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

by 김기만

우리는 일반화를 잘한다. 한국에서는 일반화가 전문화보다 앞선다. 약간의 전문지식으로 일반화된 사람이 전문화된 사람보다 우대받고 그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러한 사례를 무수히 보았고 여론재판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 사회는 이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지식 사전에서 보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논쟁에서 가설을 설정하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제한된 증거를 가지고 바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을 즐겨 하는데, 이 말처럼 위험한 말도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예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가 갖는 취약성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화된 상식을 더 우대하고 전문가를 무시하고 문인이 무인도 겸직하고 전문가는 중인으로 그들의 지식은 기술(技術)로 폄하를 하였으며 그들이 승진하여 양반으로 대우받는 것도 반대하였다. 신분질서를 회피하는 자에게는 무자비한 박해가 가해졌으며, 일반 평민들은 신분질서를 회피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민화와 일반화로 인하여 우리 사회는 조선 시대에 중인이 하였던 직업 중 현재 최고의 고소득계층으로 분류되며 누구나 선호하는 의사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본다.


일반화의 가장 큰 문제는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인의 부족과 무인의 문인화 등으로 인하여 전시에서 군대를 지휘할 인력이 부족하였고 무인도 문인화 되어서 전투에서 역량을 발휘함에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몇몇 문인이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주대첩의 권율, 진주대첩의 김시민 등이 문인이었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칠전량 패전의 책임을 원균에게 돌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권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권율이 도원수로서 임금 선조의 명을 전달하고 이행할 것을 독촉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전체 전세를 볼 수 있고 정보를 수집하고 임금에게 전달하는 도원수가 전체 전세를 볼 수 없이 발생한 문제라고 본다. 문인이지만 기본적으로 조선 시대 선비의 경우 손자병법을 보았을 것이다. 공격은 수비의 5배 이상이 되어야 하며, 거짓 정보인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지형지물이 공격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전시라고 하여서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지휘한다면 안되는 것이 전문성이지만 이를 무시한 선조나 이를 전달하고 독촉한 권율이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원균의 모함에 대하여 나는 일반화의 오류를 본다. 원균이 임진왜란을 극복한 선무 일등공신이지만 우리의 이미지는 명장 이순신을 모함하고 칠전량에서 조선 수군을 몰살시킨 장본인으로 우리의 뇌리에 깊숙이 장악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맞다. 칠전량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시켰다. 지휘관이 지형지물의 특징을 볼 때 해협으로 이동하면 당연히 어려움이 발생하고 적의 공격에 따라 피해가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하는 데 이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섬을 돌아서 갔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박정희 시절의 이순신 극미화에 희생자가 필요하였고 이순신은 난중일기라는 기록물이 있고 원균은 기록물이 없다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순신이 영웅이 아니라는 예기는 아니다. 장군으로서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하였고 전쟁의 판세를 한눈에 보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였으며 적의 군사가 집중되어 있을 때 공격을 하지 않고 분산되어 있을 때 공격하여 조선수군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군 통수권자의 지휘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고민하여야 했다고 본다.
전쟁의 판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장군이고 지휘관이다. 단순하고 지엽적으로 정세를 읽은 결과는 칠전량 전투에 나타난 것이다.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었든 원균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권율과 선조는 교묘하게 빠져 나갔다.
권력자나 승자의 역사에 의한 일반화의 오류도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보았을 때 우리는 조선 시대, 고려 시대, 삼국시대 등의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만 보는 것이다. 이것을 일반화시켜서 우리에게 그들의 정당성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우리는 그것으로 인식하다. 우리가 배운 한국사는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 아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 배운 한국사는 갑자기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이 발생한다. 처음으로 접하는 광해군이 폭군이었다는 일반화에 대하여 인조 반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았으며 광해군이 지속해서 집권하였으면 우리 국토가 다시 한번 전장이 되는 사례가 없었을 것이며 삼전도의 치욕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황당무계한 얘기를 접하고 나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배운 한국사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한국사를 다시 보기 싫었다. 광해군을 쫓아낸 거사 세력은 인목대비의 조서를 통해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첫째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국을 죽인 죄, 둘째는 임란이후 궁궐을 복원하면서 백성을 괴롭혔다는 죄, 셋째, 후금과 내통하여 임진왜란시 명나라가 도와준 것을 잃어버렸다는 죄이다. 광해군이 비록 영창대군을 사사하고 대비를 폐비한 것은 유교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이지만, 그것이 반정을 하여야 하는 명분으로 부족한 것이다. 단지, 신하들이나 인조가 자기 목숨과 권력을 확보하려고 반정을 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다. 영창대군이 태어나서 자기의 왕권을 지속해서 위협하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유지할 임금은 없다고 본다. 태종 당시 그 많은 외척들이 왕권을 위협하였기에 어느 말 한마디로 죽음을 맞았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과 그 가족은 단지 세종의 처가라는 이유로 죽음과 관비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에, 광해군의 이복동생이지만 정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은 더욱더 위협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능양군(후에 인조)도 동생 능창군이 사사당하고 정원군마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복수를 다짐하고 반정을 한 것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광해군을 폭군이라는 멍에를 씌운 것이다. 그러면, 단종은 노산군에서 복위하였는데 왜 광해군은 복위를 하지 못하였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세조 집권후 노산군으로 격하된 단종은 무덤조차도 떳떳하게 보여주지 못하였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자도 무덤을 만든 후 숨어서 지냈다고 한다. 노산군묘 치제1)에 대하여 중종조2)에가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하니 그때까지 실세들이 세조의 찬탈과 노산군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역심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조선전기 사회이었나, 단종은 건국공신, 반정공신 등 훈구파 일색인 사회에서 명분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이동된 후, 조선사회의 극심한 명분론자들이 신하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복위가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면, 광해군은 인조 반정공신들이 서인이었고 그들은 조선말까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광해군을 복위하는 것은 반정의 명분이 사라질 뿐이었기에 복위는 논의 되지 않아 광해군으로 남게 된 것이다.
조선의 가장 강력한 폭군으로 연산군을 지목한다. 연산군이 폭정이 사실인가 여부는 실록을 보고 이를 확인하고 있지만, 연산군은 폐위된 왕이라 하여 연산군일기다. 연산군일기도 일부 학자들은 정확하지 않은 사료를 기초로 작성된 부실한 실록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그것도 폭정에 맞추어 실제 있었던 얘기를 기록한 것보다. 반정공신들의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 많다고 한다. 신동준이라는 분은 <연산군을 위한 변명>에서 연산군을 폭군으로 매도하는데 결정적인 배경이 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근인을 왕권에 대한 신권의 도전에서 찾았다. 또한, 변원림은 1962년에 출간된 이상백의 ‘한국사’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후대의 야사를 모아 놓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안정복의 ‘열조통기’ 등을 근거로 면밀한 고증도 없이 반정공신들이 귀양 간 세력과 연결해 연산군을 몰아낸 것으로 기술한 것이 왜곡의 시작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12년 동안 연산군이 집권하면서 무오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연산군이 폭군이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연산군이 폭군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대원군이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우리가 개방이 늦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조선 자체는 기본적으로 통상수교 거부정책이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조선은 섬에 사람이 사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공도 정책이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섬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였으며, 섬에 사람이 살면 그들은 범법자로 체포대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417년 태종 때부터 1882년 고종이 공도 정책을 폐지할 때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불멸의 이순신’(KBS역사 드라마)에서도 조선공도정책을 볼 수 있다. 어염당이라는 분이 섬에 사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하여 해도를 만들었지만, 수군은 그들을 죄인으로 처벌하려고 하였다. 조선의 공도정책은 명의 ‘해금정책’을 받아들인 정책이고 끊임없이 약탈을 일삼는 왜구로부터 백성을 모두 보호할 수 없었기에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바다를 버린 것이었다. 바다를 버린 국가는 번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영제국이 바다를 장악하였기에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조선은 이를 버렸던 것이다.


세계사에도 일반화된 것이 있다. 이슬람의 역사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기독교 세계가 주관이 되어 만든 역사라서 그렇다고 한다. 중동지역에 일어난 이슬람이 중세의 암흑시기에 중동지역을 평정하고 현재의 스페인까지 점령하고 동서의 문화를 융성시킨 사실이 있음에도 우리는 그러한 역사는 알지 못한다. 아라비아 숫자가 나타나고 다양한 화학이 발달한 아라비아지역의 역사는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기독교 관점에서 일반화를 한 결과이다. 현재의 이슬람교 사람들이 하루에 5번 기도를 하고 원유로 부를 축적하면서 기독교 세계에 테러를 지속한다고 보고 배운다. 우리는 그렇게 언론으로부터 그렇게 일반화의 오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이 전 세계의 1/3이 되어가며 그들의 경제적 부는 원유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진짜 모슬렘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서 일반화된 생각만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동의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민족은 다르다.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명칭이다. 아랍어로 ‘알라’는 영어로 표현하면 ‘GOD’이다. 그리고 유대교, 이슬람 및 기독교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종교전쟁에서 보면 유사한 종교에서 알력이 발생하여 지속 분쟁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을 보면 아브라함도 나오고 모세도 나오고 예수도 나온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 IS, 알카에다 등 이슬람의 일부 종파가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면서 타 종교인에 대하여 극단적인 행위를 한다. 이것을 보고 모두가 이렇게 생각한다. 이슬람교도는 ‘테러분자이다’라고 종교적으로 여성을 학대하고 다른 종교에 대하여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슬렘 이다. IS, 알카에다가 아니고 모든 이슬람 신도들이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부분에 불과한 이들의 행동에 따라 세계에서 모슬렘에 대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최근에 이들의 행동이 언론에 심각하게 비쳐서 이러한 것이 주목받을 뿐이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쉬에서 총리는 여성이 많다. 그런데, 일부 원리주의자들 때문에 여성 학대 종교로 알려지게 된다. 중동지역에서는 여성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든 것이 호의적이지 않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도 여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글이 무척이나 많이 등장한다. 중동지역의 특성일 뿐이지 종교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도 같은 형태를 보이지만,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만큼 언론은 기독교에 호의적이다. 사실 동양은 비폭력적인 불교사상이 지배하고 있어 더욱더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지도에 따른 일반화의 오류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북미대륙과 러시아가 아프리카 대륙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1596년 네델란드 지도학자 헤랄드 메르카토로(1512-1594)가 구형의 현실 세계를 평면지도 위에 그리면서 땅의 형태는 정확하게 보여주지만,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은 더 크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었기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이 북미의 3배이며, 러시아보다 크다. 캐나다와 러시아가 크게 나오면서 아프리카가 작게 나오는 것은 왜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유럽인들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사용되고 전 세계에 통용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미국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이동하는 거리보다 짧은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항의하였다고 한다. 나는 아프리카 그 좁은 땅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나라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이해가 간다.

지도의 명칭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가 부르는 것을 절대시 한다. 여기에도 애국주의가 들어가며 이것을 벗어나는 경우 매도 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기업들이 가장 유의하여야 할 부분이 이것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동해(East Sea)가 아닌 일본해(Japan sea)가 입력되는 순간 심각한 사항을 맞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의 오류는 곳곳에서 보인다. 자기가 최고의 전문가이며 자기의 기준에 모든 것을 적용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가 출동하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소방서장이 이를 지휘한다. 그런데, 이곳에 가보면 소방서장보다 시장, 도지사 등 정치인이 지휘하려고 한다. 화재진압은 소방공무원이 최고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너도나도 이를 지휘하려고 한다. 해상사고가 나면 이에 대처는 해양경찰이 최고의 전문가이다. 소방서가 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인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옆에서 지휘를 받아 지원하여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이를 지휘하려고 한다. 또 있다. 해난사고는 육상사고와 차원이 다르다. 육상사고는 그냥 나오면 된다. 하지만, 해난사고는 선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탈출하여도 그곳이 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물이다. 또, 육상사고는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해난사고는 접근이 제한적이다. 아울러, 육상사고는 사고가 나도 탈출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버스 등 교통사고의 경우 입구가 봉쇄되면 탈출을 하지 못하여 전원이 화재로 사망하는 경우와 같이 선박사고는 입구는 제한적이고 선박은 전복되거나 기울면 인명이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선박의 바닥은 철판으로 되어 있고 기울기가 15도 이상이면 미끄러져서 혼자서 탈출할 수 없다. 탈출을 위하여 로프가 필요하다. 등산할 때 30도 이상이면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그리고 디딤돌이 있고 흙이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박은 그러한 부분이 없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다. 특히, 선박은 바닷물에 떠있는 물체인 것이다. 땅에 있는 자동차의 경우 기울기가 그렇게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박은 기울면 기울기가 급격하게 변한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잘 알지 못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일반화를 한다. 세월호 사고시 누군가가 밖에서 접근하여 이를 구조하여야 하는데 해양경찰이 선박에 진입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문제가 발생하면 선박의 책임자인 선장이 상황판단을 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은 자기만 살고자 탈출하고 승객들이 선박에서 이동을 하면 선박이 급격하게 기울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을 하고 자기들만 탈출을 한 것이다. 기울어진 후 탈출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인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음에도 해경 직원 중 자기 목숨을 초계처럼 버리고자 선박에 뛰어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박에 뛰어들어서 학생들을 구해야 하는데 선박 밖으로 나온 사람들만 구조하였으니 문제인 것이다. 선박에 뛰어들어서 선박에 생명줄을 설치하고 학생들을 구하였으면 선박이 침몰하기까지 시간이 있었지만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지금도 대통령이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인 것이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목포해양경찰서장이 명령을 하였으나 이를 현장 지휘관이 따르지 않았다는 기록3)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이 또 있다. 기본적으로 세월호와 같이 큰 선박이 그렇게 뒤집어 질 수 없었다고 전문가들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출항 직전에 좀더 많은 화물을 선적하기 위하여 그들이 평형수4)를 줄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평형수가 줄었다는 사실은 선박에 승선에 승무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탈출만 하였고 그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박은 전복되었고 침몰 되었다.
세월호 사고 시 인명구조와 관련하여 현장 상황을 현장에서 보는 사람보다 어설픈 사람들이 최고의 전문가로 활동을 하였다. 이것에 정치적으로 이념의 잣대가 들어가서 더 사람들의 믿음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이들은 얻었고 반대편은 무척이나 고생하였으면서도 정권을 잃었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슬퍼하고 위로하면 그것이 권력이 되고 그것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면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해결하지 못하는 응어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옆에서 계속 부추기면 그것이 내가 그것을 주장할 당연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한 권한은 없다. 누구나 그것에 따른 의무를 이행할 때 권한이 있는 것임에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에도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는 것은 집단적 체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주 그렇고, 노조도 그렇다. 사업주는 자기가 종업원을 고용하고 정당하게 임금을 지불하는 의무를 이행하였을 때에만 종업원에게 할당된 책임을 이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노조도 자기가 고용에 따른 의무인 업무에 종사할 경우 사업가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권한이 있고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자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국민도 국가에 그 책임을 요구하면서 의무를 이행할 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국가가 책임을 짐에 있어 무한적인 책임이 아닌 유한책임이다고 본다. 피해를 본 곳은 처음은 호의적으로 이를 받지만 조금있으면 그들은 권력자가 된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감성적으로 국민을 자극하고 언론들은 거기에 부화뇌동하면서 피해자가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언론에 등장을 많이 하면 할수록 권력자가 되는 비중이 높아진다. 이러한 권력자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는 국민의 공분을 산자는 영원히 공공의 적이 된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온갖 혼란을 부추긴 사람은 책임이 없다. 민간업체에서 운영한 여객선에 대한 책임을 정부기관에서 져야 한다고 한다. 세월호 조사와 관련하여 정부가 세월호 조사단이 조사를 방해하였는지 여부를 수사하여 이를 처벌하는 것이다. 사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하여 구조책임과 운행에 따른 책임이외에 정부가 책임질 부분은 없다. 하지만, 조사 시점에 정치적으로 움직이면서 조사는 없어지고 정치적인 논쟁만 남으면서 조사를 방해 여부만 남았다.


최근 일반화의 오류를 또 보고 있다. 에너지 전환정책이다. 지열은 누가 봐도 그냥 얻는 이득이다. 태양광도 그냥 얻는 이득이다. 하지만, 그것에 따른 단점은 언급되지도 않는다. 지열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물을 단층 지역에 넣었고 그것에 지하수와 단층의 교란을 가져와 지진을 유발하였다. 일반화로 그것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단층에 물을 넣었을 때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지속해서 고민하여야 했고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이를 감시하여야 했다. 이것을 고민하지 않아 포항지역의 단층에 영향을 주었고 그 영향 때문에 유발 지진이 발생하였다. 부작용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 지속 감시하여야 한다.


태양광도 그렇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그것이 얻는 이득을 계산하면서 그것을 위하여 들어가는 비용은 계산도 하지 않으며 그것의 효용성에 대하여 논의도 하지 않는다. 태양광을 설치하면서 녹지가 사라지고 그 효용성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설치하면 전기가 생산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판넬도 수명이 있고 우리나라는 태양빛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그것을 논의 대상으로 올리는 것도 싫어한다.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도 그렇다.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동남권에 밀집해 있고 동남권(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남도, 경북도)에 밀집해 있는 인구가 약 600만 명이 이상 있다는 사실은 주지하면서 한국에서의 탈원전이 중요하다고 한다. 원전사고가 났을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를 대처하기 어려운 만큼 탈원전하여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웃한 국가인 중국의 동쪽에 원전이 집중되어 있고 중국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해류와 편서풍에 의하여 중국보다 우리에게 피해가 집중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원전의 그러한 문제를 이야기하면 이제는 원전에서 나오는 폐연료를 어떻게 할 것이냐로 문제를 이전시킨다. 이 부분은 전문가가 먼저 나서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문제인데 일반인이 이에 대한 공포심을 조성하여서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일반화의 오류를 만들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 미세먼지가 급격하게 부각되면서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증가시킨 결과라는 것에 설명하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부안의 위도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만든다고 하였을 때 부안에서 일어난 반대시위를 보았다. 일반화를 하였을 때 국민이 그것에 얼마나 거부감이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는 부안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경주에 넘겨주었다. 우리는 경주에 대하여서 일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경주 전체가 원전가 가깝고 폐기물처리장도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정구역상 경주이지만 경주시민들이 접근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울산시민들에게 가깝다. 경주라는 관광도시에서 관광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지만, 경주에서 생성되는 농산물이 없으니 거의 문제 될 것이 없으니 이를 추진하였다고 본다. 경주시민의 경우 토함산 등으로 경주 시내와 분리되어 있으며, 이미 월성원전이 있는 인근에 설치하였기 큰 문제로 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부안은 부안 인근의 농산물과 어업생산물이 있으니 그렇다고 보면 되지만 공포심을 조성한 것은 일반화였다.


일반화의 오류로 4대강을 볼 수 있다. 어설픈 전문가가 이를 이끌고 이념으로 무장을 하면 쉽게 문제를 유발하고 지속해서 이슈를 만들 수 있고 언론이 이에 부화뇌동하면 된다. 4대강에서 보를 만든 것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하천은 정비를 하여야 한다. 4대강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재난을 대비한 투자를 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치산치수는 옛 군주는 기본이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치산을 성공한 후 치수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천 주변에 밀집하여 살았다. 이유는 삼각주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원리는 간단하다. 하천이 범람하고 하천이 범람한 곳에서 농업에 종사한다. 하천은 범람하면서 농토를 만들고 새로운 하천을 만든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천이 범람하지 못하게 하면서 하천은 범람하여 농토를 비옷하게 할 토사를 하천에 그대로 두고 있다. 그래서 하상은 지속해서 상승하고 하천의 둑은 지속해서 높아만 간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아무도 이것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려면 임진강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생활습관도 하천의 하상을 지속해서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를 하천에 버린다. 그 버린 쓰레기가 홍수 등에 따라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하면서 하류는 쓰레기 천국의 강바닥을 만들었다.
우리 국민은 돈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 쓰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횡령하였다고 믿는다. 4대강 사업에 따른 천문학적인 공사비를 정부의 최고책임자가 횡령하였다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하였던 사람들은 일반화시킨다. 그래서 하천에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여름에 집중호우가 내리고 그것에 피해를 보는 국가는 하천공사는 단기간에 하지 않으면 돈을 지속해서 낭비하는 공사이다. 일례로 하천공사 발주를 2월에 하고 6월까지 완료하지 못하면 7월, 8월 집중호우 기간에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2월부터 6월까지 한 공사는 무용지물이 되고 공사비는 증가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천공사는 단기간에 실시하여야 한다. 그것 때문에 공사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간다고 이야기하여도 믿지 않는다. 단기간에 금액을 집중투자하여 공사를 끝낸 것이 오히려 공사비를 절감하였는데도 믿지 않는다.
보에 물을 가두면 물이 썩고 녹조가 발생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일반화의 오류이다. 기본적으로 하천에 물이 고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의 양이 적으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어느 선을 넘으면 물 자체의 정화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물의 부영양화가 문제가 된다. WTO협정가입, 한미 FTA 이후 우리는 축산농가가 너무 많아졌다. 우리 국토를 걸어 다녀보면 인가가 드문 곳에는 대부분 축사가 있다. 이 축사들에서 축산폐수가 생성 되는 것이다. 축산폐수는 축사에서만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축산분뇨는 우리들은 좋은 비료로 사용한다. 그 분뇨도 축산폐수가 되는 것이다. 부영양화된 하천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것을 도시에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벼농사를 물을 필요로 하며 그 물은 영양화가 될수록 좋은 것이다. 벼농사용 물을 1급수 또는 2급수로 사용하여야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한강하류의 물을 농어촌공사에서 물을 양수하여 김포평야, 강화에 물을 보내고 이것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한강하류의 물이 4급수 정도밖에 안되는 데 말이다. 축산폐수를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천으로 흐르면 물은 부영양화가 되어 녹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간과하고 물이 고이면 녹조가 발생한다고 일반화를 한 것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태양이 뜬다고 일반화를 하였지만, 그 일반화의 오류를 바로잡는데 몇천 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을 우리는 알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일반화의 오류를 그대로 두고 갈등을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보를 없애면 자연형 하천이 될 것이라는 오류이다. 우리나라 하천은 하상계수가 매우 높다. 여름과 겨울의 물의 양은 극과 극이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 나라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하천과 같이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하천은 보가 없으면 자연형 하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량이 풍부하지 않은 하천은 자연형 하천이 될 수 없다. 하천에 물이 썩어간다. 물 자체의 자연 정화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레기를 하천에 버리지 않는다면 더욱 의미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자연형 하천은 말 그대로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가능하지만, 한국처럼 인구가 밀집한 지형에서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믿는 것이 일반화의 오류이다. 요즈음 도심의 하천에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것을 보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10년 전만 뒤돌아보면 그 하천에 물이 흘렀는가를 알 수 있고 그 하천이 쓰레기와 오니5)로 덮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도심의 하천은 현재 양수하여서 물을 흘러 보내는 것이다. 돈이다.
북한은 우리의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가 도와야 하고 그들의 모든 행동은 민족번영을 위한 길이라는 오류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여 같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이러한 오류에 빠져있다. 그들의 지도자가 문제이지 그 백성은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도체계의 문제로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유럽의 종교전쟁을 보자, 아니 한국전쟁을 보자 같은 민족임에도 종교, 이념이 같지 않다고 하여 총과 칼로 서로를 미워하며 싸웠다. 사실 같은 민족이라고 하여 같은 정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르만 민족인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모두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민족 2개 국가가 존재하거나 2민족 1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생각이 같아야 같은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미국이 다민족 국가이면서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다.
미국이 우리를 무조건 도울 것이며, 미국은 한국은 등한시하지 못할 것이며 혈맹관계가 지속해서 유지될 것이라는 오류이다. 모든 국가는 자국 우선주의이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한국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들이 우리의 전쟁에 지속해서 관여하리라 생각하는 자체가 심각한 맹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도 자국 우선주의이다. 1970년 핑퐁외교라고 하여 중국과 미국이 외교협상을 할 당시에 대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로 미국이 인정하였다. 하지만, 대만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같이 생각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는 국방,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중국의 진출을 한국이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기에 미국과 한국이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과 미국의 외교 관계 국방,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미국은 대만의 사례와 같이 우리와 단교할 것이다. 이것이 냉혹한 국제관계이다. 미국을 무조건 신뢰한다는 것도 미친 짓이며 외교적으로 모든 국가를 신뢰한다는 것도 미친 짓이다. 기본적으로 국익을 위하여 어제의 적도 오늘은 동지가 되는 것이 외교 관계라고 보면 된다. 뮌헨회담에서 체코는 갑자기 영국, 프랑스 등이 독일로 독일계가 많다는 이유로 편입을 허용하였으니 얼마나 황당하였을 까? 우리도 1949년 미국의 에치슨라인에서 우리를 제외해 공산권이 오판하여 전쟁을 겪었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핵무기를 보고 우리는 우려한다. 핵무기는 공격무기가 아니고 방어용 무기인데 공격용 무기로 생각하는 오류이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공격용 무기로 사용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투하된 원폭 2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미국이 태평양 전쟁과 관련하여 오키나와 점령 전투에서 20만에 가까운 피아간 희생을 거치고 점령함에 따라 일본본토 점령에 따른 인명피해가 1,000만 이상 될 것을 두려워한 미국의 지휘부 판단에 따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다. 사실 미국도 원폭의 피해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새로운 폭탄에 대한 실험도 포함된 결과였다. 미소 냉전 시대, 인도-파키스탄의 분쟁 등에서 양측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나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공격하는 순간 공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공격용 무기로 개발하는 오류를 북측은 범하고 있다. 북측의 개방과 그에 따른 위협은 정권의 폐쇄성에 있는 것이지 무기의 강약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본다. 북측의 지도자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지속해서 얻어야 함에도 이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현 정부는 깨끗하고 전임 정부는 부패하였다는 오류다. 현 정부가 깨끗하였는지 여부는 다음 정부에서 판가름 날 것이며 이를 조사하는 검경, 판정하는 법원 모두가 현재 자기들이 깨끗하다고 한다. 결과는 모른다. 정치적으로 잣대를 그렇게 될 것인지 국민이 판단할 것이지는 아직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누구보다 깨끗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정부가 바뀐 이후 대통령까지 조사를 받았다. 조사과정에서 사망하여 기소권 없음이 되었지만, 그리고 더 많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형은 실형을 받았다. 그리고 대통령의 친인척은 누구나 대통령 임기 중에 처벌을 받았다. 자기 임기 중에 털고 갔다. 후임 정부에서 이러한 부분을 털면 본인까지 영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영상,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같다. 그리고 박근혜는 친척이 없었는데 측근이 있었다. 그런데, 측근이 문제를 더욱 유발하여 탄핵까지 되었다. 측근은 여성이었고 공식직함도 없었다. 사실 모두가 탄핵대상이었다고 본다. 자기 친척들이 뇌물을 받았으니 그것은 당연히 박근혜와 같은 경제공동체로서 뇌물수수혐의가 있다고 본다. 박근혜가 탄핵이 되고 현재 구치소에 있는 이유는 국민의 법 감정을 거슬린 죄이다. 그리고 혼자라는 것이다. 부군이 있었으면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대통령의 친인척을 처벌하면 반드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왜냐 경제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화가 되었다.


경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사이 좋게 살아야 좋다는 것이 일반적 이론이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자 경쟁을 하지 않는 사회가 없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은 경쟁이다.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노는 것이 원시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잉여생산물이 나오면서 더욱더 놀고 싶은 것이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마을을 습격하고 그들의 생산품을 뺏고 그들은 지배하였다. 분쟁의 소용돌이에 싸이지 않은 마을은 이웃 마을의 습격을 피하고자 그들 스스로 힘센 자들에게 마을을 지킬 수 있도록 의탁하였고 경쟁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씨족, 부족사회로 진보된 인간사회인 것이다. 그것을 다시 원시 씨족사회로 이동한다는 것은 거의 유토피아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염원한다. 어린 시절 경쟁에 내몰리지 않은 아동은 집에 있었다. 하지만, 집을 떠나 유치원, 학교, 회사로 이동하면서 경쟁과 사회규칙에 얽매이게 되면서 어려움을 해소하고 그들만의 생존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대학이나 사회에서 승리한자 만이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승리자란 정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지금 자사고, 특목고, 영재고 등이 입시경쟁을 유발하고 이들 때문에 사교육이 심화된다고 한다. 우리 사교육 시장은 가히 절정이다. 학부모들의 자기 불안심리와 자녀들은 학원 등을 갈 경우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에 사교육 시장으로 너도나도 간다. 직장인들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교육 시장은 가계경제에 있어서 가처분 소득이감소하는 효과가 있고 이를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된다. 자사고, 특목고, 영재고 등을 입학하려고 사교육을 받는 것이다. 돈이 계급을 만든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재고나 과학고를 제외하고 특목고를 입학을 한 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도태되는 학생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본인은 지금까지 하위권에 들어가본적이 없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곳에서 하위권으로 들어가는 경우 정신적 충격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자기들끼리 경쟁하여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고 터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대학입시에서 일반고 학생들과의 경쟁이 아니다. 사교육시장에서 그들은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사교육시장에서 고도과정 이외에는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전까지 사교육시장 주도적 역할자에서 퇴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만의 경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에서 그들에 대한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 외국에서도 그들은 그들이 학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사교육을 없애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없앴을 때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교육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사교육이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 공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공교육은 인성교육 이외에는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는 장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일반들은 사교육에 참여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보충이어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교육은 사교육의 장이 되어 버린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교육도 이제는 무한경쟁이다. 그들의 무한경쟁이 사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것과 사교육이 옛날에는 도농격차가 심화였으나 인터넷 보급 등으로 이것이 해소되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 무조건 좋다고 하였다. 비밀번호가 없으면 더욱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개인정보가 중요한 이 시간에 그런 곳을 찾았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와이파이에 비밀번호가 없는 곳이라면 누구나 동일 영역내 와이파이에 접근할 수 있고 같은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비밀번호 없이 상대방 단말기에 접근할 수 있고 접근한 단말기에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고 해킹 도구를 심을 수 있다. 편리성과 보안성은 반비례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알지 못한다. 편리한 점만 생각 한다. 집에서 와이파이를 검색하면 참 많이도 검색된다. 하지만, 이를 공유할 수 없다. 비밀번호로 차단을 하는 것이다. 나의 사생활을 남들이 볼 수 있고 우리집 컴퓨터가 다른 사람의 영역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네트워크에 비밀번호를 설정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털렸다고 언론보도가 난 적이 있다. 그만큼 편리성과 보안성은 반비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래시장이 장사가 안되는 이유를 대형할인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일부분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네 세상은 맞벌이 부부가 주다. 시장을 갈 시간이 없다. 젊은이들은 재래시장보다 마트보다 인터넷 쇼핑을 즐긴다. 요즈음은 인터넷 마케팅이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배달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하였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물품은 소규모로 편의점에서 산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소비하는 양이 적다.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는 저녁밖에 없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회사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집에서 먹거나 회사에서 먹으려 야식을 먹는다. 그래서 재래시장을 갈 일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마트가 문제이며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한다. 마트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장사가 안된다고 한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이야기하면서 약자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대중영합주의적 정책이 표를 얻기 때문에 재래시장을 위하여 일요일에 마트의 영업을 중지시키는 법률도 제정하였다. 그런데, 주변의 재래시장도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하여서 같이 문을 닫는다. 50대 전업주부들도 재래시장을 잘 가지 않는다. 대형마트가 어느 지역에 들어가면 상생 기금을 내놓는다. 상생 기금의 주인은 없다. 그래서 나누어 쓰자고 한다. 재래시장이 잘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기금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우선 재래시장의 본연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 재래시장과 마트 등이 공생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마트도 안 되고 재래시장도 안되고 마트에 물품을 납품하는 농업인도 안되었다. 하지만, 마트 종사 사들은 1달에 2번은 반드시 휴식할 수 있는 이득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재래시장이 안 되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홈쇼핑이니, 인터넷 쇼핑이니, 스마트폰 쇼핑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폰세상이다. 원격쇼핑과 택배가 결합하여 재래시장은 격침된 것이다. 택배로 모든 것이 움직인다. 이동하기 어렵다는 농산물, 어류도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을 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하였던 이마트, 롯데마트가 철수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다. 사드 등으로 한국에 대한 반감도 있었으나 시장이 바뀐 것이다. 재래시장, 중간상인을 경유하지 않는 것이다. 재래시장에 가보면 알 것이다. 젊은이들은 드물다. 그들은 문화를 즐기기 위하여 재래시장을 찾는 것이지 쇼핑을 위하여 재래시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스페인의 재래시장도 차별성이 있었다. 그들에게 마트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재래시장도 문화로 정착한 상태였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히트할 때 재래시장도 활기를 띠었다고 하였다. 이마트, 롯데마트도 요즈음 잘 안된다. 인터넷 쇼핑이 문제다. 이를 규제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제 인터넷 쇼핑도 규제할 태세다. 택배노동자의 인권 보호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우리를 일반화의 오류로 이끄는 요소 중 하나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Fiction과 Fact는 다름에도 Fiction을 Fact로 오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발영화나 다큐멘터리영화는 Fiction이지만 Fact를 가미한 것이 사실이고 이를 반영하였다고 기술하지만, 그 이외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이 많음에도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Fact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를 다루는 Fiction은 심하다.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Fiction이라고 이해를 하여야 함에도 Fact로 이해한다. 사실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주고 세계에 한국을 많이 알린 ‘대장금’도 중종실록에 한 줄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 Fiction을 만들 것인데 모든 사람은 Fact로 이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의 오류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영화가 범죄를 다루는 영화가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조폭 영화를 보면 조폭은 의리가 있는 것처럼 비춘다. 조선족 등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 인종차별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족을 혐오하게 만든다.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제일 먼저 Fiction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여야 할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중에 가장 일반화의 오류를 이끄는 것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라고 보면 될 것이다.
조선족과 고려인을 비교하면서 고려인을 더 우호적으로 본다. 고려인은 스탈린의 민족이동 정책에 따라 고생하였고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의 후손인 만큼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다. 조선족은 우리에게 지속해서 나쁜 짓을 많이 하였고, 한국 내에서 범죄인은 조선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선족도 고려인도 재외동포이며,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였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같이한 동포라는 사실은 같다. 다만,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으며, 조선족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였고 한국이 잘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제일 먼저 들어온 3D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조선족 중 일부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고 바로 이웃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일부 네티즌이 이렇게 언급하였다고 한다. ‘조선족 극혐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조선족 모두를 경험하지도 않았으면서 일반화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세상이 첨단화되고 온라인화되면서 살기 편리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의 자유는 없어지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1990년대 초까지만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1990년대에는 우리의 무선기기 삐삐라는 호출기만 있었고 휴대폰은 그래도 좀 부자만 갖고 있었다. 삐삐시절 우리는 연락이 오면 공중전화부스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앞사람이 끝나기를 이때문부터 수요자가 공급자를 제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만의 자유가 없어진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연락하였으나 이제는 필요한 사람보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연락을 취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은 그 당시에 가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터를 떠나는 순간 연락이 가능한 집 등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사람은 자유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아니다. 움직이는 사무실이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려면 그 장소로 이동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그날 일정도 갑자기 잡힌다. 그만큼 첨단사회로 오면서 개인의 사생활은 없어진 것이다. 개인의 편리성이 아니라 사회의 편리성이 강화된 것이다. 요즈음 이러한 사회를 싫어하여 산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보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편리성을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이것이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넷은 모든 것을 연결하였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이라고 한다. 현관도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외출하면 집에 누가 왔다 갔는지 알 필요가 없었는데 외출을 하여도 집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현재이다. 편리성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편리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에 옭매어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연결사회에 살면서 연결의 편리성만 강조한다. 연결이 되면서 단편화된 생활을 하고 잠시도 휴식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몇몇기업에서 집중근무시간을 갖는다고 하였다. 옛날에는 항상 집중근무시간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연결이 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유선전화기가 현장에 없으면 직접 사람이 왔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인휴대전화가 있고, 인터넷이 있다. 그래서 시간은 단편화(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이것저것 하는 것) 된다.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은 외부인이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돌본다고 생각한다. 또한, 친부모보다 계모, 계부가 더 아이를 학대한다고 생각을 한다. 콩쥐·팥쥐, 신데릴라의 이야기를 보면 계모가 전처의 아이라고 학대를 하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아동학대 사건의 대부분이 계부 또는 계모와 관련되어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일반화되게 하였다. 아이들을 학대한 통계를 보면 친부모 사건도 의외로 많다. 친부모가 학대 사건이 극단적인 사건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 많이 나타난다. 아울러, 아이들은 회피할 수단도 없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계모, 계부도 아이들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친부모 밑에서 자랐으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도 가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친부모는 아이들의 목숨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동반 자살하는 사례도 많다. 부모라고 하여 아이들의 목숨을 가질 권리가 없음에도 말이다. 아동학대 사건은 기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사실 가장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글에 대한 무한대에 가까운 찬사를 우리는 보내면서 일본어, 중국어에 없는 띄어쓰기 등을 찬양하고 발음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도 일반화의 오류 중의 하나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 때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다. 한글의 띄어쓰기에 대하여 국립국어원 자료에 따르면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는 1877년 영국 목사 존 로스(John Ross)가 영어식으로 자연스레 띄어 쓰기를 한 것인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이며, 간행물로는 1896년 서재필, 주시경, 미국인 선교사 허버트 등이 만든 `독립신문`이라 한다. 한글 띄어쓰기가 보편화 된 것은 `한글맞춤법통일안`(1933년, 조선어학회)이 이후라고 한다. 우리한글이 나온 후 거의 500년 후에 띄어쓰기가 된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띄어쓰기 되지 않은 한글을 읽다보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문장을 보았을 때 이를 해석하기 참 어려웠다. 천주교의 죽산성지에 갔을 때 죽산성지 연혁 등이 띄어쓰기가 되지 않아 이를 읽으라고 써놓았는지 의심스럽웠다. 100년 약간 지난 이 띄어쓰기가 한국인에게 무척이나 어렵다.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영어에서는 모든 단어는 띄어쓰는데 한글은 띄어썼다가 붙여썼다가 복잡하다. 의미전달이 잘 되도록 단순화 하여서 이를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나 대학을 나온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급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국어학자들은 점점 복잡하게 만든다. 이제는 고등수학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발음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이 발음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외국인이 발음하는 부분에 대하여서는 어려움을 표하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 등에서 발음되고 있는 설음은 거의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독일과 같이 이러한 알파벳을 만들어서 추가하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영어나 중국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한글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한글로 표현하는 경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불은 소방관이 모두 진화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불은 아닌데 국민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서울의 경우 소방본부가 책임을 지고 있지만, 타 지자체의 경우에는 다르다. 대부분이 산림을 담당하는 부서가 총책임을 지고 시장, 군수, 도지사 및 산림청장이 책임을 진다. 산불은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진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소방당국은 산불이 발생하면 주택 등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응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불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이 산림청 헬기와 지자체가 임차한 헬기인 것이다. 헬기가 없으면 산불을 진화할 수 없다. 소방헬기로 산불을 진화한다고 어느 신문은 이야기를 하는 소방헬기라고 하는 자체는 왜곡을 불러온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산불감시기간에는 산불감시를 위하여 산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하면서 소방당국이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국민들이 정책당국을 잘 모르면서 일반화하는 예는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당국은 오해를 사고 불신을 받는 것이다. 정부당국에서는 이러함 점을 고려하여 통합상황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산불진화 책임을 어디로 할 것이냐를 갖고 또 논쟁을 시작할 모양이다. 참여정부 때 한 차례 이러한 부분이 있어서 교통정리를 하였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공동고시도 만들어 운영중이다.
소방관을 지방직으로 하느냐, 국가직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논쟁하면서 소방관이 국가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소방관이 국가직이 되는 것은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소방관이 지방직으로 있을 때 불이익이 있었기에 국가직을 원하고 정치권은 이에 동조하는 것이다. 지방자치제에서 소방관이 국가직이면 단체장은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다.
재난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책임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책임자, 재난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인 것이다. 특별히 재난을 자연재난과 인적재난 등으로 구분하였을 때 자연재난은 행정안전부장관이 중앙대책본부장이 되어 이를 대처하고 인적재난이나 사회적재난은 해당부처 장관이 재난본부장이 되어 이를 대처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린다. BH의 안보상황실의 위기대처반은 정부를 대표하여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은 실정법이지만 국민정서법은 안전에 대한 책임 대통령을 찾는 것이다.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1994년부터 지방자치를 하였으며 지방자치제에 따라 지방의회도 있으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에게는 중앙정부도 없고 지방정부도 없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에게 지방자치제는 내가 판단하건대 무늬만 지방자치제다. 대통령이 갑자기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하고 국무총리가 나서서 진두지휘한다. 법률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란 말이 없다. 단지, 학계에서 이야기할 뿐이다. 미국이나 지방자치를 하는 곳이라면 지방정부의 특성을 반영하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방자치제는 정치의 통로일 뿐이다. 보도자료 등을 보면 알 것이다. 정부에서 작성된 사례를 보면 지방정부가 아닌 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이를 이행한다고 작성되어 있다. 자치단체로 폄하를 하여 운영 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방정부가 있는 것을 보면 복지 부분 이외에는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하여 일본식 지방자치제도에서 기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자치사무나 단체위임사무의 경우 특별히 문제 될 여지가 크지 않지만, 기관위임사무의 경우 문제가 많으며, 단순히 중앙의 사무를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앙의 하위행정기관의 지위에서 위임하게 됨에 따라 지방자치 이념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기관위임사무 폐지를 추진하였고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한국의 경우는 자치사무와 기관위임사무가 대부분인 상태로 유지되어서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즉,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경우에는 법에 규정되어 있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중앙행정기관이 임의로 개입을 한다. 위임사무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중앙행정기관이 개입하지 않으면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30년이 되어가지만, 대통령에게 모든 것이 화살로 돌아간다.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특히 더 그렇다. 산불, 홍수, 폭설의 경우에는 지자체장이 책임을 지고 마지막에 대통령이 책임이 있으나 긴급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하고 대책을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호와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해상사고는 기본적으로 해경이 책임이 있으니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맞다. 지방자치제를 하는 것인지 중앙집권제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오랜 습관에 따라 이러한 경우가 지속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는 법에 중앙행정기관이 개입을 위하여 미국과 같이 재난지역 선포 등 선결 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검찰이나 경찰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승인하는 경우 그 사람은 범법자로 인식을 한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최종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은 미결수로서 구치소에 있고 기결수가 있는 교도소에 있지는 않는다. 구속6)의 사유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구속만 되면 범죄가 있다고 인식을 한다. 법원 판결 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인식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음에도 검․경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구속이 되는 경우 수사가 종결되기 때문이고 추가 수사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인하는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피의자의 진을 빼놓기 위해서, 방어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구속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구속이 많지 않음에도 우리는 구속이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중앙선데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검찰에서 가장 수사를 잘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총동원돼 구속까지 한 사건의 무죄율이 왜 이렇게 높았을까. 12건의 해당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거나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판단이 75%였다’7)고 한다.
법적으로 볼 때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수사와 재판 도중에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하지 못하도록 신체의 자유를 제한해 놓은 조치일 뿐이다. 그러나 구속은 ‘사실상’ 처벌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1년간 구속된 후에 무죄판결을 받고 나갈 것인지, 구속되지 않은 채 재판을 받다가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을 것인지를 놓고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구속영장을 발부 여부를 갖고 정치적 논쟁을 하고 이념 갈등이 발생한다. 어떤 사람을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으면 상대편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댄다.
구속되지 않는다고 하여서 범죄혐의가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구속되지 않으면 무죄인 것으로 생각을 한다. 불구속기소 되어 재판을 받는 것이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것과 차이는 인신이 자유롭냐 아니야 차이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지만, 불구속 재판된 사실 자체로 무죄로 착각을 한다. 전직대법원장, 전임 대통령 모두 구속재판이다. 그들이 도망갈 일은 없다.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이 무섭다. 그들을 불구속하면, 그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으면 담당 법관은 그들과 부화뇌동 한 자가 되는 것이다.
공무원은 정치적이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은 정치적이다. 항상 여당에 기울어져 있다. 여당이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한다. 그렇기 친여 인간들이다. 여당이 야당이 되면 돌변하는 것이 공무원이다. 그래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더욱 심하다. 단체장의 눈에서 벗어나면 승진도 안 되고 한직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체장의 입에 맞게 일을 하여야 한다.
손님은 왕이고 고객관리 측면에서 공무원은 민원인이 중요하므로 친절하여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며 이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래서 전화를 받고 이를 해결하여야 한다. 고객응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감정노동자라 한다. 공무원도 감정노동자임에도 보호수단이 없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고객의 폭언․폭행 등으로 인한 고객응대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해야 한다. 관련법에 따르면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전화응대 업무는 음성안내를 해야 하고, 고객과의 문제 상황 발생시 대응조직․대처방법 등의 내용을 담은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고객응대 노동자들에게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내용 및 건강장해 예방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26조의 2)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시행되었지만 정작 현장은 준비가 부족하였다. 정부의 현장은 어떤가? 정부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은 많다. 공무원은 을이다. 권위주의 정부가 있을 때에는 ‘갑’이었지만 이제는 ‘을’중의 ‘을’이다. 민원인이 ‘갑’인데 그것에 대한 보호수단은 미약하다. 그들이 문제를 유발하면 담당자들은 피곤하니까 비굴해진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방어를 위한 다양한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어 이를 뚫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할 것이다. 민원을 내는 사람들의 성격이 어떨까 생각해보니 사회에 관심이 많아서 일수도 있고 사회에서 상처를 받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그래도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민원을 제기하지만, 사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위하여 민원을 제기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각해보자 손님이 모두가 선의인가를 생각해보자 선의의 제3자는 보호할 가치가 있으나 이를 벗어난 상대방은 보호할 가치가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자기의 권리만 주장을 한다. 타인의 권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다. 은둔을 하는 사람은 은둔을 하는 만큼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은 너무 힘들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현병, 우울증, 사춘기 증후군 현대인의 질병 같다. 옛날에도 있었는데 이것은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한다. 그것은 예전에 노출되지 않았고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현대문명에 따라 발생하는 환경 질병과 유전자 조작 등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본다. 이타이이타이병도 그렇고 방사능에 오염되는 것도 그렇다. 방사능물체를 발견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았고 그들은 그것은 금지옥엽처럼 보물로 다루었다고 한다. 라돈을 발견한 퀴리부인도 그것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자기는 그것의 피해를 알지 못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알지 못하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그것이 주는 무서움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어설픈 사람의 정의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질병은 예전에는 외부에 그렇게 노출되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그것이 그렇게 노출되어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누군가가 이야기 한 것을 들었다. 예전에는 진리였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금도 진리처럼 모두가 신뢰한다. 하지만, 그것은 원시사회, 농경사회에 적합한 용어라고 본다. 산업사회, 정보화사회로 변모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될 뿐이라고 본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선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이 프랑스 전선이며 뭉쳐서 전투를 하여 기관총의 표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관총이 등장하기 전까지 공격앞으로 명령에 따라 일렬로 공격을 하는 경우 적의 화살과 총의 공격은 제한적으로 움직였지만 기관총이 전명으로 등장하면서 일렬로 공격하는 자살행위였던 것이다. 흩어져야 함에도 뭉쳐서 죽은 것이다. ‘뭉치면 산다’는 것인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을 표시하기도 한다. 다수의 의사가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님에도 52%로 48%를 이겼다고 48%가 모든 것을 잃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주류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 지구가 돈다고 콘페르니쿠스가 이야기 하였지만 당시 주류는 소수의견으로 이를 당시에는 존중하지 않았고, 헬리코박터균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도 믿지 않은 것이 뭉쳐진 다수인 것이다. 현대사회에는 어쩌면 흩어지는 것이 생존할 수 있는 진리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콘페르니쿠스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새로운 발상으로 뭉쳐져 있는 사회를 탈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뭉쳐져 있는 사회는 일본사회가 대표될 수 있다. 일본사회는 이러한 뭉쳐져 있는 사회를 근본으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소’라는 것을 운영하였으며 ‘소’의 규율을 어길 경우 ‘추방’당하였다고 한다. 일본의 ‘소’는 이익집단이기도 하였다. ‘소’는 일본의 평민들이 그들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구성한 것이다. ‘소’에서 영주에게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이를 무시하였을 때에는 영주의 성을 가감히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영주는 농민이 없을 경우 소출이 없고 무사집단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을 다독일 필요가 있었기에 이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잠재의식이 일본은 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그래서 집단의식이 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군국주의 사항이 극에 달하였을 때에는 자기의 하나뿐인 생명도 무시하는 ‘카미카제’도 하였던 것이다. 한국은 자고로 뭉치기 보다는 흩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뭉쳐서 이득을 본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뭉치는 경우 관청의 수탈이 있었고 지배층이라는 양반들은 이들이 뭉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이제이와 같은 형태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웃집의 군포까지 부담하는 사례도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집단적으로 뭉치는 것은 나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일치할 때 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나의 이익이 없는 데 집단화하면 나의 이익이 사라지는 되 누가 뭉치겠는가? 모든 사회가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한국사회만 이렇겐 정의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가 동일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일반화의 오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
1) 국가에서 왕족(王族)이나 대신(大臣), 국가를 위하여 죽은 사람에게 제문(祭文)과 제물(祭物)을 갖추어 지내주는 제사(祭祀)
2) 중조실록 27권, 중종 11년 12월 10일 병진 2번째 기사, 우승지 신상을 보내어 노산군의 묘에 치제하다.
3) 목포해경서장 김문홍은 오전 9시 51분∼10시 6분 "승객들을 전원 퇴선 조치하라", "반대편(우현)으로 이동해 승객들이 뛰어내리도록 하라"는 등 4차례 명령을 123정에 내렸다. 하지만, 123정은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의 4차례에 걸친 퇴선 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다.
4) 선박에 짐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또는 공선(空船)상태 에서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선박내의 평형수 탱크에 채우거나 바다로 배출하는 물을 말합니다
5) 오니(汚泥, sludge, 슬러지)는 하천이나 호수 바닥의 퇴적된 오염된 흙이다.
6) 법원은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고, 1)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2)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거나, 3)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 법원은 구속 사유를 심사하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
7) https://news.joins.com/article/21527962(2019.4.11.,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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