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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Nov 07. 2020

외부 음식 반입 금지

여름 휴가 때의 이야기다. 맛집이라고 떠들썩한 어느 식당에 찾아갔다. 맛있다는 집에 가면 으레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마련. 얼마나 맛있기에 리뷰가 이렇게도 많이 달렸을까. 


식당에 들어가 설레는 마음으로 후다닥 주문을 마쳤다. 메뉴판에 눈길이 팔려, 주문하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곧이어 후회가 밀려왔다. 벽면 가득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안내 문구 때문이었다. 문구가 많은 건 그렇다 치고, 하나같이 금지어였다. 

'외부음식 반입금지'


이 문구도 거슬리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식당이나 카페에 붙어 있기에 백번 양보해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국물 추가 안 됩니다' '물수건 사용 안 합니다'
'미성년 주류 판매하지 않습니다' '함께 자리한 미성년 술 주지 마세요' '청소년에게 주류 판매 및 음주 금지' 
'난동부리지 마세요'
'000앞 주차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우산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에어컨) 절대 건들지 마세요' 
'어린이 동반 손님께선 소란에 대해 엄격히 관리 부탁합니다'


먹기도 전에 체할 것만 같았다. '하지 마' '안 돼' '왜 난동 피고 XX이야'라며 밥 한 그릇 먹는 손님에게 무한 핀잔을 주는 것만 같았다. 왜 미리 발견하지 못했을까. 맛집이라는 간판에 눈이 멀어, 주문하기 급급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진작 봤다면 미련 없이 나갔을 텐데, 주문한 음식이 아까워 일단 기다렸다. 


음식이 나왔고, 역시나 별로였다. 나의 편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맛에서 자연스러움보다 인공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넛지

가게 주인이 베스트셀러인 '넛지'(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리더스북)라도 읽어봤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을 가진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공항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인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새는 소변량을 상당 부분 줄인 넛지에서 소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소변 흘리지 마'라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효과가 좋을뿐 아니라, 그 안내 문구를 보는 사람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한다. 

/화장실 문화 시민 연대

우리에게도 공공 화장실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 문구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가 있지 않은가. 


'맛집'이라 불리면서도 실제로는 아닌 것 같은 저 식당이 문구를 좀 바꾸면 어떨까. 금지어를 권유형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외부 음식은 외부에서, 내부 음식은 내부에서'
'국물을 더 드실 분은 추가 주문 부탁합니다' '위생을 위해 물수건 대신 화장실을 이용해주세요'
'술은 어른 돼서 드세요~' 
'난동 피우실 분들, 경찰서가 바로 옆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000앞 주차하시면 밥 먹다 말고 차 빼야 할 일이 생겨요.ㅠㅜ'
'우산 두고 가시는 분들, 좋은 곳에 쓸게요'
'(에어컨) 온도 조절 필요한 분들, 푸처핸섭'
'어린이가 뜨거운 국물에 다치지 않도록 신경 잘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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