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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Nov 11. 2020

한강기맥 다시 운두령 가다

운두령에서 비로봉을 경험한 한강기맥을 다시 시작한다.

산길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서울에서 진부까지 ktx를 타고 이동한 후 택시로 운두령으로 갈 예정이다. 승용차를 이용하여 접근하는 것은 운전자도 힘들지만 돌아올 때 트래픽 잼이 더 싫다. 고속도로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기차를 탄다. 삼남길을 걸으면서 터득한 지혜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하루에 어디를 갔다 올 수 있다. 새벽기차를 타면 된다. 잠을 줄이고 진부행 기차를 탄다.

기차는 조용하다. 부족한 잠을 잔다.

아니 코로나로 인하여 비말을 억제하기 위하여 대화를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열차 내에서 음식물 섭취가 금지되어 있다. 좌석은 여유가 있다.

운두령에서 비로봉까지 걸은 후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한강기맥이다. 미리 찾아본 산행기에는 이번 구간은 어렵지는 않지만 똑같은 형태와 산죽의 연속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각오는 하고 간다. 여름에 이 구간을 찾았으면 답답한 산행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산 이름이 있는 것도 거의 없고 봉 이름이 있는 것도 서너 개 이정표도 드문드문 있다고 하였다. 진부역에 내리니 평창 동계올림픽 주 역사였음을 알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올림픽 마스코트가 2년이 지났지만 우리를 반긴다.

진부역에서 운두령까지 택시로 이동한다. 1인당 만원이다. 세 명이 같이 다니니 그래도 1/n이 되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운두령 가는 택시에서 제설을 위한 당국의 노력에 의하여 눈이 어느 정도 오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운두령은 계방산을 가는 사람들이 들머리로 사용되기 때문에 겨울에는 관광버스가 운두령 고개를 가득 채운다고 하였다. 작년에는 눈이 없어서 눈이 없어 그러한 부분이 없었고 제설을 위한 용역을 받은 업체들이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운두령의 풍력발전기가 우리를 세팔 벌려 웅웅 소리 내면서 환영한다.

지난번에는 계방산으로 갔지만 반대로 간다. 운두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걷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보니 산불감시를 위한 탑이 있다. 보래령까지 힘들이지 않고 걷는다.  이정표도 없다. 오늘은 기상청에서 비가 온다고 하여 우의도 우산도 배낭에 가져왔는데 오보다. 어느 봉에 도착하였는데 등산로가 헷갈리지 않도록 누가 나뭇가지로 살짝 막아 놓았다. 산죽이 푸르름을 자랑을 하면서 산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산죽이 이렇게 많으니 산림이 훼손될 것이다. 산죽이 많은 곳에서는 잡목이 자라지 못하고 있다.

운두령이 1,089m라서 그런지 오늘 하루 종일 걸은 길은 1000m가 넘는 산길을 걸었다. 마지막 장곡현이 945m이었다.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1000m 이상을 걸어서 더위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안고 걸었을 것이다.

1400m까지 올라갔지만 힘들 줄 몰랐는데 그것은 1100m 근체에서 5km를 걸어서 1400m까지 올랐을 때는 그저 평탄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1km를 1100m에서 1300m까지 오르면 무척이나 힘들다.

인생도 같다.

보래령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접한 이정표가 반갑다.

래령을 내려오기 전 바로 봉우리가 오늘 오른 봉우리 중 가장 높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봉래령에서 봉래봉까지 오르는 등정길은 780m이지만 2km도 길다는 느낌이다. 가파르고 힘든 구간이다. 한봉우리를 오르면 또 봉우리가 보인다. 다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또 있으면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인생도 그렇다고 보면 될 것이다.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문제가 또 등장하면 해결하는데 또 문제가 등장하면 자포자기하기도 하고 이를 극복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비마다 무엇인가 족적이 남게 되는데 이곳에는 나무들이 풍광을 나타내고 있다.

보래봉에 도착하여 한숨을 쉬니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 정상석을 본 것은 한 번밖에 없으며 이정표에 정상 표지가 되어 있다. 회령봉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우리는 회령봉이 한강지맥으로 생각하고 걷는다. 회령봉이 가까이 보이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는데 표지는 회령봉이 아닌 산을 내려가는 쪽으로 있어 토론이 벌어지고 산행지도를 찾아보고 전자지도도 찾아본 결과 내려가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났다. 기맥은 이쪽으로 회령봉은 저쪽 누군가가 이곳에 이정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산림청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산죽이 지천을 이루고 있고 길은 산죽 사이에 조그마한 통로로 연결이 된다.

자운치가 있는데 스치고 지나갈 뻔했다. 자운치는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을 오가는 고갯길인데 지금은 다니는 사람들이 없고 흔적도 거의 없어 보였다. 다만 기맥을 지나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불발현까지 가기 전에 만나는 가장 낮은 안부일 뿐이다. 자운치를 지나면서 이제 서서히 언제 불발현에 도착할 것인지 궁금하여 지도도 보고 전자지도로 gps를 확인하기도 한다. 주변의 풍경은 똑같다. 지루한 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만치 회령봉 능선이 훨씬 마루금을 이루어 기맥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길이 우리가 갈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길도 능선은 1100m이고 약간 높은 곳은 1200m이다.

1202봉에 올라 1212봉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지 하면서 찾아보니 흥정산 갈림길까지 1212봉이고 거기에서 내려가면 불발현이라고 한다. 우리가 힘이 들어서 1202봉에 올라서 1212봉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보래봉을 힘겹게 올라온 후유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212봉에 도착하니 홍정산 정상과 불발현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제 1km 이내에 불발현에 도착할 수 있고 고지가 보인다고 모두들 즐거워한다. 그렇게 힘들게 할 것을 왜 하느냐고 누군가가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걷고 나면 그래도 뿌듯하다.

옆에 있는 친구가 홍정산이라고 하면 나는 흥정산이라고 한다. 산 이름이 흥정산이라고 하니 무엇을 흥정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흥정산은 여름 피서지로 유명한 흥정계곡 흥정계곡을 끼고 있는 산이다. 아래와 같이 들꽃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 들꽃이 아름다운 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흥정산 들꽃(조종권 · 시인)

    흥정산 길에도

   들에도 아름답게

   서로가 다투지 않고

   혼자 있어 자유롭게 제 모양대로

   피어나는 들꽃이여

   아름다운 꽃이기 보다

   혼자 피어 주변을 환히

   밝히는 꽃이 되고 싶어

   꽃 들이 피어나네

   여러 꽃들이 피어

   흥정산 계곡과 들을

   환하게 밝히네…

이제 불발현에 도착하였다. 임도가 상당히 중요한지 산림청에서 이름을 붙여 놓고 관리하고 있다. 거리는 7,000m이다. 이곳은 그 중심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내면 또는 봉평으로 갈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고 해발이 1,013m이라고 되어 있다. 불발현 정상에는 홍천군에서 만든 초가로 만든 정자가 있다. 나는 고개를 넘나들면서 령, 치, 재 등은 보았지만 현은 보지 못하였는데 이곳은 불발현, 장곡현 등으로 나타나 있다. 고개를 나타나는 말로 한자로 "령 현 치 천" 등이 있고 우리말로는 "재 고개"가 있다고 한다. 한자로 고개 이름을 표현할 때 "령, 현" 순으로 사용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불발현(1052m)에 대하여 찾아보니 옛 진한(辰韓)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불발현 혹은 불바래기 등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종의 축약어인 셈인데 화공을 펴라는 뜻이었는지, 불을 밝혀 경계를 강화하라는 뜻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출처 : 서울신문)

우리가 처음에는 운두령에서 출발하여 불발현까지 걸으려고 하였는데 불발현 도착시간이 15시라서 1시간 정도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장곡현까지 가기로 하였다. 불발현에서 내려가든지 장곡현에서 내려가든지 흥정계곡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기맥 길로 계속 가는 만큼 갈 수 있는 거리는 추가로 가고 탈출로가 동일하다고 하여 장곡현까지 올라간다. 청량봉을 올라간다.

청량봉을 올라서니 춘천지맥이 여기에서 시작이 된다고 한다. 처음으로 정상석을 처음 만났다. 어디에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불발현에 청량봉까지 900m 남짓이고 여기에서 장곡현까지 2km 남짓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탈출하여 하벳재로 간다고 한다.

지난번 우리를 괴롭혔던 잡목들이 우리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지나갈 때마다 얼굴을 할퀴고 찌르고 옷을 잡는다. 잡목 구간이 너무 싫다. 산죽이 많은 곳에서 잡목이 없다. 산죽이 전체적으로 산은 잡목들이 다양하게 있어야 하는데 산죽이 산을 덮고 있어서 문제가 유발될 수 있을 것 같다.

청량봉에서 장곡현으로 가는데 나무가 쓰러지면서 이정표 위에 나무가 쓰러져 있어 이정표가 쓰러진 나무를 받치고 있다. 겨우살이가 해발 1000m 근처라서 참나무마다 달려있다. 저 겨우살이는 겨울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겠지만 참나무에는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겨우살이는 반기생식물로 양심 있는  기생식물이라고 한다. 모든 걸 기주목인 참나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광합성이 가능한 푸른 잎으로 양분을 자체 생산하기도 한다고 한다.  산행을 하면서 겨우살이를 보고 채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말린다. 겨우살이를 채취하는 사람들에게 구매하면 10,000원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그것을 채취하다가 다치면 병원비가 더 들어간다고 제지를 한다.

이제 임도의 끝이며 장곡현에 도작하였다. 목령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여기서 더 가면 갈 수 있겠지만 이제는 늦가을이라 17시 30분이면 어둠이 찾아온다. 산속에서 어둠을 맞으면 어려움이 있고 탈출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임도를 따라 6km를 내려가면 흥정마을이 있다. 이 흥정계곡이 어떻다는 사실도 모르고 무작정 걸어본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서 보니 불발현 쪽에서 내려오는 임도와 만나고 그 지점에서 만나는 낙엽송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저 낙엽송들이 우리의 허파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흥정계곡은 여름에 피서객들에게 여름을 잊게 한다고 한다. 흥정계곡 주변에 정자도 있다. 임도 자체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걸어 다녔던 비포장 국도와 같이 정비가 잘되어 있다.

가을에 노랗게 물들며 떨어지기 때문에 낙엽송(落葉松)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 우리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침엽수는 거의 상록수인데 침엽수이면서 한 잎도 남김없이 낙엽이 지는 나무가 잎갈나무다. 잎갈나무, 그 이름은 「잎을 간다(바꾼다)」는 뜻에서 온 이름인데 소리 나는 데로 「이깔나무」라고도 한다. 일제시대와 1960년대에 사방 및 산림녹화사업으로 속성수를 찾아 포푸라와 함께 많이 들여와 전국의 산에 많이 심은 일본잎갈나무를 이를 취급하던 공무원이 유식하게 「낙엽송(落葉松)」이라 부른 것이 지금은 일반적인 이름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일본잎갈나무, 즉 낙엽송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것은 1904년이라 한다. 당시 낙엽송을 「경제수(經濟樹)」라 하여 식목을 권장하였고, 직경 10Cm 정도 굵기의 어린 나무는 건축공사장에서 거푸집(아시바)에 쓰이고, 성목이 되면 큰 키를 활용하여 전깃줄이나 전화선을 공중가설 하는 전봇대를 100% 일본잎갈나무로 썼으며 철도 침목, 목교 후레임 등 쓰임새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먼저, 산행을 한 분들의 산행기에서 보면 이 임도에서 즐거움을 찾았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임도를 걸으면서 힘들다는 느낌과 임도에서 오는 지루함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흥정마을 근처까지 오면서 휴대폰은 통화불능 지구가 지속되었다.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하면서 지속적으로 휴대폰의 안테나를 찾아보지만 휴대폰은 여전히 안테나가 없이 불통 표시만 보인다. 어느 지점을 지나는데 휴대폰에서 진동이 온다  1시간 이상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다가 순간적으로 휴대폰이 통화 지구로 도착하자마자 문자가 온 것이다.

봉평 택시를 콜 하고 흥정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펜션이 곳곳에 있다.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펜션마다 가득한 것 같다. 봉평을 내려오면서 이효석의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허 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 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택시가 오기까지 20분 가까이 걸어 내려오면서 흥정계곡을 보면서 이곳이 물이 가득하면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봉평 택시가 도착하고 평창역으로 이동한다.

봉평은 이효석의 메밀꽃필무렵의 고장이다. 매년 효석문화제가 열리고 메밀축제도 열리는 데 금년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평창역에 도착하여 저녁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우리는 평창역의 매점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기사 아저씨의 지하철 탑승기를 들어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서글프다. 경제적 이유로 인력을 감축하고 도움을 받아야 될 사람은 방치되는 것이며 편법이 만연 해지는 것 같다.


이분은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보았는데 우선 표를 구매하는 방법을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구매를 하고 탑승을 하지 못하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표를 구매하고 탑승구를 갔는데 어떻게 들어가는지 몰라 주변을 보니 무엇을 위에 스치니 입구가 열려서 표를 위에 스쳐도 열리지 않아 개찰구 밑으로 통과했다고 한다. 표는 구매했으니 불법 승차는 아니지만 무단통과다. 하차 시에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나갈 수 없는 것이 당연지사 이번에도 무단 통과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간 음식과 매점에서 간단하게 사서 해결하려고 하였는데 매점을 지키고 있는 분이 우리가 불쌍하였는지 찐빵도 주신다. 서울로 오는 길이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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