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유는 여유에서 나온다
2016.09.29
Berlin, Deutschland
이제는 익숙해진 루틴으로 아침을 맞았다. 룸메이트들이 나가자마자 방문을 열고 커튼을 걷었다. 막혀있던 공기가 흐르고 상쾌한 바람이 방 안을 채웠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길을 나섰다. 오늘로써 박물관 3일 패스가 종료되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오늘도 걷는 대신 교통권을 끊었다. 첫 목적지는 베를린 문화포럼의 회화관이었다. 때마침 포럼에서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추가로 표를 끊는 게 아깝기도 하고 특별히 관심 가는 주제도 아닌지라 회화관의 소장품만 관람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성화(聖畵)라서 신을 주제로 한 그림만이 가득했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획일된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의미를 가진 수많은 그림 속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인상 깊은 작품들은 존재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램브란트의 그림을 코앞에서 봤다. 멀리서 봤을 때는 어두운 선들이 얽혀있는 덩어리였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빛을 받은 선들이 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모호해 보였던 형태가 반짝이며 윤곽을 그렸다. 왜 사람들이 램브란트를 '빛의 화가'라 부르는지 이해가 되었다. 분명 밝은 색을 쓰지 않은 그림인데 빛이 보였다. 극명한 어둠 속에서는 도리어 회색이 밝아진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사진으로 담아보려 해도 번번이 실패했다. 눈으로 보이는 이 빛을 담기에 나의 촬영실력이 너무 빈약했다. 아쉬울 따름이었다. 핸드폰을 내리고 그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각도에 따라 보였다 사라지는 윤곽들이 너무 신기했다. 어둡고 캄캄한데 동시에 빛이 보였다.
이런 그림을 서재에 걸어놓고 아침햇살과 저녁노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부드러운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아까와는 다른 빛을 내는 그림을 만난다면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그 그림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풍경이 담겨있다면 얼마나 더 만족스러울까.
왜 옛날부터 돈 있는 사람들이 화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그림이라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찬찬히 돌아다니다 루벤스의 그림도 발견했다. 램브란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좋았다. 좀 더 화려하며 밝았고 미학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많은 등장인물과 색이 들어감에도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장이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아마 나 같은 문외한에게도 감탄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질릴 정도로 잘 그린 그림들을 거닐며 감각이 조금씩 둔해졌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죄다 십자가에 예수와 수염 난 아저씨들만 그득그득하니 지루함이 찾아왔다. 그때 그 그림을 발견했다.
주제는 단순했다. 예수의 죽음. 그런데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크기도 꽤 있던 그림인지라 멀리서 보았다가 가까이에서도 보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바라봤다.
그림 속의 예수는 십자가에서 끌려 내려와 방치되어 있었다. 쓰러져있는 예수를 한 노인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너무나 오묘해서 더 매력적이었다. 기특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익숙해 보이기도 하고. 그림의 주인공은 예수보다는 노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그냥 찍어야 된다는 생각 없이 계속 바라만 보았다. 나중에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또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보러 갔다. 역시나 보기 좋았다. 성화(聖畵)를 이렇게 오래 본 것은 처음이었다. 건물을 나오고 나서야 내가 사진을 찍지도,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아쉬웠지만 다시 들어가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두고두고 곱씹어보고 싶은 그림이었다.
아직도 그 그림의 작가를 모른다. 딱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아주 가끔씩 그 그림이 떠오를 때마다 내 기억 속에서 점점 더 미화되고 더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마 다시 본다 해도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작가의 작품 위에 나의 감상을 덧디워 나만의 성화를 만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입구부터 가득 찬 공룡뼈에 붕붕 뛰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차분하게 입장했다. 내 또래들 중 어린아이 때 공룡을 단 한 번도 안 좋아해 본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관문처럼 티라노사우르스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존재라고 믿는 시기가 존재하는 것 같다.
조금 더 머리가 굵어지면서 취향이란 걸 가지게 되면 초식공룡 VS 육식공룡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나름 최애공룡도 하나씩 생기기 마련이다. (나의 최애는 트리케라톱스였다.)
거대한 공룡뼈로 시작하는 박물관 투어는 느낌이 좋았다. 영어 설명도 잘 되어있고 '자연사'라는 주제만큼 방대하고 다양한 주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어만 제공되었던 영상이었다. 우주 코너를 구경하다 어린아이 몇 명이 누워있는 소파를 발견했다. 부모도 따라 눕길래 나도 눈치껏 끼어들어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원형소파에 누우니 계속 서있던 다리가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 이대로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 싶을 때 영상이 시작되었다.
오로지 독일어 안내였던 영상은 우주의 시작인 빅뱅부터 팽창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워있는 사이 점점 내려오는 영상 속 별들과 태양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영상이 끝나고 남아있는 우주관은 깔끔히 패스했다. 다리를 포기해 30분을 걸어도 이 영상보다 더한 즐거움을 얻을 수는 없을듯했다.
우주관을 버리고 내가 찾은 곳은 생물관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박제되어 있던 전시실은 그다지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자세히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았다. 동공은 반질거리는 플라스틱이지만 형태와 모피만큼은 살아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친절하게 단계별로 전시된 박제를 만드는 법을 읽고 메인을 차지한 장식장을 보니 속이 영 불편했다. 학문적인 이유라는 것도 알고 박제된 동물들의 대부분이 병사나 사고로 인해 죽은 동물을 기부받은 거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냥 기분이 별로였다. 종류의 구분 없이 장식장에 채워진 동물들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압권은 뒤쪽으로 이어진 'Wet Collection'이었다. 젖은 수집품이라는 이름답게 약품에 담긴 어류나 작은 파충류 따위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굉장히 음습한 느낌을 주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의 컬렉션이 떠올랐다.
어린아이가 본다면 충분히 트라우마가 될만한 광경이었다. 컬렉션은 안쪽으로 쭉 이어졌지만 관람객은 밖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저 유리병사이를 가로지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죽어있는 박제들 사이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게 묘한 기분을 만들어냈다. 그리 유쾌하지도, 생각보다 흥미롭지도 않았다.
발을 돌려 1층에서 가장 조용한 구석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들린 광물전시실은 조용했고 사람이 가장 적었다. 반짝이고 빛나는 돌멩이들을 보다 보니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전생에 까마귀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반짝이는 것에 홀려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자수정도 좋았지만 암석에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듯한 이름 모를 광물들도 좋았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돌들을 바라보다 보면 저게 '보석'이구나 싶어졌다. 당연히 세공된 보석이 더 반짝이고 예쁘지만 원석 그 자체에서 빛을 받을 때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영어나 자연사에 대하여 잘 알면 더 즐길 수 있었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공룡뼈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건물을 나섰다.
엉망인 동선이지만 다음 목적지는 패스 첫날 들렸던 박물관 섬이었다. 그곳에 있던 구 국립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트램을 타고 달린 뒤 정류장에 내리자 내 실수를 깨달았다. 지도를 보며 혹시나 싶었지만 와서 보니 역시나였다.
나는 첫날 국립미술관을 방문했었다!
내가 '구박물관'이라고 생각한 곳은 '구 국립 미술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구 박물관'이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구 박물관'에서 그리스유물들을 잔뜩 구경한 뒤 '구 국립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같은 곳이라 생각한 곳이 사실 다른 곳이었던 것이다. (어째서인지 박물관에 회화관 치고는 그림이 너무 많다 싶었다...)
작은 착오가 있었지만 오히려 잘된 거라 생각했다. 첫날 너무 지친 상태로 본 그림들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기에 찬찬히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달가웠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박물관 앞 푸드트럭에서 초콜릿쿠키를 하나 사 먹었다. 초코칩이 잔뜩 박혀있어 조금 무섭기까지 한 쿠키는 꽤 맛있었다. 당분도 채웠으니 이제 감상의 시간이었다.
미술관에서의 소소한 목표는 엄마가 알려준 독일 화가의 그림을 찾는 것이었다. 때마침 유럽 회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던 엄마가 심심하면 찾아보라고 던져준 미션이었다.
부러 꼼꼼히 작가의 이름을 보고 그림을 확인했다. 저번에는 20분 만에 해치우고 나가서인지 분명 왔던 곳인데 새롭기만 했다.
미션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내 능력으로는 엄마가 말한 화가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화가의 이름과 그림을 찾겠다고 꼼꼼히 본 덕에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잔뜩 발견할 수 있었다.
오전과 달리 몇몇 그림들은 사진으로도 남겼다. 역시나 엉망인 촬영이었지만 찍는다는 행위에 만족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만 찍었다가 그래도 작가의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 명패도 같이 남겨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이름이 익숙해졌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유독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골랐는데 3연속으로 같은 작가가 나왔을 때는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내부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구경했다. 저번에 왔을 때는 배경처럼 지나갔던 그림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술이란 것을 즐기려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구나. 늦은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지치고 힘들 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것들이었다. 얼른 가야 할 곳이 있는 상태에서는 이 작품 하나에 들어간 붓터치와 색감을 보고 감상을 느낄 생각 따위는 나지도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내가 받아들일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하는구나. 위층으로 올라가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향유는 여유에서 시작된다.
모네의 <Summer>. 저번에 왔을 때는 있는지도 몰랐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참을 바라봤다. 기묘하고 기분 좋은 색감이었다. 앞에서 계속 유화 특유의 묵직한 느낌들을 보다가 가볍고 상쾌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보니 더 인상 깊었다. 바람과 햇살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그림에도 향기가 있다면 분명 <Summer>는 초여름의 바람향이 날것이다.
모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작가들의 그림이 새로웠다. 유화 그림 특유의 묵직한 느낌을 잔뜩 느꼈다. 어두우면서도 밝고, 겹겹이 쌓인 두꺼운 물감들이 몽환적이기도 하고 사실적이기도 한 선들을 만들어 냈다. 그곳에 있던 그림들은 내가 스쳐 지나간 배경들이 아니라 각각의 매력을 가진 창조물들이었다. 색과 색이 섞이면서 만들어낸 질감마저 아름다웠다.
경의라 불러도 될 만한 감정을 느끼며 작품들을 눈에 담았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기지 않을 그 느낌을 잃어버리기 싫었다.
숙소로 돌아와 아몬드를 안주삼아 맥주를 한 캔 땄다. 시원한 액체를 옆에 두고 3일간 돌아다닌 박물관과 미술관을 정리해 보았다. 총 8개의 이름이 나왔다. 하루 평균 8시간 동안 돌아다녔고 내 다리에는 딴딴한 알이 잡혔다.
휘몰아친 3일이었다.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참 많은 것을 보았고 그만큼 많은 것을 느꼈다. 쏟아지는 도파민에 술을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올랐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았다는 게 놀랍고 즐거웠다.
며칠간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내일은 좀 여유를 부려볼까 싶어졌다. 할레에서 먹은 볶음밥이 아른거리니 아시안 레스토랑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마트에 가서 물도사고 과일도 사야 한다.
내일은 맛있는 걸 먹으며 9월의 마지막날을 기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