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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Nov 07. 2020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묵찌빠'를 하잔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추임새가 힘차다.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산수교과서·네이버 지식백과


처음엔 얼떨결에 손이 나갔다. 가위인지 보를 낸 것 같다만,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안 낸다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는데 누구 맘대로 안 내면 지는 걸까. 최소한 안 내면 진다는 것에 동의를 구하고 구호를 외쳐야 하지 않을까. 구성원들 간의 합의 없이 게임을 주도하는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내뱉는 말이 강압적으로 느껴졌다.


웃자고 하는 게임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냥 넘어가선 안 될 거 같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가위바위보를 할 때 아이에게 물었다. 물론 부드러움을 담아서. 


"안 내면 진다는 건 아빠가 동의한 적이 없는데?"

"가위바위보 게임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다고 상대가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안 내면 진다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

"음. 그러게. 그렇다고 그냥 가위바위보만 하는 건 재미가 좀 덜한데. 다른 말로 한번 바꿔볼까"

/동아시아의 놀이·네이버 지식백과

그렇게 아이와 다른 문구를 고민했다. '딴 따다 딴따 가위바위보'라는 리듬은 살리면서도 상대의 행동을 강제하지 않는,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말은 없을까. 


아이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다. 시간을 끌면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게서 배운 방식이 제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글쟁이 아빠는 진력을 다해 대안 구호를 하나 쥐어짜 냈다. 


"이건 어떨까. '내고 싶으면 낸다 가위바위보!'"


첫째, '안 내면'의 반대는 '내고 싶으면'이다. 게임에 참여한 주체의 의지를 존중했다(고 자부한다). 일단 한 구절은 해결. 

둘째, '진다'는 어떻게 바꿀까. 반대말 '이긴다'를 쓰면 안 된다. 가위바위보를 내는 것만 해도 이겨 버리면 참여자 모두가 승리하게 됨으로써 게임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 대안은 그저 '낸다'다. 


리듬도 비슷하다. 내고(안) 싶으면(내면) 낸다(진다)로 박자가 맞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도 있다. 

"자 같이 한번 해볼까. 내고 싶으면 낸다 가위바위보! 내고 싶으면 낸다 가위바위보!" 


아이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래, 아빠 이걸로 하자"


그 뒤로는 아이도 아빠와 묵찌빠를 할 때면 이 추임새를 쓴다. 물론 아이가 또래들과 할 때는 여전히 "안 내면 진다"다. 어쩌다 한 번씩 나와 할 때면 아이도 습관적으로 "안 내면 진다"로 시작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아니, 아빠 걸로 하자"고 말한다. 


별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한 번쯤은 무심코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오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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