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략을 잘 수립하여야 한다.

by 김기만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반성을 하지 않고 그 책임에 대하여 회피하고 있다. 아울러, 그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그 이면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일본에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서 교토대 김은정 연구교수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의 정치사”에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남아시아는 대일 승전국이지만 연합국의 식민지라는 입장을 1950년대에 갖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연합국은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통치를 정당화하였고 샌프란시스코 협약의 당사국으로의 지위도 ‘한국은 폐전국 일본 일부였으며, 전쟁 당사국이 아님’이라 하여 영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결과 “광복군 및 식민지를 반대하는 독립운동을 부정”되었고 대일전쟁배상 요구의 좌절되었으며 청구권 요구 논리의 제약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 협약에 따르면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전쟁에 따른 배상을 받았다.
인터넷 백과사전을 조사한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를 한 국가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한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과 식민지 국가와 지배국가 사이는 지속적인 앙금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① 영국의 경우 1950년대 케냐 식민 통치 때 영국은 무장단체 '마우마우' 조직원들을 비롯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케냐인들을 물고문과 생매장, 성폭행 등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2013년 6월, 영국 정부는 공개 사과와 함께 피해자 5,228명에게 1,990만파운드(약 360억 원)를 배상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으로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윌리엄 헤이그 당시 외무장관의 말에 따라 배상이 즉시 이뤄졌다"라고 전했다. 이 사건은 영국 정부가 식민지에서의 범죄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한 첫 번째 사건이다. 하지만, 인도에 대하여 2014년 영국 정부는 런던 의회 광장에 마하트마 간디 조각상을 세우기로 했다. 한편 그러면서도 과거 인도 시위대를 학살한 사실에 대한 사과는 거부했으며 이번 조각상 건립 발표는 인도와의 경제협력 강화를 목적에 둔 분위기 조성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2013년에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인도에서 있었던 학살 사실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바가 있다.
② 네델란드의 경우 2013년 9월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 점령 통치 시기인 1945~1949년에 저지른 대규모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긴 인도네시아의 피해자 유족과 생존자 등은 1인당 2만 유로(약 2,500만 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③ 이탈리아의 경우 2008년에 이탈리아는 1911년부터 30년간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것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리비아에 25년간 50억 달러(약 5조 8,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리비아의 장학금·연금 등에 매년 일정액을 투자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④ 프랑스는 132년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2012년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알제리인들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한다"라면서도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아 프랑스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반감은 여전하다.
⑤ 독일은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식민지배 중 일어난 학살에 대해서 2004년에 와서야 학살 사실은 인정했으나 장관 개인의 담화 차원에 그쳤고 2016년에 와서야 독일 정부 차원에서 나미비아에서의 학살 사건을 집단학살로 규명하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동 논의, 나미비아에서의 행위에 대한 독일의 사과 등 요소를 포함해 정부 공동 선언을 준비 중이라는 의견을 밝혔으나 배상은 거부하였고, 또 이후 관련한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태도 전환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독일의 아우슈비츠 학살에 대한 사과와 나치에 대한 단죄는 식민지 지배가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소장 학자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지만, 그 실현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내부에서 드러나고 있는 모든 것을 용광로로 하여 우리가 극일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을 때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친일에 대한 청산보다는 우리가 극일 할 수 있는 자세로 그들을 이겨나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에게 있어서 구한말 시대라는 암울한 시대에 있어서 친일파, 친러파, 친청파 등이 있어 각기 세를 불리려고 한 기억이 있다. 그들이 세를 불리기 위하여 고종황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으며,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고 아관파천이 발생하여 황제가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러 있으면서 러시아와 긴밀하게 일을 한 사례도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사실을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는 그러한 역사를 자세히 설명도 해주지 않으면서 일본의 강제 점령하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잘못된 것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부화뇌동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친러파가 러시아에 우리의 국권을 넘겼으며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헤이그 특사였던 그분들이 지금은 영웅이지만 국권을 팔아넘긴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친일파의 문제는 정파를 떠나서 행동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서로를 공격하기 위하여 이를 이용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반성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독일은 사죄하였는데 일본은 사죄하지 않는다고 그 나름대로 주장을 하지만 독일이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것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시 전쟁범죄를 사죄한 것뿐이다. 일본이 우리의 위안부 문제에 사죄하여야 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로 몰아가야 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보상한 것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고 전쟁범죄에 대하여 배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몰아붙여야 하며 일본으로부터 그러한 사죄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전략을 새로이 수립하여야 한다. 감성에 치우친 전략과 동시에 이성을 이용하여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위안부 문제 등을 끌고 가야 한다. 감성에 자극은 흑백 문제 대두 시 미국의 언론사에서 보여주었듯 어린 흑인 학생을 공격하는 진압 경찰의 경비견이 공분을 일으켰듯이 우리도 그러한 부분을 발굴하여야 한다. 우리의 학자들이 일본의 도서관 등을 지속해서 찾아가 그러한 부분을 발굴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일본을 연구하는 것이 친일파가 아니고 그들의 속내를 알아내어 그들의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되도록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일본을 연구하면 친일파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일본을 연구하지 않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국회의장이 전범인 일본 국왕의 사과를 요청한 것은 지극히 적절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신성시하는 일본 국왕이지만 우리에게는 전범이다. 그런 만큼 전범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사죄하여야 한다고 본다.
재미있는 것은 그 수장이 몰랐다고 그 수장이 책임에서 모면하는 것은 아닌데, 최근 미국 대통령이 제국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일본 국왕이 최고책임자임에도 전범에서 빠졌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미국인의 감옥 수용에 따른 죽음을 수장이기 때문에 몰랐으며 그 책임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의 논리가 자기 편리한 의견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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