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유독 더운 거 같다.
이럴 때 더위를 한 풀 꺾어주는 비라도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건만
장마 전선도 더웠는지 시원한 북쪽으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장마 없는 폭염의 시작이다.
매일 밤 자기 전 내일 날씨를 확인한다.
우천 소식은 없다.
요즘 들어 웬일인지 기상청이 잘 맞추는 거 같다.
삶에서 예측은 분리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예측하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끊임없는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
그 이전에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것
바로, 그것이 '삶'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늘 최고의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우리 삶에서 예측과 가장 밀접한 건 '날씨'가 아닐까 싶다.
농경기반 사회 시기에는 날씨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 중 하나였다.
기후에 맞춰 생산해 낼 농작물을 정하고
날씨에 맞춰 그날그날의 작업을 결정했다.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왔다.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삶을 좀 더 유연하게 풀어갈 수 있는 지혜였다.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내일 날씨를 알아야
입고 나갈 옷을 고를 수 있고
비가 온다면 차가 막힐걸 대비해서 좀 더 일찍 나간다든지
우산을 챙긴다든지
새로 산 장화를 꺼내본다든지
나의 일상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상청에게 묻는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오지 않고
안 온다고 했지만 비는 온다.
그리고 실망한다.
내가 어찌할 수도 없이 확률은 늘 우리를 가지고 논다.
내가 예측한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이마저 내가 예측에게 놀아난 것이다.
온다고 했지만 오지 않고
오지 않는다 했지만 온다.
늘 그렇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측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이유는 모른다.
정확히는 전부 알 수가 없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또 그것들은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 수많은 변수를 다 고려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야 한다.'
묵묵히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저 가야 한다.
비가 와도
비가 오지 않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