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친구와 무의도를 걸으면서 300m도 안 되는 산에서 이제는 높은 산으로 가자 그리고 서로 가보고 싶은 산을 이야기하여 합의를 본 산이 가리왕산이다. 안내산악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2주 전에 예약을 하고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탄다. 오늘도 안내산악회 버스는 만석이다. 오늘은 착각을 해서 늦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사당역, 친구는 양재역에서 탑승을 한다. 사당역에서 10명 내외가 탑승을 하고 양재역에서 10명 내외 나머지는 죽전에서 또 탑승을 하고 버스는 달린다. 전날의 피로로 인하여 아니 새벽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탑승하여서 그런지 모두들 단잠에 빠져있다. 버스는 횡성휴게소에 정차하여 부족한 것을 채우고 남는 것을 없애고 강원도의 공기를 맛보게 한다.
버스는 다시 달린다. 대관령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계속적으로 오른다. 평창은 고도가 높다. 그 높은 고도까지 버스는 엔진의 출력을 높인다. 봉평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이란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이효석의 고향인 진부에 다가온 것 같다. 이효석은 봉평장이 생각나는 것 보니 내 머리도 아직은 쾌쓸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이효석 문학관을 방문했을 때를 본 기억이 있고 고등학교 시절 읽은 '메일꽃 필 무렵'이 생각이 났다.
이효석의 명작 중 걸작 <메밀꽃 필 무렵>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름 장이란 애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 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흐붓하게 사 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장에 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중략)
버스는 진부 IC를 나와서 59번 국도를 달린다. 59번 국도는 멀리 단양까지 연결되어 있다. 친구가 '이길로 가면 우리 집을 간다'라고 하였다. 59번 국도를 힘겹게 오르기도 하고 편안하게 내리막길을 달린다. 차장 밖에 강한 한 햇빛으로 인하여 밖을 내다볼 수 없다. 이제 버스는 장구목이 등산로 입구에 버스는 산이 그리워서 온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버스 아래의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어 모두들 준비를 한다. 산을 오르면서 필요한 장비를 챙기고 움직인다. 장구목이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다. 물이 우렁차게 나온다. 가리왕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인하여 계곡에 물이 더욱더 많다.
장구목이에서 출발하여 이제 가리왕산 정상으로 발을 옮긴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흐르고 등산로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우왕좌왕한다. 이 길이 맞는지 궁궁해 하기도 한다. 계곡을 만나기 전까지 계곡은 아래에 등산로는 떨어져 있어 계곡이 그리워진다. 계곡을 처음 만나면 너나나나 모두 계곡을 담는다. 이렇게 좋은 계곡이 있는 산을 찾은 것이 여름날의 즐거움이다. 여름날 계곡이 있는 산이 최고의 즐거움이고 1000m 이상인 산을 찾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계곡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등산객을 부르고 등산객은 그 우렁찬 소리를 찾아간다. 계곡을 내려갔다가 등산로로 돌아오면 쓰고 있는 안경에 김이 서린다. 계곡과 등산로는 온도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계곡은 서늘하다. 서늘한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모습을 담고 그 계곡을 즐긴다. 연세 드신 어르신과 같이 산을 오르는 아들, 약간 뚱뚱한 아이의 건강을 위하여 함께 걷는 부모의 모습이 산을 즐기면서 가족이 같이 오르는 모습이 흐뭇하다.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계곡을 벗어나 임도로 가는 등산로로 간다. 임도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가파르다. 장구목이에 차를 주차시키고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안내판이 있는 곳까지 올랐다가 돌아가면 시원한 여름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임도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으로 발을 옮긴다. 가리왕산은 종모양의 산이다. 그 종모양의 가파른 곳을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약 1km 정도를 오르면 주목 군락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부터는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그곳까지는 힘겹다.
산을 오르다가 특이한 바위를 보았다. 바위가 완벽하게 잘려져 있다. 어떻게 저렇게 잘릴수 있을까? 풍화작용에 의하여 1칸 1칸 잘려서 넘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저 모양으로 자르고 싶어도 자르지 못할 것이다. 그 잘린 곳에 앉으면 돌판이 되는 것이다.
잣나무가 우람차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있고 주목이 오래된 그 나이를 보여주면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주목군락지에서 속살을 드러낸 주목도 보고 넓은 가지를 드러낸 주목도 있다. 눈초파리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늘진 곳에서 바람이 있는 곳에서 주목을 담을 때에도 땀냄새를 맡은 눈초파리가 얼굴, 손에 앉는다. 눈초파리를 떨구고 산을 오른다. 삼거리전에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다. 오늘 소나기 예보가 있었는데 그 비인가하였는데 아니다. 정상에서 조망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곰탕이 진하게 우러나온 것 같다. 정상 바로 전 등산로는 잡목들의 나뭇가지가 자리를 잡고 있어 어렵다.
곰탕이 그렇게 우러나오지 않은 정상에서 멀리 볼 수도 없다. 산의 정상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뒤로하고 서둘러 휴양림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자리를 잡고자 하나 빗방울도 떨어지고 하니 모두들 내려간다.
하산길이 너무 좋다. 고원지역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 화전민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이지만 이제는 풀밭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몇 해 전에 이곳에 산불이 난 흔적이 있다. 이 좋은 곳에 산불이 났다는 것이 아쉽다. 산을 내려가는데 계곡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나는 몇 해 전 설악산에서 소나기를 만난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소나기라고 하였다. 소나기다. 설악산은 돌산이다. 돌산에서 소나기는 우산이나 비옷이 없으면 어렵지만, 가리왕산은 육산이다. 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래도 우산과 우의를 챙기고 산을 내려간다. 산에서 소나기를 만난 기억이 오늘에 도움이 되었다.
임도를 만나는 지점에서 소나기는 지나갔다. 모두들 정비를 한다. 우의는 벗고 우산은 접어서 배낭에 넣는다. 이제 임도에서 가파르게 계곡으로 내려간다. 갈지자로 형성된 등산로, 그리고 안전봉 등이 설치된 등산로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소나기가 왔지만 그래도 나무가 그것을 머금고 있어서 바닥에는 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에 도착하였다. 어은골이다. 정상에서 무엇을 먹으면 위하수가 될 염려가 있어 자제를 하고 계곡까지 내려온 것이다. 계곡 속에 있는 이끼가 서려 있는 바위 위에 자리 잡고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먹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계곡 속에서 무심결에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이 우습다. 소나기가 수시로 내리고 있는 시기에 계곡 속에 들어와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폭우가 내리는 계곡에 들어가면 갑자기 불어나는 계곡물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있는 내가 그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끼 계곡이다.
계곡을 벗어나 휴양림으로 내려간다. 오르는 계곡의 물이 그렇게 좋았고 내려가는 계곡의 물이 그저 그런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아니다. 두 계곡의 물이 오늘 우리들의 스마트폰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다 되도록 사용한다. 흐르는 폭포를 동영상으로 담기도 하고 사진으로 담기도 하면서 휴양림까지 내려간다. 휴양림을 바로 앞에 두고 징검다리가 어렵게 놓여있다. 심마니교를 지나고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간다. 하천의 오른쪽은 아스팔트 길, 왼쪽은 아름다운 트랙 길이다. 우리는 아스팔트 길로 걸었다. 왼쪽 길을 몰랐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에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몸도 담그고 산의 흔적을 지워본다. 버스에서 에어건을 내어 놓았다. 버스에 오르기 전 산의 흔적을 또 지운다. 버스는 달린다. 서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