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쟁이의 소소한 일상

편집쟁이의 트라우마

by 차영미슬아

예전에는 꽤 털털한 성격이었는데 직업이 나를 바꾸고 있다. 꼼꼼하고 집요하고 까칠해지고 있는듯 하다.

편집이라는게 꼼꼼하고 집요하지 않으면 사고를 치게 되고 사고는 돈으로 연결되는 것이라서 몇번 경험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칼끝처럼 예민해진다.

인쇄하기전 마지막 클라이언트에게서 OK가 떨어져도 마지막까지 보고 또 봐서 목덜미가 조금 덜 불안해져야 출력소에 OK사인을 하고 인쇄소에 급하다고 엄살을 떨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서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어지고 작업된 파일을 들여다보기도 싫다.

책이 완성되어 나오면 꼴도 보기 싫어지지만, 요모조모 틀린곳이 없나, 마지막 수정한건 잘 되었나 확인한다.

이렇게 보고 또 보고 했는데도 사고는 불쑥 터진다. 오타가 보이고, 시가 몇 행이 사라지고, 수정 한줄 알았는데 안되어 있고, 그러면 부리나케 전화가 울리고 나는 우주로 사라지고 싶어진다. 원고에서 나오는 오타는 내가 책임지는게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마음일 뿐, 그냥 죄인이 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울고 싶어지지만 어쨌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정하거나 붙이거나 정 안되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 언젠간 제본소에서 페이지 번호 없는 16페이지 화보를 잘못 앉혀 완전 엉킨적이 있었다. 그나마 이럴땐 무조건 제본소 잘못이니 인쇄소에서 다시 만들고 정리는 알아서 하시겠지, 그러고 모른척 해버렸다.

남편이랑 처음 만났을 때 웃는 얼굴이 너무 이뻐서 좋아했다고 하더니 요즘 웃는 표정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나이 탓만은 아닐테지라고 혼자 변명하고.

그래도 난 이 일이 좋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게 좋고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아보인다고 바쁘다고 가끔 집안일을 소홀히 할 때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고맙다. 집에서 노트북과 씨름하면서 일할 때 곁에 와서 무릎위에 안기는 반려견 아리의 따스한 체온도 좋다. 1인 출판사라 내가 바쁠 땐 일을 조금 줄일 수 있고 일정 조절을 하며 다른 곳에 마음을 줄 수 있어서 좋다.

오늘도 사고를 수습하고 커피숍에서 프레즐과 아메리카노로 마음을 녹이면서 끝이 정해져 있지만 끝이 아니라서 좋다고, 문학 활동을 하면서 마음 통하는 사람과 오래 교류할 수 있어서, 한계없는 공부를 하고, 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래도 참 좋아!"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보는 시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를 쓰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