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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책방 여행자 Nov 25. 2022

Class 3. 1cm 자존심

MZ 사회초년생이야기


미안하지만, 우리도 경력을 뽑는다네..


2달여간의 집콕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취방 현관 넘어로 다시 한발작 걸어나갔다. 나한테 있어서 가장 큰 발걸음이었다.

계산을 해보니 최저시급만큼 받고 주 3일씩 4시간만 일할 곳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야간 안 가리지만 가급적인 평일에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주점, 빵집, 카페, 주유소, 키즈카페 등에 알바 면접을 보러다녔다. 하지만 그 많은 곳들 중 나를 채용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참 이상할 노릇이었다. 특별히 "ㅇㅇ시급은 맞춰주셔야 합니다." "저는 ㅇㅇ는 배려해주셔야 합니다."와 같은 이야기는 일절 안하였고, 고등학교부터 대학때까지 주로 청소년수련원 교관 알바와 mc알바, 인솔교사 이력을 어필하였지만 서비스직 사장님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결국 카페 알바를 갔을때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안뽑으신다면 왜 안 뽑는지 이유를 들었다.

"네? 제가 청춘책방님을 왜 안뽑냐고요? 그야 당연하죠. 책방님은 서비스직 경험 전무하시죠? 나이도 25이신데.. 솔직히 누가 뽑고 싶겠어요.."

그제서야 내 조건들이 냉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해당직종 유사경험 없고, 열정만을 어필하는 25살.. 백번 양보해서 경험이 있다고쳐도 모두 취업준비를 할 때 이렇다 할 목표도 없는 나는 누가보더라도 이상해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안되는가보다'하고 망연자실하던 중 귀인 한 분을 만난다.

"이름이 책방씨에요? 우리 남편이랑 갖네 ^^ 언제부터 나올수 있어요? 네? 경험없는데 괜찮겠냐고요? 없으면 제가 잘 가르치면 되죠~ 대신 일하다가 결정나는 상황이 되면 미리 사람뽑을 수 있게 언질만 줘요"

그렇게 사장님 남편 덕(?)을 보아 치킨과 햄버거를 같이파는 프렌차이즈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 갈 길 많아 ^^


알바를 하던 곳에서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중 대학원 생이었고,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쪽의 전공을 갖고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본인이 전공을 살릴지는 의문이라는 말을 뒤에 꼭 붙였다.

대학원 휴학하고 사회경험 쌓겠다고 여기서 일하는 저쪽이나, 갈길 모르고 헤매다가 여기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쪽이나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그 좁은 부엌안에서 본인은 소방공무원 붙어서 인생폈다는 31살 형이랑 함께 옥신각신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셋이서 싸움이 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데 어쩌다보니 '자신이 더 비젼있다' 콘테스트가 벌여진 것이다. 그 콘테스트 저편에는 '여기서마저 굽힐순 없다'는 각자의 마지막 자존심이 걸려있었다.


참가자를 한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1살 소방공무원으로 처음 사회생활 시작한 A

4년째 다니는 대학원을 휴학하고 알바하는 B

월세도 못내고 굶기 직전에서야 알바하러나온 나


이들과 대화하다보니 A는 "야 난 소방이라도 있지!"라며 본인이 제일 낫다고 이야기를 했다. 현재까지가 어찌됐든 미래 방향타라도 잡힌 그였기 때문에 1등은 정해진 것 처럼 보였다.

결국 B와 나 둘이서 꼴지탈출전이 벌어졌고, B는 치사하게 본인이 휴학중인 전공의 비젼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내놓았다. 게다가 부모님께서 동네에서 슈퍼마켓까지 하는 자본가(?)였기에 나는 완패했다.

아직까지도 B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을 잊을 수 없다.

"난 갈 길 많아 ^^"


시간낭비 그만하고 다시 돌아와


대학시절부터 호형호제하던 선배가 있다. 집에서 맏아들이어서 동생들 챙기는 때는 많았어도 챙김받을 일이 적었다. 그런 나를 진짜 친 동생처럼 챙겨주던 형이 있었다. 진로문제는 당연하고 연애, 짝사랑상담에 가족 집안일까지 다양한 주제로 우리는 대화를 했다.


아르바이트 휴일. 큰맘먹고 집에 가서 형한테 술한잔 하자고 불렀다.

술을 먹으며 기나긴 회포를 풀며 형은 진심으로 동생을 걱정하고 위로해줬다. 그리고 27까지 방향 못잡고 안좋은 생각까지 했던 자신을 이야기해주었다.


 "책방아.. 너 다시 본가로 내려오는건 어떻겠냐?"

처음에는 손사래치면서 안된다고 하였는데, 알바는 본가인 여기서도 할 수 있고, 방향성 없이 혼자 알바를 하며 시간이 아깝다는게 형 의견이었다.

무엇보다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상태였다면 내려오라고 말을 못했겠지만, 지금처럼 극복은 했는데 방향성의 부재라면 내려오는게 맞다는 것이다.


그렇게 1달의 시간이 지난후 난 내려왔다.

방을 빼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집주인 허락아래 방청소비 5만원을 제외하는 대신 방을 깨끗하게 빼기로 약속하여, 엄마랑 이모까지 오셔서 셋이서 대청소를 하였다. 아직까지도 죄송하면서도 너무 감사하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성


누구나 다 아는말이지만, 누구나 다 간과하는 말이다. 같이 일하던 A와 B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아마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색있게 살지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그때 우리 셋이서 했던 타인을 통해 본인의 위치를 판단하는 불행한 레이스를 지금은 안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당시 우리는 왜 각자의 위치를 서로를 통해서 확인하려고 했을까? 정작 중요한 각자의 길에서 얼만큼의 속도로 어떻게 가는지가 중요한건데...


더욱 웃긴건 난 대학 4년동안 아이들에게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도 갈 곳 모르게 마음만 급해지니 타인들의 평균치에 본인을 맞추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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