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여행기_걸어서 국토횡단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한 직장에 정착한지 이제 4년을 바라보고 있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좋고 힘든 일들을 같이 하며 넘어간 것 같다. 처음에는 새로웠던 일들이 당연해지고, 꾸역꾸역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꾸역꾸역이라는 말을 '마지못해 하는 비참한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꾸역꾸역'은 어쩌면 열정의 반댓말일수도, 생존의 반댓말일수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하는 생각이다. 지금의 내 상태가 엄청 힘들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다른 여행지를 생각하게 된다. 마치 그곳에는 나의 쉼이 있고, 힐링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데 막상 도착하면 거기에서도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한다. (예를들면, 숙소에 도착했더니 피곤함이 몰려온다던가, 다른 스케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문제들을 차근 차근 해결하다보면 어느덧 여행이 끝나있다.
처음 국토횡단 여행을 갔을 때, 우리집 앞에 있는 아스팔트와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아스팔트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따듯한(?) 아스팔트가 모험의 장을 열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스팔트는 여전히 차가웠다. 오히려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더 거칠었다. 발을 퉁퉁 불게 하고, 뜨거운 열로 사람 못살게 했다. 그 아스팔트와 친해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냥 꾸역꾸역 참고 걷는 수 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꾸역꾸역 걷고 또 걸었다. 때로는 여행길을 떠나온 내 자신을 탓하며 걸었고, 막연히, 묵묵히 걸었다. 그러다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호언장담한 내 자신이 창피해서 돌아가지 못했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까워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그냥 꾹 꾹 눌러 참고 걸었다.
여행 4일차, 같이 여행을 간 형이랑 헤어지게 됐다. 형이 갑작스레 장례식에 참석해야하는 상황이 와버린 것이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속으로는 지금이라도 이 여행을 그만둬야하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냥 꾸역꾸역하기로 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꾸역꾸역 하기로 했다.
그렇게 괜찮다 괜찮다 하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골 5일장날 솜사탕 하나를 받았는데, 그 솜사탕의 달달함에 엉엉 울었다.
지방 발령을 받은 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운동이다. 감사하게도 3년을 바라보는 취미다. 운동이라는 취미를 꾸준히 갖고 오는 내 자신한테 정말 감사하다.
처음 시작은 퇴근하고 지친 몸 억지로 끌고 운동하는 곳에 갔다. 갈 수 밖에 없게 집가는 길목 중간에 운동하는 곳에 회원권을 등록했다. 그러다보니 어쩔수 없이 운동을 하러갔다.
크로스핏이 뭐하는 운동인지를 알았다면, 등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몰랐기 때문에 그냥 했고, 지방 발령으로 사람들을 사귀기 힘든만큼, 운동을 하며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크로스핏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운동을 하며 중간 중간 사람들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 운동을 가르쳐주던 코치도 바뀌었고, 잘 나오던 회원이 그만두는 일은 파다했다. 나보다 운동 잘하는 형들도 어느덧 일 때문에 그만두고, 사람 때문에 그만두었다.
이제는 새로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익숙치 않은 자세를 나한테 물어보시고는 한다. 꾸준히 했을 뿐인데, 체육관 내에서 조금씩 조금씩 인정받는 내 모습이 좋다.
운동을 좋아해서 버틴 것은 아니었다. 퇴근하고 피곤한 날도 많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든날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가서 쉬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운동하러 갔다. 가서 그냥 문만 만지고 다시 돌아가야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문을 만지고 체육관에 들어가면, 그냥 내 일을 하듯이 하나씩 해나아갔다. 그렇게 그냥 꾸역 꾸역 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뭔가 꾸준히 하기 힘들때 자연스레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던졌을 때가 '국토횡단'여행길에서였다. 분명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어서 했는데, 고통만이 남아있게되니 마음이 약해졌다.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무니 결국에는 포기하고 싶어서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 뒤로는 질문보다는 그냥 꾸역 꾸역 성실하게 걸었다. 그러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어서 국토횡단을 한 여행길에서 배운 큰 키워드는 '꾸역꾸역'이 아닐까 싶다.
이번 글을 마무리로 20살의 여행기 '소년의 여행기'를 마무리 한다. 다음주에는 직장인이 되어서 여행을 떠났던 '청년의 여행기'로 독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글을 쓰며 내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기록을 찾는 시간이 즐거우며, 그때를 회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청년의 여행기는 좀 더 공감이 되고, 마음 편한 글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