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13일 차(강진에서 해남까지)

by 김기만


이제 삼남길도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

강진까지 갔으며 2일만 더 가면 땅끝마을에 도착한다.

서울 남태령에서 출발하여 14일 만에 땅끝마을에 도착하는 것이다. 매일 걸었으면 16일에서 17일 정도 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1박 2일 동안 걸어보니 2일 동안 80km 정도밖에 못 걸었다. 그리고 옛사람들도 100리를 하루 동안 걸었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주말을 이용하여 이동하면서 48km, 50km를 수시로 걸어 14일 걸렸다. 그래서 2-3일 정도 더 걸렸을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을 위하여 또다시 나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싣고 광주 송정역에 내린다. 새벽기차는 탑승객이 부족하여 할인을 해준다. 우리에게는 감사할 뿐이다. 새벽기차를 이용하여 빨리 출발하고 부족한 잠은 기차에서 보충을 한다. 오늘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남쪽 끝인 강진까지 가야 한다. 새벽 5시 20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광주 송정역에 도착한 후 광주에서 목포로 가는 무궁화로 환승하여 나주역에 도착하니 7시 20분이다. 오늘도 나주역은 승용차로 포위되어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택시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주역에서 내리자마자 영산포에서 동창 터미널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하여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장애를 무릅쓰고 운전을 잘한다. 그분은 어떤 사고로 한 손을 잃어버렸다고 좌절하지 않고 운전을 배워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애절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장애는 회피하고 감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영산포에서 강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강진에 도착하니 8시 40분이다. 일일생활권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의 남쪽 끝에 서울에서 출발한 지 3시간 20분에 만에 도착한 것이다. 9시 20분에 우리가 출발하여야 하는 도암면에 도착하였다.


하루의 시작을 9시부터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시작하였다. 오늘도 최대한 걷고 내일은 조금만 걷자로 의기투합한다. 강진에서 출발하여 해남으로 들어간 후 종료지점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지점으로 정하였다.


그냥 걸었다. 아무것도 없다. 넓은 들만 보인다.

마을도 있지만 그렇게 특색이 없다.

어느 마을 지나는데 연꽃이 연못에 가득하다.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연꽃을 사진에 담는다.

드넓은 논에는 벼들이 활착을 하고 한잠 가지 벌기를 하고 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혼자서 땡별에서도 고추밭, 들깨밭에서 김매기에 바쁘다. 친구가 대낮에는 좀 쉬라고 그랬더니 아직은 괜찮다고 하신다.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서해도 아니고 남해다. 강진읍내에서 바다를 보긴 하였지만 산 위에서 본 것이고 바다에 인접한 것은 처음이다. 바닷가이고 햇빛은 강한 만큼 선글라스를 쓰고 걷는다.

해안관광도로를 만난 것이다. 바다를 만나자마자 우리 남해에 도착하였다고 집에 전화를 건다.

해안관광도로에 자동차는 보지 못하였으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관광객은 있다.

해안을 끼고 해남까지 갈 것이다. 바닷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제 이 길을 걸으면서 지도 위에 없는 길을 걷기도 한다. 강화도 나들길을 걸을 때 보았던 간척된 길이다. 만 하나를 방조제를 건설하여 간척된 땅을 만들어 놓을 곳도 있다. 아직은 바닷물이 넘나들어 땅이 나타나지 않지만 몇십 년 이 지나면 육지로 완전히 변할 것 같다. 이 길에 대하여 강진군과 해남군은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정유재란 후 선조의 의심병 때문에 한양에 압송되어 온갖 고초를 당하였고 그래도 선조의 일말의 양심으로 백의종군 한 후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대패를 해소하기 위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였다. 전쟁 중인 장수를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선조는 임금으로서 무능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임금으로서도 부적격자였으나 유능한 신하가 살린 것이다.

조선 말이라고 하여야 하는데 우리 표준국어 대사전에서 한 말이라고 언급한 시기에 임금이 유능하거나 신하가 유능하였다면 우리에게 고초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통제사로 복귀 후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의 수중에 없는 남도의 남쪽을 지나면서 수군을 재건하였던 것이다. 일본군은 순천 여수 등지를 점령하고 계속 서진하는 과정에서 명량에서 13척의 이순신의 함대에 의하여 격퇴당한 것이다.


간척된 방조제 위를 걷는다. 햇빛을 가릴 도구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걸을 뿐이다. 중간지점에 도착하니 사내호라는 표지석이 있고, 승두섬 유래비가 있으며 쉼터가 있어 쉬어본다. 여기서부터는 해남이다. 강진을 벗어나 이제는 해남인 것이다. 승두섬은 내동 산 1번지로 되승(升) 말도(斗)를 따서 곡식을 되는 그릇이란 뜻으로 면적 600평 높이 20m 섬이 었으며 배수갑문 설치로 없어졌다고 한다.

수문이 있음에도 민물호인가 보다. 낚시인들은 이곳에서 잉어, 블루길, 가물치, 민물장어, 동자개, 메기, 새우, 참붕어 등을 낚시한다고 한다. 사내호는 간척 호수로 인근의 간척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조성된 호수라고 한다.

이제 해남이다.

해남은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한 고장은 아니라고 본다. 강진하면 다산선생, 고려청자 등이 있어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남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해남의 절임배추와 고구마라 할 수 있고, 땅끝마을이 있으며 명랑해전의 유적지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남은 교통의 요충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완도나 진도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해남군이다. 해남읍을 거치지 않지만 해남이라는 곳을 지나야 하고 진도나 완도 사람들은 해남을 거치지 않으면 못 간다.

옛날 제주를 갈경우 어떻게 간 것인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제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뱃길은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의 마량포구를 주로 이용했지만, 관원들은 해남군 화산면에 있던 관두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 조선 전기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공적 업무에서도 강진에 있던 포구를 많이 이용했지만, 강진의 해안가에 있던 포구를 이용하던 제주항로가 해남으로 옮겨간 이유는 강진 지방에 왜구가 출몰하여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도는 한양에서 귀양 간 사람들의 유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강진이나 해남까지 조선시대의 간선도로인 삼남대로를 따라 육로로 이동한 후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고 조선시대의 송시열은 강진의 마량 포구를 떠나 제주로 귀양 갔으며, 추사 김정희는 해남의 관두포를 떠나 제주 귀양길에 올랐다" 설명되어 있다. 우리가 가는 삼남길의 끝은 땅끝마을로 상징성이 있어 현재 삼남길 마지막으로 새로이 정리한 것으로 옛길은 아니다.

전국 많은 지자체에서 팔경이니 십경이니 관광지를 선정한다. 해남군의 경우에는 동쪽보다 서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 있는 두륜산, 땅끝마을, 도솔산 등이 있지만 땅끝마을과 도솔산은 내일 지나가며, 두륜산은 멀리서 본다. 혹, 서쪽에 있는 해남의 유명한 관광지를 볼 기회가 있으면 동쪽을 보았기에 완성된 것이라고 본다.

해남이 살기가 좋아서 그런지 최근에는 젊은이도 많이 찾아서 지자체 중 출산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따뜻한 고장이지만 병원 등이 근처에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여 연세드신 분들이 이주를 많이 하지 않는다.

남해의 갯벌에 물이 빠져 있다. 갯골을 통하여 남아 있는 해수가 흐른다. 우리들은 저 모양을 보지 못하였기에 신기할 뿐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이 아니면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이 모양을 수시로 보았을 것이다. 아니, 서해안이나 남해안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보지만 동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기에 신기한 것이다.

남해안의 펄에서 조개를 잡거나 펄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TV에 비칠 때 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갯골에 빠질 경우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사고가 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사실이다. 알지 못하는 곳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해남으로 들어서면서 멀리 두륜산이 보인다. 두륜산은 케이블카가 있어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두륜산은 해남 팔경 중에 하나이며 대흥사가 있고 대흥사 인근에 케이블카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해안을 끼고 걷으면서 멀리 산을 보고 멋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다 쪽은 처음에는 푸르름이 있고 탁 트인 감정이 있었으나 물이 빠지니 펄이 보일 뿐이다. 저펄이 보고인 것은 산골이 고향인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비린 한 바다 냄새보다는 산의 신선한 공기가 더 좋다. 내가 살던 고향이 더 그립고 고향의 냄새가 더 향기로운 것이다. 하루나 이틀을 바닷가에서 보내면 감탄도 사그라질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지나면서 보니 와룡 차우락샘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신기하여서 쳐다본다. 와룡 짜우락샘(龍淚井) 용의 두 눈에서 솟아오르는 신비의 바다 샘이 있다. 와룡리는 마을의 형상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한 데서 나온 지명이다. 바다 가운데 있는 우물샘으로 밀물이 들면 사라졌다. 썰물이 되면 다시 나타나는 신비의 바닷길과 흡사한 이샘은 바가지로 바닷물을 조금만 거둬 내면 깨끗하고 맑은 샘물로 바뀐다고 한다. 제주도의 용천수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민물이 바다에서 솟구치는 것이다.

평상시 와룡리 사람들은 이 샘을 이용하였으나 지하수 개발로 이샘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마을에 우환이 거듭되어 최근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제 북평면이다. 북평은 완도와 연결되는 곳이다. 완도를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북평에서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하여야 하였으나 그렇지 못하고 또 걸었다. 여기에서 멈추고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냈어야 했으나 땅끝마을로 간 것이 대중교통을 끝난 시점에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도로에 도착한 우를 범하였다.


북평을 지나면서 부족한 식수를 마트에 샀어야 하나 찾지 못하고 지나치다 보니 식수가 고갈되어 어쩔 수 없이 식당에 가서 부탁을 하니 생수통에 가득 물을 채워 주신다. 식당에서 밥도 먹지 않은 길손을 박대하지 않으시고 물을 공급해주시니 감사하다.


이진 마을에 도착하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다 있다. 정유재란 이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된 이순인 군사의 출입이 비교적 원활한 포구를 찾아 나선 후 강진 마량 앞바다를 거쳐 도착한 곳이 해남 이진이었다. 이곳은 완도 해역과 연결되는 해로의 요충지였다. 그런데 이때 이순신의 건강에 큰 위기가 왔다. 잦은 군사훈련으로 심신이 지쳐 있어서였는지,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구역질까지 하며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난중일기』에는 토사곽란이 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병세가 무척 심각해지자 이순신은 배에서 내려 이진 마을에 들어섰고 이진 마을에 내린 이순신은 마을 주민들의 극진한 도움을 받으며 치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기리를 지나고 묵동리를 지나면서 포장도로를 걸은 내 발목이 이상증세를 보인다. 흙길을 50km를 걸어도 문제가 없던 발목이 아프다. 통상적으로 나는 씩씩하게 걷고 친구가 힘들다고 하는데 오늘은 반대다. 내가 힘들다. 더 이상 걷는 것이 힘들 것 같은데 친구가 걸으니 따라서 걷는다. 나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주변의 숙소를 찾는데 모두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계속 걷는다. 남전 마을에 도착하여 종료한다. 밥을 먹으면서 좀 쉬려고 주변 식당을 찾아봐도 오늘은 안 하거나 숙소는 가득 찼다.


대중교통은 1시간 전에 끝났다.

이제 히치하이킹이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땅끝마을이거나 해남읍내로 가야 한다.

친구가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였다.

등산을 하면서 우리들은 산을 내려와 혹 히치하이킹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우리들은 남들이 지나가면서 태워달라고 하면 잘 태워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잘 태워 주었는데 어느 날 언론에서 태워주었는데 사고가 났을 때 책임문제도 등장하였고 누가 태워 주었는데 성추행범으로 신고가 된 후 잘 태워주지 않는다. 그래서 요즈음은 택시를 불러서 이동을 한다. 그리고 택시비도 흥정이 아닌 미터기에 나오는 요금만 청구하니 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오늘도 성공하였다. 우리들을 딸 끝 마을까지 데려다주었다 감사하다. 우리들을 데려다주신 분들은 해남읍에서 사시는 분들이며 애들과 함께 땅끝 마을에 바람을 쐬려 간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택시비 대신 감사한 마음으로 애들에게 만원을 주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를 청한다. 이제 25km를 어떻게 갈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의논한 결과 땅끝 마을이 종점이지만 중단 지점까지 가는 것보다 여기에서 시작하여 중단 지점에서 끝을 내기로 결정하였다.

여기에서 일출도 보고 아침에 산을 오르면 풀밭을 지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중단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마을을 지나자마자 다시 산속의 풀숲이고 풀숲에 흠뻑 젖을 것이 싫다.

지난 강진 뒷산에서 겪은 던 경험이 우리에게 이곳에서 출발하여 산을 이동할 때에는 햇빛이 이슬을 머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땅끝마을의 일출이 더 멋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매일 뜨는 일출이라도 뜨는 해는 신비롭다.


해남에서 삼남길 완료를 위한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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