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이예요
서희, 서림, 서진, 서영, 서민, 서숙 뒤는 잘 기억나질 않지만 분명 서 뭐시기 하는 이름이었다. 분명 확실히 들었음에도 잘 기억나지 않는 건, 그 이름을 들은 지 10년이 넘어서도 아니고, 이제 고작 삼십 년을 뭉개져온 내 머리 탓도 아니다. 단지 그 여자 입에서 뱉어진 그 이름이란 것이 새빨간 조명에 홀려있는 사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이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그 무엇 때문도 아니다.
하여간 이름 따위 뭐가 됐든 지금은 검붉은 아니, 새빨간 조명으로 밖에는 기억되질 않는 그 여자. 수 천 개의 진열품 중 하나였던, 그 여자가 내 생의 첫 번째 여자였다. "나비가 될 거예요." 불알친구랍시고 혼자 침대에서도 못할 농담을 나누던 친구 놈들에게 조차 부끄러운 마음에 살금살금 찾아와 두려움과 흥분됨으로 잔뜩 절여진 채 걷고 있는 내게 그 여자가 뱉은 첫마디는 “당신 나비가 될 거예요.”였다. 아니 대체 나비가 될 거라니. 이 빌어먹을 만큼 낡아빠진 창년촌을 거닐고 있는 '놈' 에게 그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그래. 미친 소리, 미친년.
정육점 고기들처럼 차곡차곡 쌓여서는 제가 더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오늘은 특가에 드리고 있어요. 따위의 말이나 내뱉으면 어울릴 것 같은 통유리 속 ‘정욕점’ 진열품 중 하나일 뿐인 년이, 글쎄 내게 그 따위 소리를 내뱉은 거다.
지들 얼굴만 한 도끼빗으로 통유리나 탕탕 두드리며, 저 좀 사가세요.라고 떠들면 딱 어울릴 7만 원짜리 저급한 ‘진열품’ 중 하나가 내게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