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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Dec 26. 2020

삼삼오오 회식, 어디로 가오리까

코로나가 가져온 단어의 변화들

지난 4월 공원을 산책하다 찍어둔 사진. 몇 달 지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연말이 되도록 오히려 거리두기는 강화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들고 싶다. 두레와 품앗이에서 이어져 온 '어울림'의 미풍양속을 지닌 우리가 이제는 너와 나의 마주함조차 신경이 쓰이고, 또 써야만 한다. 띄어 앉든, 마스크를 쓰든 어떻게든 물리적 거리를 둬야만 하는 사이가 됐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보단 냉정함이 필요한 시기다.


'사회적 거리는 두되 심리적 거리는 줄이자'고 하던데 사실 그게 말만 쉽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Out Of Sight, Out Of Mind)가 인생사 순리인데, 비대면 시대에도 마음의 거리를 좁히라는 게 웬만해선 실천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페북과 인스타에 좋아요, 하트를 아무리 눌러댄다 한들 마주하며 온기를 느끼는 위력에는 솔직히 미치지 못한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을 고육지책으로 홍보할 수밖에 없는 방역 당국이나, 그런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위로를 삼으며 지켜나가야 하는 일반인이나 곤욕을 치르며 곤혹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코로나가 서둘러 종식되는 수밖에 답이 없다.




풀릴 줄로만 알았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히려 '5인 이상 모임' 금지 등 강화되는 추세다. 과거에 무심코 썼던 단어 두 개가 떠올랐다. '삼삼오오'와 '회식'(會食). 이제 더는 좋은 뜻으로만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과연 이들을 대체할 만한 단어가 있을까.


1. 삼삼오오

: 서너 사람 또는 대여섯 사람이 떼를 지어 다니거나 무슨 일을 함. 또는 그런 모양.

소녀들은 삼삼오오로 모여서 어제 본 영화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 웃곤 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함께 몰려다닌다.
기숙사를 나온 사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짓기도 하면서 흩어졌다.≪박경리, 토지≫
점심시간 후의 잠깐 동안 산책을 즐기는 여사무원들의 삼삼오오가 눈에 띄었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삼삼오오의 예로 든 문장들이 이렇게 정겹게 느껴질 때가 없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에 따르면 이런 행위 중 상당수는 벌금이나 과태료 대상이 될 수 있다. 살벌한 세상이다.


삼삼오오는 '서너 사람 또는 대여섯 사람'이 어울리는 모양이라는 뜻이기에 적어도 집합금지 조치가 적용되는 1월 3일까지 이 단어는 금기어다.


'삼삼사사' '삼사삼사' '사인이하' '삼또는사' '일이삼사' '모이지마' '혼자다녀' 등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이든 입에 찰싹 달라붙는 맛은 없다.


2. 회식

: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음. 또는 그런 모임.

부서 회식.
인사이동 철이라 회식이 잦다.
우리 부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친목 도모를 위해 회식을 갖는다.


회식은 코로나 양성이 1일 1000명 안팎인 지금 말만 들어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단어가 돼 버렸다. 모여서 먹는다니! 식당에서도 5명은 한 테이블에 못 앉는단다. 대안으로 4인씩 쪼개기 모임 등이 아이디어로 제시되던데 5인 이하라도 자제하랍니다 여러분.


회식뿐 아니라 '회'가 들어가는 단어는 연말·연초 자취를 감춰야 할 상황이다. 송년회(送年會), 신년회(新年會) 등등.


이것 역시 대체어가 마땅히 보이진 않는다. 모이다의 반대인 흩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 중 흩을 산(㪚)을 적용하면 될까. 앞으로 송년회와 신년회의 이름을 송년산(送年㪚), 신년산(新年㪚)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제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모임'이 아니다. 그저 마음만 같이 하면서 흩어져 있는 '모양'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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