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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Nov 22. 2020

"24시간 중 가장 행복한 1시간"

24시간 중 가장 행복한 1시간


2년 전 아이가 태권도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처음 접하게 된 문구다. 우리 동네 도장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24시간 중 가장 즐거운 1시간"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1시간" 등 유사한 문구를 쓰는 태권도장이 꽤 많았다. 처음에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두루 사용하는 걸 보면 특정 태권도장의 브랜드는 아닌 것 같다.


/아이 태권도복에 새겨진 문구


호감이 간다. 압박형이나 권유형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예를 들어 "아이들 튼튼하고 건강하게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권도장에 보내면 아이가 달라집니다" "태권도는 기본, 예의범절도 가르칩니다"라고 했다면 호감도가 반감됐을 거다. 부모 입장에서야 기대하는 바가 있다 해도, 그렇다고 대놓고 홍보하는 건 때로는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처음 저 문구를 본 뒤,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가 도장에 가서 신나게 발차기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실제로 아이는 도장에서 하는 운동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둘째 아이도 몇 달 전 오빠를 따라 도장에 등록했다. 둘째 아이도 신났다. 처음엔 월수금만 다니던 둘째도 어느덧 평일은 매일 오빠와 함께 도장에 간다. 태권도장이 태권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간 중간 에어 바운서, 특별활동 등 여러 이벤트를 했다. 아이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다.


그렇다고 매번 즐거움과 행복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는 승품·단 심사를 앞둘 때면 즐거움보다 테스트에 더 비중을 두고 준비한다. 작년 말 아이가 태권도 심사받는 날, 부모의 통과의례라고도 불리는 국기원에 가 봤다. 심사를 앞둔 무수히 많은 아이가 있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개별 도장에서 관계자 참관 하에 녹화하고 나서, 국기원에 보내 심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들 녀석이 그렇게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태어난 후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들 녀석의 생애 첫 테스트의 결과물


그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심사를 무사히 마쳤다. 몇 주 뒤 품증을 받아들었을 때 아이가 기뻐하던 모습이란. 아비 된 입장에서도 가슴 벅차오름의 순간이었다. '그게 뭐라고 참'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진짜 뭐긴 뭐구나'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생애 첫 공식 테스트를 통과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많은 테스트를 받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치르는 각종 시험은 물론이고, 이름도 외우기 어려울 정도의 온갖 진학을 위한 테스트들. 진로를 학업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정하더라도 어느 곳이나 치열한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뿐인데도 주변에선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느니 '왜 아직도 영어를 안 시키느냐'느니 내 귀를 팔락거리게 할 만한 별별 이야기들이 들린다.


우리 부부는 먼저 나서서 아이에게 권하지는 않는 스타일이다. 아이가 뭔가에 관심을 보이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 부부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아이가 24시간 중 상당 부분을 어떤 테스트를 위해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 부디 24시간을 통으로 압박받지는 않았으면 한다. 1시간쯤은 숨통을 트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비가 1주일에 한 번씩 공을 차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듯 아이도 그런 취미나 여가를 선용할 줄 알았으면 한다. 그때 "24시간 중 가장 행복한 1시간"이라는 문구가 생각이 나기를, 아이에게 의미 있는 문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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