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포인트 찾기》〈제13화, 720번 가그말 시내버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버스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 7월 일본인 베이무라 다마치로가 일본에서 시내버스 4대를 들여와 처음 운행했고, 실질적인 최초의 시내버스는 1928년 4월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에서 20인승 마차형 시내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온 경성부영버스다.
광복 이후에는 1949년 8월 서울승합 등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사업 면허를 받아 273대가 운행을 시작했고, 이는 서울시의 시내버스 운행 시작 공식 기록이다.
보령에는 1979년 12월 금남여객 자동차(현 금남고속)에서 분리된 대천여객이 시내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초반만 해도 국도와 지방도 주변을 제외하고는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았다. 버스 한번 타려면 국도가 있는 주포면 소재지까지 1시간 가까이 걸어 나와야 했다. 초등학교와 동네를 가로지르는 신작로에 시내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무렵이다.
그때만 해도 신작로는 비포장도로였다. 비가 오면 진흙 범벅이다. 버스는 수 십리 길을 걸어서 등·하교했던 학생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았다. 장날이면 버스는 장 보따리를 이고 진 동네 어르신들과 학생들로 콩나물시루였다.
비포장길을 달리는 만원 버스는 손잡이가 천정을 ‘툭툭’ 칠 정도로 흔들려도 ‘감지덕지’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언덕길이 미끄러워 ‘붕∼’ 하고 헛바퀴 도는 날이면 차장의 명령(?)에 따라 승객들은 두말할 것 없이 내려 버스를 밀어 언덕 위로 올려 보내고 그곳까지 걸어가 타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대천에서 출발하여 주교∼주포∼구슬∼교성리∼여수해를 오가는 시내버스는 하루 일곱 번 운행한다. 가그말은 사락배, 양촌, 윗뜸으로 나눠져 있다. 버스가 정차하는 사락배보다는 양촌과 윗뜸에 사는 주민들이 많다. 윗뜸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서 1∼1.5km 떨어진 사락배까지 걸어 나와야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대로 걸어 다녀도 괜찮은데, 엄동설한에 새벽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20∼30분은 걸어 나와야 하는 고역은 극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연로한 어르신들의 소망은 마을 안까지 시내버스가 들어와 걸음 수를 줄이는 것. 어머니의 주문도 그랬다.
2002년 고향인 오천면에 근무할 기회가 되면서 이러한 주민들은 소망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들어오려면 우선 마을 안길이 문제였다. 큰 버스를 회차하는 넓은 공간도 필요했다. 마을 주민들과 협의하여 마을 안길 확장과 주차장 확보에 나섰다. 도로 확장에 편입되는 토지를 협의하고 주차장 부지도 우선 확보했다. 사업비도 시청 관련 부서와 도·시의원의 도움으로 확보했다. 2003년 드디어 윗뜸으로 가는 마을 안길이 확·포장되고 시내버스가 충분히 회차할 수 있는 넉넉한 주차장도 마련됐다.
그다음은 시내버스 노선을 조정하는 문제였다.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을 면장 지휘 보고를 통해 지휘부에 전했다. 해당 부서의 내부 검토와 대천여객의 현지 확인 검토를 거쳐 드디어 2003년 8월 가그말에 시내버스가 들어오게 됐다. 마을 주민은 성대한 환영식으로 기쁨을 표했다. 버스가 마을 안까지 들어옴으로 인해 통학생들은 물론 대천에 오가는 어르신들도 버스 시간에 맞춰 종종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적으로도 미리 가서 기다리지 않아 여러모로 편리했다.
시·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고향 읍·면·동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다. 모두가 고향 근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고향 근무를 적극 권 하고 싶다. 직원 때는 마을 어르신을 대하기가 좀 쑥스러워도 팀장급으로 근무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고, 읍·면·동장이면 금상첨화다.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결해 주는 보람은 생각보다 크고 오래간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 지역조사 결과 마을 주민이 걸어서 15분 이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 중 시내버스가 93%인 3만 4,925개 마을로 조사됐다. 이는 2015년보다 0.6% 감소 됐다. 문제는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마을이 전체 3만 7,563개 마을 중 5.9%인 2,224개 마을이다.
시내버스는 예나 지금이나 마을에 없어 서는 안될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초고령화된 농촌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시내버스도 인구감소와 인건비 상승으로 노선 수와 운행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나 장날 등을 제외하고는 이용 인원이 감소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해하나, 농어촌의 교통약자를 위한 시내버스 운행은 농어촌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농촌문제에서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2020년 12월‘농어촌 등 교통 소외 지역의 교통서비스 강화 방안’ 입법 정책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지역별 교통 여건에 대한 현장 조사에서 나타난 가장 뚜렷한 쟁점은 재원에 관한 문제였다. 대부분의 교통 소외 지역은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는 충분한 교통서비스의 확보가 어려운 만큼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위한 재원확보 노력이 중요하다.
교통 소외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통 운영체계 중 일부를 개선하고, 보다 다양한 교통운영 전략이 요구되며, 특정 지역에서는 적극적 논의가 필요한 교통사업의 공영화를 위한 기초 연구나, 공공형 택시 운행에 필요한 효율적인 정산 시스템의 마련, 실버 캐리지(Silver Carriage)를 비롯한 지역 특성별 맞춤형 신(新) 교통수단의 적극적 활용 등이 필요하다’라고.
720번 가그말 버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마을을 오간다. 손님이 있던 없던. 그 버스를 언제 타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