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에 대하여

by 김기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의 뉴딜정책이 성공하였는지 궁금하다. 사실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하였다고 이야기한 세계 대공황의 원인에 대하여 처방에 대하여 논의가 다양하다. 경제학적으로 케인스의 이론이 적용되어 공황을 극복하였다고 배웠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전 세계가 불황의 조짐이 있었지만,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시 피해를 본 것이 아니고 전시 물품을 조달하고 각국에 비용을 조달하여 호황인 상황이었고 금본위제하에서 각국의 통화가 금과 연동되어 있으면서 통화정책을 추진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유럽으로 이전이 지속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 복구가 거의 완료되면서 잉여농산물이 미국에 그대로 남으면서 농산물 가격의 폭락을 불러왔으며 미국 중부의 가뭄 등에 따라 곡창지대에 농업인들이 문제를 유발하는 시점에 미증권 시장의 급락이 공황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이 있는 상태에서 해외의 잉여농산물 수입이 지속하므로 이를 억제하기 위한 관세율 인상은 세계 무역량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일으켰으며 전 세계적으로 공황을 확대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어떤 책에서는 후버 대통령이 관세율 인상을 주도했다고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관세율 인상을 주도하기보다는 의회에서 주도하고 후버 대통령은 이에 동조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후버 대통령이 1932까지 대통령 임기였으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미국 은행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은행의 인출 상태가 지속하고 파산됨으로 불황은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최초로 한 것이 은행의 신뢰 회복을 위하여 모든 은행의 영업정지를 정부가 명하고 회계감사를 통하여 문제없는 은행만 영업을 개시하게 한 것이 은행의 인출 사태를 방어한 첫 번째 조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1998년 IMF 위기시 은행의 인출 상태가 지속할 때 은행의 신뢰성 확보를 위하여 정부가 영업정지를 후 신뢰 회복을 하게 한 것도 이러한 것에 기초하였다고 본다. 2008년 금융위기 시에도 전 세계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집행한 것도 1929년 대공황의 역사를 교사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뉴딜정책을 집행하여 미국의 공황을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회복은 1940년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회복은 제2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있다고 보면 된다. 전시경제로 돌입하면서 미국의 확장적 경제정책이 시행되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실업률이 급격하게 하강하면서 미국의 경제는 호황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다만, 미국인들에게 공황 극복에 대한 희망을 뉴딜정책이 주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주한 미 대사관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자료에 따르면 ‘뉴딜 정책은 수많은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켰고 산업 생산 능력을 크게 높이는 한편 상품들의 가격이 오르는 결과를 가졌지만, 그 자체로 대공황이 막을 내린 것은 아니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은 좌파와 우파 양쪽의 압력에 직면하게 되자 새로운 경제 및 사회적 조치(제2의 뉴딜)들을 지원했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케인스의 재정정책을 집행하였다고 배웠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케인스의 이론을 들었지 그것을 실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케인스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실효를 거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확장적 재정정책을 집행한 결과로 실증이 되었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빈곤을 없애고 일자리를 제공하여 실업률을 낮추며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소위 제2의 뉴딜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정책에 있어서 주요 구호 기관이었던 취로 사업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WPA))은 단순히 복지 혜택을 제공하기보다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시도였고, 가장 중요한 성과는 뉴딜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1935년 시행된 사회 보장법(Social Security Act)으로서 사회 보장법은 사업주와 노동자들의 분담금을 토대로 고령자, 실업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 보험 제도를 정착시켰다’라고 미 대사관 홈페이지에 등재되어 있다. 우리는 뉴딜 등에 대하여 환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친미사대주의가 된 것이라기보다 좋은 면만 열심히 보여주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본다.
사실 미국은 불황 중에 불황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설명하지 않는다. 1937년부터 1938년 5월까지 불황을 맞았다. 원인으로 제시되는 것은 과도한 은행의 지급보증으로 유동성 위기를 불러일으켰으며 1936년 말부터 1937년 상반기까지 급격한 노동비용의 상승이 주원인이었다고 한다. 노동비용 상승은 생산품의 증가나 노동생산성의 증가 없이 이루어지므로 제품의 상승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제품 상승은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을 축소하였다고 한다. 1938년 반기업적 정책을 해소하면서 이러한 불황을 극복하기 시작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전쟁 특수로 이를 극복하였다.

keyword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09
이전 19화휴전협정 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