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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Dec 25. 2020

평화누리길 1일 차

김포시의 평화누리길 완료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어느 날 아침 평화무드는 지속되고 있고 남북 간에 긴장모드가 진행될 때에는 근처도 가지 않는 길 철책선 근처다. 기본적으로 북쪽으로 접근은 누구나 싫어한다. 김포, 파주, 연천으로 연결되는 경기도에서 만든 평화누리길이다. 김포가 3코스인데 참 애매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냥 즐기라고 해 놓았으면 문제없는데 사람이 시작을 하면 끝을 보아야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코스는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초지대교 입구에서 시작하여 강화대교 입구에서 끝이 난다. 길이 14km다. 14km를 시간당 4.5km를 걸어도 3시간이면 족한 거리인데 4시간을 걸으라고 한다. 어린 친구들을 데리고 걸어도 4km를 갈 수 있는 평탄한 지형에서 4시간으로 설정하여 놓았다. 처음은 설레어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지만 조금 가면 그것도 시름해져서 계속 걷는다. 이것이 인간의 심리 아니 나의 심리라고 해야 될 것이다.

걷는 길을 만들어 놓고 그것도 철책선 너머의 바다에는 접근도 못하는 데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명항에서 시작하는 평화누리길이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있는 바다는 강 같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이바다를 보고 염하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1코스의 이름이 "염하강 철책길"이다.

아내가 자동차로 초지대교를 건너면서 강이라고 했다. 그만큼 강과 유사하다. 강화와 황해도 사이는 조강이라고 한다.

염하강은 강처럼 썰물과 밀물에 바닷물이 흐른다.


평화누리길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주변의 철책선도 관심이 있어 사람들은 철책선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는다. 예전에 꿈도 꾸지 못하였을 것이다. 철책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문제를 유발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염하강 철책길은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되어 있다. 물이 빠진 경우 갯벌은 누구도 나올 수 없다. 물이 들어왔을 경우에는 그 물의 속도가 빠르다. 다만, 물이 정체되었을 때 해안가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화시즌이 계속되어야만 평화누리길이 있을 수 있다. 평화 시즌이 중단될 경우 평화누리길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명항을 출발하고 처음 접하는 것이 덕포진이다. 덕포진은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으로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서구 열강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격전지로서 1981년부터 발굴작업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포대와 파수대가 복원되었고, 2007년에 덕포진 유물전시관이 새 단장되었다.

덕포진 끝에는 고려시대 뱃사공인 손돌의 묘가 있다. 이 손돌의 묘에는 전설들이 기록되어 있다. 손돌은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길을 잡았던 뱃사공이었다. 물길이 험하자 불안해진 고종은 손돌의 목을 베었는데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며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고종은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한 뒤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닫고 손돌을 후하게 장사 지낸 후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그의 넋을 달랬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까지 손돌의 넋을 달래는 제사가 이어졌으나 일제강점기 동안 중단되었고 1970년부터 다시 제사를 지냈으며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 주관 하에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진혼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덕포진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철책선은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철벽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러니하다. 덕포진을 지날 때쯤 근처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근무를 위하여 초소에 배치되고 있다. 비 오는 날 근무를 위하여 나오는 군인들이 안쓰럽다. 요즈음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은데 불구하고 덕포진의 중요성이 있어 오늘도 우리의 요충지를 지키고 있다.

덕포진을 나오면 원머루 나루이자 고양항이다. 이 지명인 원머루 나루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원머루 나루’는 ‘언덕 원(原)’과 ‘높은 곳’을 의미하는 ‘마루계’의 변형인 ‘머루’가 합성한 것으로, 마루는 지역에 따라 '마루, 모루, 모로' 등으로 쓰이고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고유지명 '원머루 나루'는 '높은 산 마을' 또는 '높은 산밑 마을'의 뜻이며 고양포는 원머루 나루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원머루 나루에서 폐선이 방치되어 있다. 김포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김포가 아닌 강화에서 이를 움직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문수산성 남문까지 해안선을 끼고 걷는다. 김포 CC에서 날아오는 골프공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한다. 문수산성 입구에서 조강 철책 길이 시작된다. 염하강에서 조강으로 연결이 된다.


김포 문수산성(金浦 文殊山城)은 숙종 8년(1682)에 강화유수가 강화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여 12년이 지난 숙종 20년(1694) 끝낸 산성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이때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었고 성내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크게 파괴되었던 문수산성은 현재 서문과 북문이 복원되었고, 현재 총 6Km에 이르는 산성 중 4Km가 남아있는 상태다.


문수산성의 축조는 인조가 청나라의 침범으로 벌어진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가는 길목이 봉쇄되면서 강화도로 파천하지 못하자 남한산성으로 파천하며 항거하다가 청나라에 한강 상류인 삼전도에서 치욕을 당한 이후, 강화도와 연결되는 길목인 통진의 갑꽂나루에 대한 군사적인 대비가 요구되어 강화도로 넘어가는 길목인 문수산 서쪽 산록에 산성을 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문수산성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문수산성을 올라가면 북녘땅을 보기 위하여 문수산성을 올라가고 그 끝에 간다.  문수산성 정상은 남북을 아울러 볼 수 있는 곳이었기에 오랫동안 해병대 초소가 있었고 사람들 발길도 뜸했다. 실제로 정상에 복원한 장대에 서서 보는 풍경은 사뭇 낯설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고 이쪽과 저쪽이 나뉘어 오가지 못하는 분단의 현실을 이처럼 생생하게 눈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조강철책길은 문수산성 입구에서 시작하여 애기봉 입구까지이다. 김포의 너른 들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1코스 14km, 2코스 8km를 걷고 나서 이것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평지길을 22km를 걸었는데 3코스가 17km를 무리하게 도전해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무리이다. 합쳐서 40km이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난다고 하였다. 비가 오는데 처음 시작하였고 추가적으로 1, 2코스에서 종료를 하는 것이 적절하였으나 3코스를 평지길이라고 이것도 가능하다고 본 우리의 착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처음 시작하면 발에 땀도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애기봉 입구에서 종료를 하지 못하고 걸었다.


애기봉은 예전에 북녘땅을 향하여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서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화를 위하여 이 불을 밝히지 않는다.


위키트리에 찾아보니 1954년부터 애기봉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연말연시에 트리에 불을 켰다. 처음에는 소나무로 장식 트리를 만들어 썼으나, 1971년에 철탑으로 대체되었다. 애기봉에서 한강 하류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지역인 북쪽 하안(河岸)까지 거리는 3 km 밖에 되지 않으며, 에 등탑에 불을 켜면 전력 사정이 나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측에서는 그 불빛이 약 25 km 떨어진 개성 시내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 간 갈등을 야기해 왔다.

2004년부터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의 합의에 따라 점등을 하지 않다가, 2010년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12월 21일부터 다시 점등하였다. 2011년에는 12월 23일부터 점등할 예정이었으나, 12월 19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포시에서 국방부에 점등 중단을 요청해 취소되었다.

대한민국 해병대2014년 10월(10.15.-10.16.) 철탑을 철거하였는데, 국방부는 각급 부대의 대형 시설물 안전진단 결과 애기봉 철탑이 지반이 약한 데다 철골이 오래돼 쓰러질 위험이 있는 D등급 판정을 받아 붕괴 시 일반 관광객의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어 철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애기봉(愛妓峯)'은 병자호란 때 적에게 끌려간 평양감사를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그리워하다가 죽었다는 기생 ‘애기’의 한이 서린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1968년 애기봉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인을 그리워하던 애기의 한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한이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무엇을 체험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는데 철새를 체험할 수 있었다.

혹, 가까이서 철새를 체험하고 싶으면 김포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포시에서도 14.8㎢(450만 평/여의도 면적의 5배)의 황금들녘과 은빛 억새가 어우러진 군락을 조성함으로써 평화누리길을 하성면 마을길 구석구석과 연결해 청정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무공해 슬로 체험길’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억새는 번식력이 강하고 주변 잡초에 이겨내는 강인함으로 인해 예로부터 생활력이 강한 우리 민족에 비유되기도 했다. 한강하구는 말 그대로 생태자연환경과 역사문화자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1968년도에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203호 재두루미 도래지역으로 하성면 봉성리에서 월곶면 조강리까지 약 14,8㎢(약 450만 평)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강 철책길은 초기에는 좋다. 하지만, 마지막 구간은 지루하고 지루하다. 17km 중 마지막 구간인 석 탁배수 펌프장을 지나면서부터 일직선 구간인데 변화도 없다. 철책선이 왼쪽에 오른쪽은 논이다. 아무것도 없다. 혹, 있다면 군부대 막사이다. 우리가 걸은 시간이 거의 6시에서 8시쯤 되어서 군인들이 초소 근무를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초소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맞은편 파주지역의 초소 아니 철책선에 있는 조명에 불이 들어와서 한강을 비추고 있었다. 전류리 포구에 도착하니 해는 졌고 대중교통은 끝난 시간이 되어 친구가 가족을 SOS 해서 우리는 그곳에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김포의 평화누리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김포의 알지 못하는 분야 즉, 드 넓은 평야를 보았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김포하면 서울에서 가까운 김포시까지의 정경만 보았다. 하지만, 한강하류까지를 보지 못하였다. 한강하류에 있는 김포는 드 넓은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삼각주의 마지막이 기름진 농토라고 알고 있듯이 이곳도 임진강, 한강의 하류에 형성된 기름진 농토인 것이다. 파주에서 민간인 통제선 안쪽의 드넓은 농토가 있듯이 이곳도 있다.


평화누리길 3코스는 여름에 이를 권고하지 않는다. 가을에 그것도 황금물결잉 넘실되는 시기에 이길을 걷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걷는 것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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