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전화할 땐 세 번 기도하라

《내 인생의 포인트 찾기》〈제09화, 노 양 좀 바꿔 주세요〉

by 샤인



vinicius-amnx-amano-4mK2KVuYrDs-unsplash.jpg Unsplash의Vinicius "amnx" Amano


“양, 미스, 어이. 이런 호칭 안 썼으면 좋겠어요.”


부산 영도구 직장협의회가 2000년 3월 5급 이하 직원 2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호칭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설문에서 여직원의 98%가 호칭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럼 “어떻게 불러 주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씨”, “▢▢주사” 등 직책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직장에서의 호칭뿐만 아니라 개인 간의 호칭도 민감한 부분이다.


요즈음은 연애결혼이 대세이지만, 80년대 후반만 해도 중매결혼이 대세였다.


아내는 처고모부의 소개로 인연이 되었다.


맞선을 보고 난 후 아내는 장모님과는 다르게 호감이 덜 했었다고 한다.


큰 키에다가 호리호리하니 내 생각에도 호감 체형은 아니었을 게다.


그나마 생김새가 크게 빠지지 않는다(?)는 것과 공무원이라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더구나 7남매의 장남이니 말이다.





똑같이 7남매의 장녀인 아내는 콧대가 높다(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골 ‘군서기’였지만, 아내는 서울 그것도 여의도가 직장인 ‘도시녀’였다.


그것도 당시 잘 나가던 삼도물산(1960년에 설립되어 2000년까지 섬유 최종 제품의 제조 및 수출업을 전문으로 했던 기업체) 전산실에 근무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는 구 대천역 앞에 2층에 있는 00 다실이다.


아내는 어색한 첫 만남이 끝나고 올라간 후 연락이 없었다.


크고 비쩍 마른 ‘시골남’에게 끌릴 일 없을 터지만, 말단 공무원으로 일 배우기에 바쁜 나 역시 연애사는 뒷전이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과 친지들이 안달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쿠션(?)이 들어왔다.



“어떠니?”


“만나고는 있니?”


“사람 좋다더라”.


“머리도 좋은 집안이라는데” 등등.



나이도 나이려니와 당시 서른이 다 되어가는 아들과 적령기 딸에 대한 주변의 성화는 대단했다.


간접 독촉이 효력이 없자 장모님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다.


큰딸 사무실에 연락 한번 해 보시란다.


사무실에서 전화하기가 쑥스러워 당시 민원실에 있던 동전 전화기로 02번을 돌렸다.


지금은 웬만한 사무실에 1인 1 전화기지만, 그때만 해도 다른 사람을 통해 한 다리를 건너야만 통화가 가능했다.








좀처럼 서울로 전화할 일이 없는 나는 ‘따르릉’ 하고 신호가 갔다.


떨렸다.



“여기 대천인데요. 노 양 좀 바꿔주세요”



그런데 왠지 묘한 분위기가 전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잠시 후 문제의 노 양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뜸 “노 양이 뭐예요”라고 핀잔이다.


“어쩐 일이냐?”는 식이다.


장모님의 정중한 요청으로 전화를 해서 나긋나긋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직설적이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이번 주말에 한 번 내려오시지요” 청했다.


아내는 마지못해 “그러죠 뭐” 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지금도 첫 통화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때 ‘노 양 바꿔주세요’가 아닌 ‘노경란 씨 부탁드립니다’하고 점잖게 했었으면 아내 사무실에서 놀림은 받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촌놈의 말투였다.


이때 다음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인 ‘쉼표, 마침표’에는 ‘직함이 없는 동료, 어떻게 부를까?’라는 코너에서 “바른 호칭 사용에 예외는 없다”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직원을 부를 경우에도 존중을 담은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권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서 직함이 없는 부하 직원을 부를 때는 이름에 ‘씨’를 붙여 ‘○○○ 씨’ 혹은 ‘○○ 씨’라고 부르고 가리키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이름을 넣지 않고 성만으로 ‘○ 씨’라고 부르는 것은 높이는 느낌이 거의 없으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으며, ‘○○야(아)’ 역시 공적인 직장에서는 쓰지 말아야 할 호칭이다.


‘씨’를 사용하기 어색할 정도로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어린 직원에게는 남자일 경우 ‘○ 군’, ‘○○ 군’, ‘○○○ 군’, 여자일 경우 ‘○ 양’, ‘○○ 양’, ‘○○○ 양’으로 부르고 가리킬 수 있다”면서 “호칭은 단순히 상대방을 부르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자, 나의 인격을 드러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담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출발점일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때 “노 양 바꿔주세요”가 내 인생의 세 번째 포인트가 됐다.


그 전화 한 통화를 시작으로 노 양이 신 군을 만나 넉넉하지 않은 형편과 박봉에도 양가 부모님을 챙겨드리는 큰며느리와 큰딸로, 멋진 아들과 예쁜 딸을 잘 챙기고 잘 키운 엄마와 학부모로, 여러모로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남편의 아내로 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회갑이다.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의 존중을 담은 호칭처럼 앞으로의 생활도 서로 편안하고 건강하면서 마음도 넉넉했으면 한다.



“노 여사 고맙소.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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