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승려와 관련된 논란으로 '풀소유'라는 말이 부상했다. '가득하다, 빈공간이 없다'는 뜻의 풀(Full)이 소유(所有)와 결합했다. 세간에선 '무(無)소유'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무한(無限)소유'라고도 부른다.
/Daum 어학사전
승려를 향한 비난이나 평가와는 별개로, 풀소유는 많은 것을 음미하게 한다. 그동안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럿 있었지만 풀소유는 완성형에 가깝다는 점에서 그렇다. 욕망을 가장 안정감 있게, 전방위적으로 나타낸다고나 할까.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이나 '로또' 등과 비교해 보면 의미 차이가 좀 더 확실하다. 일확천금은 '단번에 천금을 움켜쥔다'는 뜻이다. '힘들이지 아니하고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을 이른다. 금 하나가 얼마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대략 1돈(3.75g, 약 25만1700원)이라고 한다면 천금(1000금)은 2억5170만원이 된다. 1돈보다 더한 금이라면 천금의 가치는 훨씬 뛴다.
복권 이름인 로또는 어느덧 '로또 맞았다, 로또 청약, 로또 분양' 등과 같이 일확천금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일확천금이나 로또 모두 '공들이지 않고 한 번에 이익을 얻는다'는, 즉 부를 수확하는 과정까지도 뜻에 담겨 있다. 반면 풀소유는 어떤 방식으로 그 소유를 획득했는지 과정은 생략됐다고 보는 게 옳다. 대신 결과적인 상태에 가깝다. '빈공간이 없다, 충만하다'는 뜻처럼 사방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된 부의 상태를 의미한다. 단어 어감이 개인적으로는 왠지 영구적이면서도 지속성 있는 느낌으로 와 닿는다. (물론 부는 영원하지 않다.)
full이 들어간 단어가 많지는 않다. 한자어와 결합한 '풀가동'이나 스포츠에서 주로 쓰이는 '풀세트' '풀스윙' 정도가 생각난다. 누군가는 수영장이 갖춰진 숙박을 뜻하는 '풀빌라'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풀빌라에서 사용된 단어는 '풀(pool)'이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숙박을 하는 일반인들은 풀빌라를 '모든 것을 갖춘 시설'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풀(Full)빌라'가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에서 한때 머무는 풀빌라가 한시적이면서 일시적인 느낌이라면 풀소유는 이와도 대비된다.
풀소유가 이렇게 화제가 되고 앞으로도 줄곧 사용된다면 언젠가 사전에 등재될 날도 오지 않을까. 욕망을 나타내는 단어의 끝은 어디일까. 풀소유보다 더한 말이 등장할까. 과거보다 삶이 편리해지고 가진 것이 많아진 오늘날에도 그런 걸 보면 욕망을 대변하는 단어는 또 나올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소유'가 등장하면서 '무소유'도 덩달아 소환됐다. 법정 스님이 말했던 무소유는 '가지지 마라'고 기계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소유에서 오는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에 가깝다. 소유 여부가 마음 상태에 비례하지 않고, 풀소유든 하프소유든 무소유든 자족할 줄 안다면 누구나 무소유의 마음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진 게 적다고 무소유로 즉각 연결되지 않는다. 쪼들려도 자족하는 사람, 오히려 돈에 집착하는 사람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마찬가지로 가졌어도 돈독에 오른 사람, 오히려 돈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기생충에 나온 유명한 대사, "'부잔데 착해'가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 거지"도 이런 맥락이다. 무소유의 마음 상태만큼은 칼로 무를 베듯 가진 자, 못 가진 자로 기계적으로 나누긴 어렵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가진 자는 탐욕적이라거나, 못 가진 자가 옳다거나 하는 선동. 또 남들에겐 소유가 행복이 아니라고 설파하면서 정작 자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풀소유를 구축하는 이중성이다.
그나저나 승려라는 단어는 '불교의 출가 수행자'를 뜻한다. 이 뜻풀이에서 사용된 출가는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성자(聖者)의 수행 생활에 들어감'을 말한다. 이번 논란에서 누군가는 승려의 다양한 활동도 비판하던데, 그 부분은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유형의 승려가 많아지면 '출가', '승려'의 사전적 의미는 바꿔야 할 것 같다. 특히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이 부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