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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Dec 30. 2020

평화누리길 2일 차

4코스


김포지역의 평화누리길 1코스, 2코스, 3코스를 하루에 끝내고 고양시의 평화누리길 1코스다, 엄밀히 말하면 평화누리길 4코스다. 한강 이북지역의 철책 길이 행주나루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행주나루에서 시작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3대 대첩의 하나라고 배운 행주대첩의 행주산성을 거쳐 행주대교로 돌아온 후 일산의 호수공원까지 가는 길이다.


볼거리는 행주산성, 호수공원 등이 있다. 아울러, 이곳은 자전거도로와 걷는 길이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인도로 걷지만 자전거는 자전거 도로나 차도로 씽씽이다.


우리에게 인공호수로서 처음으로 도심 내 공원으로 선보인 공원이 일산의 호수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수공원 홈페이지에 설명하기를 일산 호수공원은 일산신도시 택지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조성한 근린공원으로서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를 만들어 도시인이 접할 수 없는 자연생태계를 재현하고 다양한 주변 경관 및 호수를 이용한 레크리에이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호수를 중심으로 한 4.7km의 자전거도로와 메타세쿼이아 길 등 9.1km의 산책로는 시민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이며, 그 밖에 생태자연학습장, 조형예술품, 선인장전시관 등이 다양한 생태문화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매년 고양 국제 꽃박람회, 가을꽃 축제, 호수 꽃빛 축제 등이 개최되는 등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공원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출처 : http://www.goyang.go.kr/park/park01/park01_2.jsp(호수공원 홈페이지)

선인장 전시관에서 출발하여 호수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나서 인도로 계속 걷다가 성말 다리에서부터 이제는 도심 속의 전원이 나타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도심 속의 정원은 논보다 밭이며, 밭도 원예작물이 많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곡물류보다는 수익을 최대로 확보할 수 있는 꽃, 채소류 등이 재배되고 있었다. 내가 걸을 당시에는 겨울이어서 비닐하우스가 주를 이루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철책을 만나는 지점에서 행주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철책 안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한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이 훨씬 볼 것이 많다고 보면 될 것이다. 행주대교에서 행주산성까지도 유사한 형태가 이어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평화누리길에서 가장 슬픈 길이 고양시를 지나는 구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무미건조하고 아무것도 없다. 시멘트 도로를 자전거가 지나가는 길옆에 걸어가야 한다.


행주산성입구에서 평화누리길 4코스가 종료된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이 화성의 독산산성 전투에서 이기고 한강을 넘어서 진주한 성으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명명된다. 행주산성에 올라가 보았을 때 그렇게 산성이 지형지물로 보았을 때 험악하지 않은데 어떻게 이 조그마한 성에서 적을 물리쳤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우선 기본적으로 한 면은 강이다. 수비하는 측면에서 한쪽을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적이 침입하였을 때 도망할 수 없다.


임란시 신립이 탄금대에서 적을 수비함에 있어 남한강으로 도망가지 못하는 결사항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곳에 배수진을 친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조선군 입장에서는 적은 육지에서 들어오고 도망을 가고 싶어도 적이 겹겹이 싸고 있고 강으로 가야 하는데 한강의 하류에 있어 밀물 때는 물이 가득 들어오고 썰물 때는 갯벌이 드러나서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다.


적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산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많은 수의 군사가 필요하지만 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그렇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교대로 공격이 가능하지만 교대할 시간이 이쪽은 수비를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교대로 공격을 하려면 고도로 훈련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이것이 행주산성을 지킬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되었다고 본다.


적을 물리치고 행주산성을 계속 방어한 것이 아니고 파주산성으로 이동하였다.


행주나루까지 이어지는 갯벌과 같은 진흙밭이 지금도 물이 빠지면 나타난다. 예전에 한강에 보가 없을 때는 더욱 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영향이 여의도까지 있지만 예전에는 잠실 위에 까지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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