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창대하였지만 중간에 변수가 발생하면 그 창대함이 줄어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그 창대함이 점점 더 커져 감당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미지의 세계를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익히 경험을 한다. 삶은 사는 것 자체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산을 가는 것도 미지의 세계를 가는 것과 같다. 사전에 누가 걸어보고 그것을 산행기라고 써놓아도 내가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이다. 그 사람이 걸어간 것이고 내가 걸어간 길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미답의 길로 가보려고 한다.
내 친구 H가 말하기를 산에는 수많은 등산코스가 있는데 그 모든 등산코스를 가보기 전에는 그 산을 다 갔다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였다. 북한산, 도봉산 등에는 수많은 등산코스가 있다. 관악산에도 수많은 등산코스가 있다. 하지만, 서울 인근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다녀서 능선마다 등산로가 있다. 우리가 명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들은 그렇게 많은 등산로가 없다. 그러한 명산들이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어서 이제는 숨어 있는 등산로가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등산로는 3-4개 정도가 대부분이다. 국립공원 지리산의 천왕봉을 가는 길도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가거나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가거나 대원사에서 천왕봉을 가는 것이 전부이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천왕봉을 가던 길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는 남덕유산을 간다. 남덕유산을 가는 길도 3개 정도다. 첫 번째는 영각사에서 출발하여 영각재를 거쳐서 계단을 넘어서 남덕유산을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고 황점에서 출발하여 월성재를 거쳐 남덕유산을 가는 길이 있고 육십령 고개 길 위에서 출발하여 할미봉, 서봉을 거쳐 남덕유산을 가는 길이 있다. 사실 경상남도 덕유학생 교육원 쪽에서 서봉으로 올라 남덕유산을 가는 길도 있다. 영각 탐방지원센터에 자동차를 주차시켜 놓고 영각재를 거쳐서 남덕유산을 올랐다가 서봉으로 간 후 하산하면서 경상남도 덕유학생 교육원 쪽으로 하산을 하여 원점회귀할 수 이는 것이다. 아니면 반대방향으로 하여 원점회귀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덕유산은 영각재 방향, 월성재 방향, 서봉방향에서 정상으로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이번에는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할미봉, 서봉을 거쳐 남덕유산을 갔다가 월성재를 거쳐 황점으로 내려간다. 남덕유산은 겨울산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봄에서부터 가을까지는 육십령부터 출발하여 북덕유산까지 종주코스가 유명하다. 겨울에는 설산으로 유명한 곳으로 등산객이 몰린다. 남덕유산도 그러한 산 중에 하나다. 그런데, 금요일 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답지 않게 제주는 20도까지 상승하였다고 한다. 눈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지만 그래도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보기로 한다.
집에서는 비 오는 겨울산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얘기한다. 전날부터 내린 겨울비가 전국적으로 내렸고 토요일도 비가 예보되어 있다. 겨울비가 강원도와 같이 눈으로 변하기를 기도하면서 남덕유산으로 간다. 그 꿈은 대전을 지나고 금산을 지나고 무주에 접어들면서 차장밖으로 안개비가 계속비가 내리면서 산산이 깨어졌다 이제는 겨울산을 우의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에 걱정이다.
겨울산을 오르면서 눈을 맞으면서 오르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겨울비가 내리면 그것은 문제다. 겨울비에 젖은 옷은 온몸을 적시고 추위를 불러올 것이다. 육십령 정상에 도착하였는데 눈은 없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많은 비가 아니지만 걱정이 앞선다. 나무들에 잎이 무성하였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산으로 들어서겠지만 이것은 아니다. 배낭 속에는 우의는 없고 우산만 있다. 산을 내려갈 때에는 우산이 좋지만 오를 때는 우의가 제격이다. 다행히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가 열리는 시간은 주말만이라고 붙여져 있다. 그리고 우의가 있다. 몆 명이 구매를 하고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선다.
이제는 이정표가 있다. 한방향의 길만 있을 뿐이다. 이정표를 따라 을 뿐이다. 미지의 세계다. 산행기를 보았을 때 할미봉을 오를 때 힘들고 그다음에 서봉을 오를 때 힘들다고 하였다. 특히, 서봉을 오르는 2km 정도 거리는 만만치가 않다고 하였다. 할미봉을 오르고 내려간 후 서봉을 오르기 전에 만나는 길은 너무 좋다고 하였다. 경상남도 학생교육원 쪽으로 내려가는 삼지봉이 있는 길이다.
할미봉으로 가면서 암릉이 있는 곳을 지나기 전까지는 너무나 평탄한 길이다. 암릉을 오르고 또 내려간다. 할미봉의 암릉을 보면서 여기쯤이 정상인가 생각하는데 아직 아니다. 여기에서 1km 정도는 더 가야 한다. 할미봉 정상에 도착하여 할미봉이다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렇게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에 한탄을 하는데 자연이 보여준다. 멀리 남덕유산의 능선을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바위도 보여 준다. 그리고 할미봉에서 내려가는 데크에서 다시 한번 남덕유산을 본다.
이곳에 특이한 바위가 보인다고 하는데 그것인가 하고 쳐다볼 수도 없다. 맑은 곰탕이 아니라 진한 곰탕이다. 이곳에서 대포바위로 갈 수 있는 이정표가 있으나 볼수도 없고 시간도 없어 지나친다.
데크를 내려가고 바로 아래에 있는 가파른 언덕을 내려간다. 밧줄을 잡고 내려간다. 그 밧줄 없이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겨울산이 아닌 이른 봄산의 느낌을 맛본다. 진흙 투성이의 산이고 그 산이 나를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이곳을 벗어나면서 서봉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편안하게 걸을 뿐이다.
삼지봉을 지나고 서봉을 오른다.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다. 이곳까지 눈이 하나도 없었는데 산을 오르면서 눈이 있는지 물어본다. 서봉을 넘어오면서부터는 눈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봉을 오를 때 많은 눈이 있었고 그것에 대항하기 위하여 아이젠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반팔에 편한복장으로 내려오면서 아이젠을 착용한 모습이 이채로워 서로 인사하고 지난다,
서봉을 오르면서 이곳이 정상인가 하고 쳐다보면 조금 더 가야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정상이 보였으면 어느쯤이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르고 또 오른다. 미지의 세계를 가는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분이 다 왔다고 한다. 거의 다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힘들다고 하면서 선행하였던 산객이 쉬고 있다. 같이 쉬다가 오른다. 한고비 오르고 나면 또 오른다. 서봉의 높이가 1492m가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남덕유산 정상이 1507m인데 서봉 정상도 만만치 않다. 서봉을 넘어서고 내려가는 계단이 가파르다. 철계단이 100m 정도 내려간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걸어간다. 삼거리에 도착한다. 남덕유산 정상이 300m 남았다고 한다.
남덕유산정상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해발이 표시된 정상석이 있고 사람들이 있을 뿐이면 월성재 방향으로 눈길만 있다. 영각사 쪽으로 하산을 하면 데크를 타고 내려가면서 멋있는 경치도 볼 수 있지만 오늘은 아니다. 다음에 자동차로 와서 경상남도 학생교육원으로 올라와서 영각사로 하산해 보아야겠다. 이제 월성재를 거쳐서 황점으로 간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였는데 하늘에서 한점 두 점 비가 내리고 있다.
비를 살짝 맞으면서 월성재로 간다. 눈길이다. 서봉에서 내려올 때 눈길이었고 월성재로 가는 길이 눈길이다. 예전에도 이곳에만 눈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는 눈이 나무에 꽃을 피웠으나 오늘은 길에만 있다. 월성재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가파르게 내려간다. 4km 정도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낀다. 겨울비 오는 겨울산을 그렇게 걷는다. 바짓가랑이는 이제 진흙이 잔뜩 묵어 있다. 버스에 탑승하였을 때 기사아저씨가 싫어할 것 같아서 산죽에 묵은 빗물로 바지에 묵은 흙을 닦아내어 본다. 눈길이 사라지고 너도나도 아이젠을 벗고 우산을 들고 하산을 한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조금 남아 있는 눈길을 피하면서 걸을뿐이다.
개울을 지나는데 겨울의 냇물이 봄에 눈 내린 물이 흐르듯이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1주일의 봄날씨가 계절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내일부터 다시 추워져서 다시 겨울이 된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황점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기 전에 모두들 화장실에 들려서 그날의 산행에 따른 땀을 씻어내고 있다. 개울에 들려서 땀을 씻어 내는 사람도 있다. 겨울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집으로 간다. 차장 밖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