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 멀고 덥다.
1박 2일이다. 연휴가 이럴 때 좋다.
당일 삼남길을 걷고 서울로 복귀는 힘들다.
오늘은 강진까지 가야 한다. 강진하면 다산선생의 유배지이고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다.
나주역을 몇 번인가 이용해야 한다.
지난번 삼남길 끝나고 나주역을 이용하여 복귀를 한 만큼. 이번도 나주역은 당연하지만, 나주역에서 영산포 터미널. 동창 터미널 석산 삼거리로 이동하여 시작하여야 한다.
영산포 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우리가 열심히 걸었던 만복천 제방을 볼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달려 우리를 동창 터미널에 데려다준다. 오늘은 영암을 거쳐 강진을 들어가고 내일은 하루종일 강진이다. 하지만 다산선생이 수시로 호출이 된다. 동창 터미널에 도착하여 석산 삼거리로 가는 버스시간을 보니 긴 시간이 남았다. 택시를 타야겠다고 택시 정류장에 가니 택시만 있고 기사 아저씨가 없다. 농번기이고 이른 시간에 기사 아저씨가 논에 나갔나 하고 긴 시간을 기다리기보다 동창 터미널에서 석산 삼거리까지 걸었을 때 1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기억이 있어 걷는다.
해당 지역을 지나가는 이웃마을 택시가 있어서 손을 들어 세우고 석산 삼거리로 이동한다. 이제 시작이다. 어렵게 접근을 하였다고 하였으나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9시에 여정을 시작하니 그래도 낯선 길을 잘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석산 삼거리는 영암읍으로 가는 길과 오봉산, 고봉산을 우회하여 신북으로 가는 길과 동창 터미널로 가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그렇게 왕래가 많지는 않지만 옛사람들은 이 길을 많이 이용하였을 것이다. 산자락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시간상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또 이 길은 영암읍을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아야 한 것이다. 산길이지만 백룡산 능선을 따라 힘들이지 앓고 평지길을 걷듯이 걸으면 되는 구간이다.
처음에는 힘들다 하지만 오르면 완전히 평탄한 길이다.
세상도 똑같다. 처음에 진입할 때 어려움이 있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 탄탄대로가 있는 것이다. 탄탄대로 중에 힘든 오르막이 있고 또 오르막이 연속 있을 수 도 있다. 아쉬움이 있는 등산로가 있듯이 아쉬움이 있는 삶이 있을 수도 있다.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등산로 정비를 잘해놓았다
백룡산 정상보다는 둘레길을 돌아서 영암으로 들어선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1박 2일 여정에서 첫 점심은 시내를 지나니 배낭에서 내어놓은 점심이 아닌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데 남도 음식을 접하면서 친구도 감탄하고 나도 감탄을 한다. 주중에 주변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 놓은 음식이 길손을 위하여 내어 놓아서 그런지 좋다.
영암은 달이 많다. 이곳저곳에 달이다. 월출산을 시작으로 간판에도 달이 많다. 그래서 영암 하면 하춘화의 영암아리랑이 절로 생각이 난다.
영암 아리랑 / 하춘화 노래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
달을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지화자자 좋구나
서호강 몽햇들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흥타령 부네 흥타령 부네
목화짐 지고 흥타령 부네
용칠 도령 목화짐은
장가 밑천이라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영암 시내를 지나면서 군청, 경찰서, 병원을 지나고 이제 월출산 자락이다. 월출산은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호남의 월출산을 5시간 내외의 산행을 위하여 새벽 일찍 출발하면 10시쯤 도착할 것이며, 산악회가 운영하는 버스를 타면 11시쯤 도착하는 만큼 하루 종일 버스를 타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여야 한다. 월출산 산행은 그 묘미가 있다고 한 만큼 다음 기회로 남겨 둔다.
월출산 자락을 지나는데 이슬비가 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멈출 수가 없다. 계속 걷는다. 5층 석탑을 지나 월출산 국립공원의 입구에 도착한다. 우산을 쓰고 걸으면서 조용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을 한다. 월출산 국립공원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우리도 남긴다.
월출산에 대한 국립공원공단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988년 2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바다와 부딪치면서 솟아 오른 화강암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월출산이 만들어졌고, 월출산의 면적은 56.22k㎡로 비교적 작지만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하며, 국보를 비롯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월출산의 정상은 천황봉(809m)이며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고, 천황봉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은 큰 바위가 굵직한 능선 줄기 위에서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내며, 남쪽과 서쪽 지역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마치 탑을 이룬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월출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누릿재로 향한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가기 위한 고갯길이며 다산선생이 강진으로 유배 갈 때 넘은 재이다. 누릿재 고개 마루에서 다산선생 유배길이라는 길안내가 나타난다.
누릿재는 '황토고개'로 불리었고 한자로는 황(黃)치(峙)라고도 하며 강진, 해남 등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등 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고, 많은 정치적 탄압을 받은 선비들이 고개를 넘어 남도나 제주도 등으로 귀양하는 길목으로,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선생 등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도 군데군데 옛사람들의 주막터가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고 적혀있다.
다산선생의 누릿재라는 시 한 편이 길손에게 들어온다. 다산선생이 한양을 떠나 유배길에서 누릿재를 넘으면서 월출산의 산세를 보고 지었다고 한다.
누릿재( 다산 정약용 )
樓犁嶺上石漸漸(누리령상석첨첨)
누릿재 고개 위에 우뚝 솟은 바위들이
長得行人淚洒添(장득행인루세첨)
나그네 뿌린 눈물에 언제나 젖어있네
幕向月南瞻月出(막향월남첨월출)
월남쪽에서 월출산 보지 말게
峰峰都似道峰尖(봉봉도사도봉첨)
봉우리마다 도봉산을 너무도 닮았으니
누릿재를 넘자 이정표는 월남사지 이정표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월남사지는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시대의 사찰이었던 월남사터이다.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에 진각국사(1178∼1234)가 세운 것으로 되어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 편으로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가 있다.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층석탑에 전해오는 석궁과 그의 아내와의 사무치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표지석으로 하여 애틋함을 자아내게 한다. 월출산은 돌산이고 그렇게 많은데 돌이 없어 돌로 변한 자기 아내로 석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왜 사랑하는 아내는 돌로 변해야 할까 망부석이 되기도 하였으니 남존여비의 사상이 여기에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 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월남사지에 대한 문화재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윌출산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은 고고히 역사를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삶을 지켜본다. 천년 이상의 세월을 저 자리를 지켜왔다,
이제 월출산 남면에 있는 차밭이다. 월출산 아래에는 어느 책에 보았는데 봄이 가장 먼저 온다고 한다. 비와 구름과 월출산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녹색의 차밭이 그 틈새를 비집고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곳도 강진이고 다산선생의 다산초당도 강진이다. 어떻게 보면 강진은 차가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월출산 차밭은 198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이 조성했고 부드러운 곡선과 초록빛이 돋보이는 차밭은 월출산의 솟아오른 바위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고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강진은 우리에게 다산선생과 고려청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월출산 남면이 강진으로서 특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는 차밭을 지나면서 그치고 산에 운무가 하늘로 그림을 그리면서 선녀처럼 올라가고 있다.
차밭을 지나 성전면 소재지를 거쳐 강진읍내로 가면 오늘 일정이 종료된다.
나지막한 재를 넘고 송월제를 지나고 남해고속도로를 볼 수 있는 성전면 소재지에 도착하였다. 성전은 강진에서 면소재지로 고등학교도 있고 예전에 성화대학이 있던 곳이다. 성화대학은 폐교가 되었고 을씨년스럽다 할 수 있다. 성화대는 입학정원과 대학 부실 문제로 2012년 폐교 명령을 받아 폐교가 되었다.
강진 초입에서 본 강진의 표징과 같은 고려청자를 산 위에 설치를 해놓고 있다. 청자를 강진의 대표 상품이 된 것이다.
성전을 거쳐 강진으로 들어간다.
강진을 들어가면서 강진 가는 국도는 2번 국도이다. 1번 국도를 벗어나 한동안 걸었는데 2번 국도를 만난 것이다. 목포에서 부산까지 연결되는 도로이다.
우리나라 국도는 홀수는 가로 짝수는 세로다
가장 남쪽이 2번 국도이다. 가장 서쪽이 1번 국도이다.
비로 인하여 시간은 지체되었고 하늘은 흐린다. 강진 시내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는데 강진으로 들어가는 산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후 8시가 넘었다. 도시와 달리 시골은 어둠이 오면 칠흑 같은 어둠이 되고 가로등도 거의 없다. 마을로 들어가는 삼남길을 계속할 수 없어 강진 시내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2번 국도 위에 차량들은 속살같이 달려간다. 멀리 가로등 불빛에 주요소 네온사인이 보인다. 저기로 가면 해결책이 있을 것 같아 주유소로 걷는다. 주유소에 도착하니 9시 가까이 되었다. 대중교통은 없고 주유소는 강진에서 영암으로 나가니 길에 있어 주유하려 오는 자동차들은 영암으로 간다. 주유소를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이 우리들에게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고 안내하고 동네의 택시를 불러 준다. 고마울 뿐이다. 우리의 삼남길은 곳곳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성공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강진 시내로 이동하는 택시 내에서 우리 얘기를 하니 친절하게도 우리를 하룻밤 잘 지새울 수 있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한 끼의 식사와 객지에서 길손이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안내해준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드릴뿐이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