고 기존의 둘레길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북한산 둘레길과 서울 둘레길은 중첩된다. 8코스는 구파발역에서 도봉산역까지다. 무려 35km다. 무리하면 하루에 갈 수 있지만 둘레길을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구파발역에서 시작을 위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롯데몰 앞에는 양의 형상도 있고 조각도 있고 꽃도 심어져 있다. 은평구 뉴타운의 효과를 보고 있는 사람은 산천 개벽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Mb가 서울시장일 때 뉴타운 사업을 한 곳이다. 이곳에 살 곳 있던 저소득층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 사람들은 이곳이 생활터전이었는데 뉴타운으로 모든 것이 사라 졌다. 그 결과 뉴타운이 인기 절정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사라지는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하고 있다. 이것에도 찬반 논쟁이 심하다. 요즈음은 임대아파트를 균형 있게 건설하고 있는데 그것도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일본 원작의 은하철도 999에서 보았던 메가시티와 빈민가가 생각이 났다. 메가시티 옆의 빈민가는 기계인간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기계인간에게 용역을 제공하고 돈을 벌고 그곳에 빌붙어 살고 있다. 기계인간은 현대문명을 상징하면서 인간성 상실의 대표성을 보여준다. 현대화가 된 건물에 살면서 인간성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은평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구경하고자 한다면 연서시장으로 간다. 연신내역과 인접한 곳으로 사람이 사는 모습이며 삭막함이 없다. 지저분한 재래시장이 어쩌면 우리네 삶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은평은 옛 시절 달동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숲에서 살고 북한산 인근이라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구파발역에서 북한산 둘레길과 만나는 지점까지 생태하천으로 정비된 하천길을 따라 갈으면서 강남의 양재천이 부럽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대 강 사업을 하면서 모든 지자체가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하였다. 이곳은 북한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을 만들어 더욱더 자연스럽다. 철새들이 하천에 놀고 있다. 저것은 인공으로 불가능하다. 날아오는 새가 생태하천의 묘미를 보여준다. 우리 하천은 어린 시절 쓰러기장이었고 소각장이었다. 그 결과물이 하천이 썩은 하천으로 만들었고 누구도 접근하기 싫은 장소였으나 이제는 냄새나지 않고 물이 흐르는 생명의 줄기로 바꾸면서 하천이 있기를 희망한다. 청계천은 어항이라고 하지만 도심의 쉼터가 되었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찬사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고가도로보다는 하천복원이 좋고 청계천은 태생이 인공하천만큼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양재천이 강남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였고 생태하천 복원 모델이 된 것처럼 이곳 하천도 정비가 잘되어 있다. 인공폭포를 지나면서 하천을 벗어나 아파트를 옆으로 끼고 북한산 둘레길과 서울 둘레길 접속지점에 도착한다. 선림사라는 사찰이 있다. 1 산 1사다. 친구는 사찰로 가서 두루두루 다닌다. 나는 그사이 둘레길 주변을 살핀다. 오늘은 1 산 1사가 아니다. 오늘 이동하면서 거쳐가는 사찰만 하여도 선림사 불광사 정진사 해원사 청련사 연화정사 법륜사 향천사 등이다. 이중 몇 개는 지나갈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모여든다. 너도나도 인사를 한다. 친구들인가 하면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다 누구형하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들은 사라지고 초등학생과 인솔자 1명으로 둘레길을 떠난다. 둘레길 모임인지 모르겠지만 애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산을 좋아하고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은 무엇보다 좋다고 본다.
북한산 둘레길을 들어선 후 처음으로 구름정원길이다. 북한산 둘례 길 8구간이다. 구름정원길에 접어들면서 만남 사람들이 울트라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다. 100k를 뛴다. 하루에 100k를 걷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뛴다고 하니 더욱더 무섭다. 그래서 궁금하여 울트라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뛰었냐고 그들이 벌써 10k를 뛰었다고 한다. 무섭게 뛴다. 혹 친구가 여기에 참가했을까 하여 지나가는 참가자들을 유심히 쳐다본다. 없다.
무릎이 아작 날 것 같아서 더 이상은 미친 짓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 둘레길을 하루에 한 바퀴 돈 기억이 있다. 44k를 걸었다. 100k는 무시무시하다 둘레길을 가다가 북한산을 95%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둘레길을 달리고 한강변을 청계천을 이용하여 복귀한다. 그체력은 진짜 감탄을 하면서 저 무릎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다. 서울광장을 출발하여 북한산 보국문 문수봉을 거친 후 비봉능선을 타고 하산하여서 둘레길과 백운대의 위문을 그 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0k도 북한산 둘레길을 달리고 대동문까지 오른 후 다시 둘레길을 달리는 것이다.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지길로 56k를 걸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니지만 능선도 걸었다.
구름정원길을 걸으면서 북한산 둘레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구파발역에서 장미공원까지이다 족두리봉을 둥글게 둥글게 반 바퀴도는 것이다.
구름정원길의 전망대를 지나면서 자크 루소의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걸음에 대한 예찬이다.
불광역에서 족두리봉을 올라갈 때 이 루트를 이용한다. 독바위역에서도 족두리봉을 올라갈 때에도 이 루트를 이용한다. 장미공원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학당의 졸업생들의 가을 산행길이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연배가 높다. 그렇지만 그들도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초등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고등학생이 된다고 한다. 그들은 60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몇 반 모여라"
장미공원에서 이북 5 도청을 가는 최고 정상에서 그들은 멈추었다. 우리는 진행을 한다. 우리는 걷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능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문수봉이 비봉능선을 만들면서 우리를 기다린다. 다만, 오늘은 아니다.
옛성길이다. 옛날 조선시대에 성을 쌓는다고 관리자들은 노심초사하였을 것이고 민초들은 고난을 받았을 것이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성을 위하여 민초들은 고생을 하였다. 임란과 호란 이후에 한양을 방위하기 위하여 성을 쌓았는데 사용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아쉬울 뿐이다. 구기터널을 바로 지나면 되지만 둘레길이다. 산을 넘어야 한다. 산 능선에 성벽이 있다. 퇴락한 성벽이지만 300년의 세월을 보냈다. 성은 적으로부터 방위하기도 하고 치안을 위하여 쌓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성들은 대부분 방위를 위하여 쌓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치안을 위하여 쌓은 성은 평지에서 도적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한다. 유럽의 주요 성들은 이러한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옛성길을 벗어나자마자 이제는 빈촌과 부촌이 공존하는 평창 마을길이다. 이북 5 도청 인근은 빈촌이다. 인근에 부촌인 평창동이 있지만 이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떠나 부촌인 평창동을 오르는 길에 사찰이 있다. 사찰 옆에 등나무가 오랫동안 둘레꾼들에게 안식을 주고 있다 그늘을 주고 있다.
부촌에 들어선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동일하지만 부촌이다. 친구와 이 길을 걸으면서 예전에 정원이 예쁜 집을 찾아보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였을까 한 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찰이었다. 사찰도 관리를 잘하면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가 이곳의 집을 나에게 준다고 하여도 나는 싫어할 것이다. 이 집을 관리하기 위하여는 투자할 돈이 없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이곳에 살 수 없다. 아니 승용차를 두대 이상 운영할 수 없고 사설 보안업체를 이용할 수 없으며 잔디를 관리하기보다는 산으로 돌아 다는 것이 좋다. 사찰에서 바로 보는 평창동의 모습은 별장의 집합체다. 전망이 좋은 별장은 누구나 선망이 대상이 될 수 있다.
형제봉 초입이다. 이제는 북한산 둘레길에서 명상길이다. 정릉 탐방안내소 주차장까지 숲길이다. 형제봉 초입에서 나는 스탬프를 완료하였다. 나는 예전에 둘레길을 완료하였지만 이곳의 스탬프가 어떤 이유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둘레길이나 걷기 명소에서는 인증 스탬프가 기본이다. 나는 영남길을 걸으면서 스탬프를 완료하지 못하여 인증서를 받지 못하였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니 도와주겠다고 한다. 고맙다고 하였다. 인증서에 목숨을 걸고 인증을 한다.
형제봉 갈림길에서 김신조를 생각해본다. 김신조가 이 루트를 이용하여 청와대 인근까지 접근을 하였던 것이고 총알 바위도 있다고 본다. 형제봉에서 북악 하늘길로 이어지는 길에 군이 많이 주둔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형제봉에서 정릉길로 이어지는 길에 접어들면서 50k를 뛰는 사람들을 만났다. 50k를 뛰면서 이제 10k 남짓 남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제는 마지막 힘을 내고 있다. 우리들은 응원을 한다. 정릉은 조선 태조의 왕후의 묘다. 승하하였을 때 최초의 능은 남산 인근이었으나 태종이 파묘를 하여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계모에 대한 원한이 심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정릉은 고대 인근에 있다. 우리에게 조선의 왕후를 비라고 비하를 한다. 엄연히 왕후이다. 민비라 하고 계비라고 한다.
솔샘길로 들어선다. 도시공원이 이곳에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빨래골까지이다 우니라는 5k 남짓 가면 될 것이다. 정릉초등학교에 접근하기 위하여서 갑자기 산길을 들어선다. 정릉초등학교는 산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국민대학교에서 접근할 때는 산을 올라야 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정릉초등학교가 있다. 이곳은 성북구다. 우리는 은평구에서 시작하여 종로구를 지나고 성북구에 이른 것이다. 조금 있으면 강북구이다. 정릉초등학교 뒤편의 언덕은 성북 생태체험관이 있다.
생태체험관을 지나자마자 도시공원이다. 강북구에 들어서면서 스탬프 위치를 확인하는데 없다. 우리가 무엇을 놓쳤나 하여 뒤돌아 성북 생태체험관까지 돌아가 본다. 하지만 없다. 그래서 인증을 위한 스탬프 지도를 찾아본다. 이곳이 아니고 앞으로 더 가야 한다. 스탬프를 찾았다. 이곳 이후에는 연산군묘 인근에 있다. 이제 북한산 둘레길중 3구간으로 흰구름길이다. 친구랑 둘이서 어린이 숲 체험장 앞에서 여호와증인 선교를 위하여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종교의 자유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사이비적인 여호와증인, 신천지 등은 용납되지 않는다. 무속신앙도 그렇고 그렇지만 강요하지 않기에 그렇게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여호와증인이 기독교와 무엇이 차이가 있는지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여호와증인에 대하여 기본상식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밖에 모르며 그것은 기독교의 기본을 부인하기에 사이비가 된 것이다. 빨래골까지는 평탄하고 걷기 좋다. 빨래골에서 우이동까지 우리는 걸었다.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이다. 최근에 태풍이 지나갔다. 나무들이 쓰러졌다. 언덕을 지나 빨래골을 가기 전 태풍 때문에 넘어진 나무를 넘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