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9일 차(백양사역에서 송산유원지까지)

by 김기만

다시 주말마다 삼남길로 간다. 1박 2일 동안 전주에서 백양사까지 왔다. KTX가 새벽기차가 있어서 우리는 이를 주로 이용한다. 첫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서대전에서 목포까지 가는 무궁화 열차도 첫 기차다 서대전이나 용산에서 비슷하게 출발하지만 KTX는 고속열차인 관계로 익산에 먼저 도착하고 우리는 무궁화열차를 이용하여 백양사역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무궁화열차를 타면서 백양사까지 왔던 길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본다.

서울 남태령을 출발하여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를 거쳐 전라남도에 도착하였다. 이제 전남을 종단하면 끝이 난다. 경기도 2일, 충남 3일, 전북 3일이다. 그러면 전남은 며칠 걸릴까 3일 아니면 4일 정도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다. 전남에서 5일 하고 +를 걸었다. 갈재에서 백양사역까지 3시간을 더 걸었다.

백양사역을 나오자마자 하천 옆으로 걷는다. 하천 이름이 개천이다. 어느 정도 걷다가 성미산으로 간다. 성미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임도를 따라가다가 장성호 주변의 생명의 녹색길을 따라서 장소호 제방까지 간다.


장성호에 대한 장성군의 소개글을 보면 백암산과 입암산의 깊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 광주광역시 광산구, 나주시, 장성군, 함평군 등 4개 시・군・구의 농토를 적셔주는 젖줄 구실을 하는 장성호는 최근 들어 낚시터, 수상스키, 카누 등 전국적인 수상 관광지로 더욱 주목을(각광을) 받고 있고, 잉어, 쏘가리, 빙어, 붕어 등 각종 민물고기가 많아 강태공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으며, 댐 아래 넓게 설치된 주차장과 상류에 관광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가족이나 직장동료들의 단체 활동이 가능하며, 인근 주변 미락단지의 음식 맛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할 정도이며, 2005년에 준공된 장성 문화예술공원에는 우리나라 및 세계적으로 문화예술인의 혼이 담긴 시(詩), 서(書), 화(畵), 어록(語錄) 103점의 작품을 조각에 새겨 설치한 최대 규모의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농어촌공사에서 장성호를 관리하는데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1976년 9월 장성읍 용강리에 높이 36m, 길이 603m의 장성댐이 건설됨으로써 등장된 저수지로 총 저수용량 8,970만 t, 유역 면적은 6.87㎢에 이른다고 한다.


장성군에서 장성호 주변에서 수변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따라 삼남길이 형성되어 있다. 옛길은 이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는 길은 누군가 설치한 삼남길 이정표를 따라가는 것이다. 지자체도 여기에 동참을 하여 그래도 풍광이 있는 곳으로 살짝 비껴나간 곳도 있는 것이다. 장성호 수변길은 이렇게 살짝 비껴 나간 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름다운 비경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수변길을 만들면서 식재한 나무들이 활착 하지 못하여 잎이 그렇게 무성하지 못하여 생명의 녹색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성호에서는 학생들이 조정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하는 친구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장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흐르는 강에서 유속도 있고 하여 그 흐름에 따라 어려움이 있지만 호수는 그렇지 못하다. 미사리 조정경지장도 거의 호수에 가깝게 만들어서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호를 제방을 내려와서 장성역까지 간다. 삼남대로를 다시 만날 것이다. 장성은 현재 홍길동의 고장으로 포장을 새로이 하고 있다. 장성역 앞에 홍길동의 모습의 조각이 사진 찍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장성군(長城郡) 주장에 의하면 홍길동(洪吉同)은 1443년(세종 25) 경 전라도 장성현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나, 1510년(중종 5) 경 죽었다고 한다. 장성군에서는 홍길동(洪吉同)은 1443년전라도 장성현 아차곡에서 경성절제사 홍상직(洪尙直)과 관기 옥영향(玉英香) 사이에서 태어난 얼자(孼子)로 설명하고 있다. 조부는 밀직부사 홍징(洪徵)[3]이며, 이복형은 홍귀동(洪貴童)·홍일동(洪逸童)이라 한다. 그는 조선 연산군 때 도적떼의 우두머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존 인물이며, 선조허균이 지은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실제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장성군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고증에 의하면 홍길동은 조선초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신분이 첩의 자식이라 관리 등용을 제한하는 국법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혀 좌절과 울분 속에 양반으로부터 차별받던 민중을 규합 활빈당을 결성한 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으며, 봉건적 조선왕조의 핍박을 받던 중 관군에 체포되었으나 무리를 이끌고 탈출하여 일본 오키나와로 진출하게 되었으고, 그곳에서 조선에서 처럼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는 민권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뱃길로 3000리나 떨어진 일본 최남단 섬 오키나와에는 민권운동의 선구자 홍길동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설명도 되어 있다.


나는 홍길동이 실존인물인지 허구적 인물인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지자체들이 무엇인가를 엮어서 해당 지자체를 홍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과 이를 이용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황룡강을 따라가던 길은 광주시 광산구로 들어선다. 이제 광주광역시다. 빛고을 광주광역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성장한 도시다. 그 이전에는 나주가 중심이었다. 전라도라는 명칭도 전주와 나주의 축약형이다. 광주는 삼국시대에 백제 3주의 하나인 무진주(武珍州)라 불렸었고 통일신라 역시 서남해 일대의 중요 거점으로 무진주를 인식하여 무진주를 무주(武州)로 이름을 개칭하고, 도독부를 설치하여 오늘날 전남 일대인 15군 34현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신라의 혼란한 말기에 서남해 일대의 해적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고 온 견훤은 서남해 일대 해적과 해상 호족들을 장악한 뒤 진성여왕 6년에 무진주를 점거한 뒤 완산주(오늘날의 전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무진주를 기반으로 후백제의 기틀을 다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나주의 부상에 따라 부침을 계속하다가 1896년 나주를 대신해 전라남도청이 들어서게 되면서 전남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광산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월봉서원을 근처를 지나는데 이안당에서 더위를 식혀 줄 수 있는 광산구에서 운영하는 찻집으로 무료로 차를 제공하였다. 차 한잔 마시면서 여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월봉서원이다. 월봉서원은 조선 전기 기대승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며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대승(奇大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1646년(인조 24)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654년(효종 5)에 ‘월봉(月峯)’이라고 사액되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1941년 5칸의 빙월당(氷月堂)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봉서원을 임곡동으로 가는 길은 빛고을 산들길이라고 하였다. 기대승과 이황의 8년 논쟁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이 8년간 편지를 통해 사단칠정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으며, 이것이 조선 성리학의 독자적 기틀을 마려했다고 후세 사람들은 평가를 한다.

8년간의 논쟁에 있어 30대의 기대승이 50대의 퇴계와 토론을 이어가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논리로 새로이 정리한 것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상대방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내는 것을 보면 이를 우리 세대에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대승의 한시가 있어 읊어 본다.

縱筆(종필) -붓 가는 대로 쓰다

奇大升(기대승)/조선

淸風動萬松(청풍동만송) 맑은 바람에 온 소나무는 물결치고

白雲滿幽谷(백운만유곡) 흰 구름은 그윽한 골짜기에 가득하네

山人獨夜步(산인독야보) 산에 사는 사람 혼자 밤에 걷노라니

溪水鳴寒玉(계수명한옥) 개울은 맑고 차가운 옥 소리를 내네


임곡동을 지나는데 집 벽에 이러한 것이 있어서 찍어본다. 우리 어릴 때 간첩신고 요령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현재 적용을 하면 하나도 안 맞다. 권위주의 시대에 이러한 것을 적용이 가능할 것 같다. 이 당시에 신고하여 간첩으로 판명되면 500만 원을 주었다고 하는데 실제 받은 사이 있을까 궁금하다.


다시 황룡강가로 나아간다. 황룡강이 멋진 풍광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논산이나 김제에서 그 넓은 들도 무미건조하게 걸었는데 완전히 우리에게는 축복의 길이다. 강의 경치가 그림과 같으며 그 그림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강과의 넓은 들에는 보리가 이제는 익어가고 있다. 노래가 저절도 나온다. 해 질 녘 보리밭 옆을 걸으면서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고의 보리밭이 저절로 생각이 난다. 하지만, 앞뒤가 섞여서 도대체 이것이 맞는지 서로 간 논쟁을 하다. 스마트폰을 열어서 들어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하루의 일정을 종료하여야 하는 시점에 도착하였다. 어디에서 종료할 것인지는 항상 논쟁거리다. 하지만, 오늘은 쉽다. 더 이상 갈 수도 없다. 광주시민의 휴식처인 송산유원지이다. 유원지는 광주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항상 많다. 다시 돌아오기도 좋다. 주중에는 유원지로 오는 버스도 뜸하지만 주말에는 유원지로 오는 버스가 가득하다.

버스로 송정역까지 이동하여 송정역에서 서울로 간다. 다시 올 때에는 역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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