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2016.09.09
Mainz, Deutschland
내 첫 유럽여행에서 관광계획은 급하면 하루 전에서 넉넉하게는 일주일 전에 계획되었다. 가이드북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도시가 있으면 "다음은 여기를 갈까?" 하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동선도 비효율적이고, 하지 않아도 될 고생도 꽤 했다. 조금 무모했지만 그때 나는 즐거웠다. 다음 여행지를 고르고, 현지에서 추천을 받고,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기뻐하는 그 순간순간들이 추억이 되었다.
여행지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나름 부지런을 피워보고자 했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오는 동안 내 시간 감각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조식을 먹고 숙소를 나왔다. 이때까지는 외국에 혼자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무서움보다는 기대가 크고 걱정보다는 설렘이 강했다. 그리고 어쩌면 근본모를 낙천성이 발휘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인츠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살짝 떨어진 소도시로 가이드북에서 당일치기로 추천한 도시였다. 나에겐 "직지심체요절"과 같이 엮여 익숙한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는 도시로 반나절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듯 싶었다. 평소 박물관이라면 잘 모르는 주제라도 한 번씩 들어가 구경하던 나에게는 처음 가는 나들이로 딱인 곳이었다.
전날 일정을 고민하며 가이드북의 사진을 찍고 가고 싶은 장소를 구글맵에 검색해 두었다. 물병과 보조배터리도 잘 챙기고 당당히 길을 나섰다. 웃으며 나간 아침과 달리 울어서 팅팅부운 눈으로 돌아올 미래도 모르고 하나 있는 룸메이트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어제는 그리도 어렵고 당황스럽던 표 끊기도 별 탈 없이 잘 해내었다. 프랑크푸르트와 그 근교까지 다 갈 수 있는 1일권을 구매하고 독일의 지하철중 하나인 S반을 찾아 무사히 탑승했다.
나의 목적은 박물관과 대성당이었고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이니 무리하지 않고 이른 오후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날씨는 완벽했고 열차 타이밍도 잘 맞았다. 순조롭게 시작된 첫출발에 자신감도 기분도 고공행진을 이루었다.
유럽에서 마을마다 볼 수 있는 성당을 석 달 뒤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정도로 취급했지만 첫날만큼은 굉장히 신기했다. 사진 속에서, 영상 속에서 보던 건물들이 내 눈앞에 있었고 처음으로 보는 섬세하고 커다란 대리석 조각에 눈이 뜨였다.
예쁘고 반짝이는 성당도 좋았지만 나는 길을 걷다 발견한 반파된 교회 터 또한 좋았다. 마인츠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부서진 교회를 보수하지 않은 채 남겨둔 터가 있었는데 토대의 반절이 무너져 내린 건물은 부서진 부분 위에 과거 나치의 행적을 기록해 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과오가 기록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잠깐의 마을구경 후 멀리 보이는 건물이 예뻐 보여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곳이 박물관이나 중요한 관공서인 줄 알았지만 구글 맵을 보니 평범한(?) 교회였다.
외관이 예뻐서 가까이 구경하는 걸 목적으로 돔을 보며 걸었다. 다만 이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길을 못 찾았기에 금방 도착할 것 같던 돔은 서서히 건물에 가려지고 보였다 나타났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냥 포기할까... 싶을 때 붉은색의 성이 눈에 들어왔다.
겉만 봐서는 박물관인 듯 미술관인 듯 알 수 없던 그곳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직진했다. 운이 좋게도 친절한 직원분이 차근차근 건물을 소개해 주셨다. 지도 한 장을 받고 80%는 못 알아들은 설명을 복기하며 건물을 구경했다. 독일어만 가득한 곳에서 어쩌다 발견한 영어에 감격하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구경했다. 중간에 전시 영상에서 한국어가 나와 놀랐던 기억도 희미하게 있다. 지역사회에 대관을 하는 커다란 공연홀과 갖가지 대형 그림들이 걸려있는 방들을 구경하며 계획에 없던 방문이지만 나름 알차게 즐기고 나왔다.
이번에는 진짜 돔을 보러 가자 마음먹고 친절한 직원분이 알려준 길을 되새기며(물론 이해는 못했다) 어렵게 교회 입구를 찾아냈다. 가까이에서 본 돔은 예뻤고 노인 단체 관광객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부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구경하고 구텐베르크 박물관으로 향했다.
영어 설명이 있는 전시가 이렇게 기쁠 줄이야! 안 되는 머리를 굴리고 번역기를 이용하여 전시내용을 이해했다.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인쇄에 관한 역사와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구석에는 작게나마 아시아관도 있었다. 지금 와서는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쾌적했다는 인상만은 또렷해서 신기하기도 하다.
마지막 목적까지 잘 완수한 나는 이제 숙소에 돌아가 먹을 저녁을 걱정했다. 장을 봐야 하나? 숙소에서 조리가 어디까지 가능했지? 한국에서도 식당주문을 어려워하던 나였기에 식당을 간다는 선택지는 조금 무서웠다. 마인츠 역에 들어와 저녁 고민을 하며 나는 내가 오늘 하루를 꽤나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맞춰 들어오는 열차에 오르고 자리에 앉아 출발할 때까지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출발한 지 5분 만에 나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구글맵에 보이는 내 위치가 이상했다. 타고 온 열차와 달리 지금 타고 있는 열차가 너무 좋았다. 옆 좌석 승객이 티켓을 꺼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떠듬떠듬 옆좌석 승객에게 이 기차가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게 맞냐고 물었다. 관광객인듯한 승객은 잘 모르지만 아마 아닌 것 같다는 답을 주었다. 검표원에게 물어보라는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검표원이 다가왔고 나는 겨우겨우 이 기차의 목적지를 물었다. 발음조차 생소한 지역이 나오자 그때부터는 목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열차를 잘못 탔다는 내 말에 직원은 다음역에서 내려 다른 열차를 타라고 말하며 원래 목적지를 물어봤다. 프랑크푸르트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일단 지금 넌 무임승차를 했으니 벌금을 내고 새로운 표는 안 끊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나는 벌금을 내고 영수증을 받고 다음역에서 내렸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다른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냐는 말에 직원은 아주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딜레이'라 답했다. 억울했다. 그럼 딜레이 표시를 띄워줬어야지 싶었다. 그러다 내가 그 표시를 못 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어깨가 부서져라 커피를 내렸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2유로가 아까워 굶은 점심이 생각났다.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포메이션을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내가 새로운 티켓을 사야 하는지 산다면 무슨 티켓을 사야 하는지 내 영어실력을 못 믿어 번역기로 돌린 글도 같이 보여줬다. 그러나 심드렁한 젊은 남직원은 대꾸도 없이 스케줄표를 하나 뽑아주고는 '넥스트'를 외쳤다.
내 긴 물음의 답은 겨우 열차시간이 적힌 종이 한 장으로 돌아왔다.
막막했다. 생각이란 게 멈춘 것 같았다. 이대로 못 돌아가면 어쩌지? 어떡해야지? 넋이 나가 스케줄표를 바라보다가 적혀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열차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오는 열차를 타면 되는 건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벤치에 걸터앉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설고 막막하고 두려울 때 너무나 익숙한 책표지가 보였다. 붉은색의 배경에 어린 남자애가 그려진 아주 익숙한 책이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무턱대고 옆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나 도와줄 수 있어?"
"sure."
안경을 끼고 해리포터를 읽고 있던 여자분은 망설임 없이 책을 덮었다. 띄엄띄엄 상황을 얘기하고 스케줄표를 보여주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엉망인 목소리로 말하는 엉망진창 영어를 듣던 그는 우선 괜찮다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인지 참고 있던 눈물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너무 고맙고 또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계속 입안을 짓씹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나와 함께 직원에게 다가간 그는 독일어로 나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깐깐해 보이는 할아버지 직원은 몇몇 물음을 던졌고 그는 그때마다 답하면서 간간히 내게 티켓과 벌금용지, 스케줄 따위를 요청했다. 길게만 느껴진 대화가 끝나고 직원은 무뚝뚝한 얼굴로 문을 가리켰다.
해결이 된 건가 싶어 쭈뼛거리며 그를 따라 열차에 탑승했다. 그는 내게 자신이 상황설명을 했으며 검표할 때 아까 보여준 종이들을 보여주면 추가티켓 없이 이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이 열차는 중간에 분리되어 각기 다른 목적지로 향한다 했고 자신은 앞쪽칸으로 가야 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신 땡큐를 외치며 그를 배웅했다. 뒤돌고 나서야 은인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는 게 생각났다.
아직도 나는 해리포터의 1권 책표지를 보면 그 언니가 생각난다. 다짜고짜 울먹이며 도와달라는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 친절이 너무나 고맙고 멋졌다.
그날 돌아오는 열차에서 검표하는 깐깐한 직원이 한참을 내가 준 티켓을 보며 혼잣말을 할 때도, 열차에 내려서 노을 진 길거리를 걸을 때도, 숙소에 들어와 진이 빠진 채 늘어질 때도 나는 그 언니의 괜찮다는 말만 되새겼다.
이때 이후로 국내든 국외든 열차의 방향과 종점을 3~4번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열여덟 유럽여행 2일 차에 겪은 경험이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부리게 되었다. 이 역시 경험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