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할 때, 누군가와 어울릴 때, 조별과제를 할 때,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소꿉놀이를 할 때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바로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담학을 공부하다 보면, 의지와 상관없게(물론, 듣겠다고 앉아 있는 것은 나다)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대인관계에 관한 어려움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번은 친구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가 갸우뚱 해진 적이 있다.
아직 연애를 하기 전이었지만, 그때도 연애 상담을 많이 했다. 20대는 누구나 연애를 하기 좋은 시기 아닌가! 그날도 내 친구에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한적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친구 행동이 조금 많이 특이했다. 갑자기 가방에서 종이와 팬을 꺼내더니 열심히 관계도를 그리는 것이다.
순간, 나는 내 친구 인생사 해프닝(?)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는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해프닝(?)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해프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가 자기 남자 친구에게 어떤 역할을 줘야 되냐고 물은 것이다.
"내 남자 친구는 기대야 하는 사람일까?, 내가 버팀목이 돼야 하는 사람일까?"
"가끔은 아빠 같은데, 가끔은 동생 같아."
"영화 속 주인공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조연이라고 하기에는 아깝지."
듣다 보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친구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친구는 그런 내 반응이 알만하다는 듯이 웃더니 "왜? 누구나 다 역할이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친구가 자기 남자 친구를 자랑하는 시간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시간이 지나서 그 친구에게 연애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어봐주었다. 친구에게 나는 당당하게 내가 느끼는 여자 친구를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중 "네가 평상시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라는 답변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친구에게 말한 이상형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데, 정말로 친구에게 말한 이상형과 내 여자 친구는 엇비슷해 보였다.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에이~ 당신이 이상형을 찾아서 간 거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거다. 그 말 또한 맞다. 여자 친구를 만남에 있어서 계산을 한 적은 없지만, 내가 마음 가는 대로 갔다면, 평상시 내가 기분 좋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그런 모습 말고도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한테 이러한 모습으로 남겨질 수 있는 이유는 연애를 하면서 은연중에,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내라 원하는 이상형을 그렸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여자 친구에게 내 영향이 꽤 많이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연애관계에서 내 여자 친구는 그런 표지션인 것이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랑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떤 포지션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어떤 포지션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 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약속'을 한 듯 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포지션'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갈까 봐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포지션은 누군가에 한계를 짓는 역할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꼭 필요로 하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포지션에 상관없이 그 사람은 세상에 존재해줘서 감사한 사람이다.
축구에서 공격수가 필요하듯이, 농구에서 파워포워드가 필요하듯이, 조별과제에서 발표자가 필요하듯이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포지션을 부여해 준다. 그 관계로 인해서 우리는 함께 하게 된다. 오늘 하루도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은 누군가와 다분히 관계를 맺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을 위한 팀'이지 않을까?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누구에게 어떤 포지션을 주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