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
라고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내 눈에 보이던 풍경들은 날 둘러싼 주변인들의 기대였다. 대학을 다니며 대외활동, 학과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하며 성과 아닌 성과들이 쌓여갔고, "형 없으면 일이 안돼요."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하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뒷받침 해주듯 나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평가가 좋을수록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확신에 찼다. 그렇게 세상 잘난 바보가 되어서 사회에 첫 발을 들였다.
사회 첫 시작을 5인 이하의 작은 기업에서 시작했다. 인터넷 신문사였는데, 사람들과 곧 잘 친해지는 성향과 메모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일을 적당히 곧 잘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일을 하면서 큰 노력을 할 생각은 없었다.
재학생 시절 학과 공부나 과제에 목숨을 걸고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적당히 일을 하며,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회사. '적당히' 해도 성장할 수 있겠거니 생각한 회사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의 사회 첫 단추를 잘못 꿰게 했다.
넌 왜 주말에 안 나오니?
5인 이하 회사는 돈 안 되는 일을 열심히 하는 회사였다. 부장님은 허구한 날 회사를 퇴직할 거라고 얘기하면서도 특종을 따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오는 날이 적은 분이셨다. 일당백이셨던 차장님은 혼자서 대부분의 사무업무를 보시면서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대표님도 항상 어딘가에 영업을 다니시는 분이셨고,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사시는 분이셨다. 모두가 열심히 하는 회사였지만, 헛똑똑이였던 나는 항상 우리 회사 영업시스템과 업무 스타일에 불만을 가졌다.
'52시간은 훨씬 넘기는 거 같은데...'
'이 회사에서 비전이 있을까?'
'난 주말은 꼭 쉬고 싶은데... 일은 정해진 시간 내에 잘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조직생활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해봐야 아는 것도 있다. 특히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자기 앞가림을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또한 겪어봐야 알수있다.)
그걸 깨달은 지금,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헛 똑똑이었고 대표님과 그 일행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 느끼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그저 이 회사는 비전이 없고, 여기서 일하기 싫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그렇게 회사도 힘들고 나도 힘든 시간이 계속해서 지나갔다. 보다 못한 대표가 어느 날 카페에서 면담을 진행하자고 하였다.
"너 같은 직원. 우리도 필요 없어"
어이가 없고, 매우 화가 났고, 당황스럽고, 쪽팔렸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크게 잃었다. 대학을 다닐 때와 세상이 다르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듯 말하는 대표와 그 말에 한마디 반박도 못하는 나 자신이 정말 맘에 안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그만두겠다는 말이 안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지방에서 취업을 위해 방을 구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월세 충당이나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다. 그 당시 대표님께 말씀을 듣고 집에 가서 씩씩거리며 '알바 x' '알 x천국'을 뒤져가며 월세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다행히 월세가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고, 거주하는 지역 근방에서 알바자리를 구하면, 그 시급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음 날 대표님께 가서 그만두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이후 대표님은 두 번 정도 사표를 반려하시면서 앞으로 같이 더욱 성장하면 어떻겠냐고 설득하셨지만, 제안을 거절하였고 쿨내(?)나게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나올때는 자신있게 나왔지만, 회사 근방에서 혹여 마주칠까봐 돌아가는 찌질함도 보였다. 나는 쿨내 나는 것이 아닌 도망가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한 가지 중요한 건, 난 더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난 이제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판이 바뀌었고, 빨리 받아들여야한다.
만약 그때의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대학과 사회는 엄연히 시스템이 다르다. 대학은 내가 돈을 주고 해당 자리가 보장이 되었다면, 사회는 남에게 내가 돈을 받으면서 해당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적당히 내가 경험할 수 있는'이라는 생각을 한 것부터 패착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은 명확했어야 했다. '3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어야지.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이런 경험이 필요해.' 하는 진로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도 없이 '이 회사는 비전이 없어!'라며 쿨하게(?) 사표를 쓰고 나왔다. 이 행동으로 인해 난 2년 동안 비싼 수업료를 냈다. (이다음 이야기들에서 다룰 예정)
이 글을 읽고, 대학 때의 평가와 본인의 평가가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고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면, '대학 때는 돈을 줬고, 지금은 돈을 받는 입장'에서 다시 본인의 위치를 정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첫 번째 전제가 잘 확립이 된다면 그다음 발걸음 하나하나 괜찮은 발자국으로 찍힐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