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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Nov 12. 2020

"후문 있습니다"가 주는 강렬함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능력도 대단하지만, 상대방이 열을 떠올릴 정도로 강렬한 하나를 던지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몇 해 전 출근길에서 24시 성인용품 가게 앞에 세워진 선간판 문구를 보고 그런 짜릿함을 느꼈다. 


후문 있습니다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섯 글자에 불과했지만, 이 한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가 줄줄이 사탕처럼 연이어 떠올랐다. 


'정문으로 들어오는 게 좀 꺼려지시나요?'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이시나요?'

'후문으로 들어오면 남들 시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연인과 같이 구경하고 싶은데 들어오길 민망해하나요? 후문이 있다고 알려줘 보세요' 




누군가는 이 문장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성인용품점이 뭐 어때서 저런 문구를?'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지 못하는 걸 보니 우리 사회 미풍양속엔 맞지 않는가 보군'




혹자는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 


'뭐가 있기에 저렇게 후문까지 광고하면서 들어오라고 하는 걸까. 한번 들어가 봐?'


사실 나 역시 간판으로만 성인용품점을 접했고, 아직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화재나 안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까. 


'후문 대피로가 잘 마련돼 있나 보군. 안심하고 들어가도 되겠네'




이런 갖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명문장'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궁하면 통한다'고 아마도 생존 전략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성인용품점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대중적인 상점은 아니다.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렇다.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곳이다. 주인 입장에선 그런 거리낌을 해소하는 것이 일차 과제였을 것이다. 가려운 곳을 긁지 않은 채 그저 '좋은 상품 있어요'라고만 내걸면 손님들을 유인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님을 끌자고 '당신의 밤을 뜨겁게 해줄 0000'과 같은 19금 문장을 길거리에 내걸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글쟁이 입장에서 봤을 때 척하면 열을 연상케 하는 이런 명문장이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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