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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Dec 29. 2021

111 달리기를 시작하려니

볼리비아 카라나비 에스페셜

 선율이 자아내는 고요한 음률이 좋다. 살짝 눈을 감고 듣는다. 베토벤 환희의 송가다. 거룩하고 엄숙하다. 연말 분위기에 적절한 음악이다. 얼음이 얼었고 회색 하늘이다. 짚으로 허리를 싼 나무 두 그루가 몹시 추워 보인다. 푸를 때는 여유 있고 우아한 자태의 나무였는데 지금은 마르고 누렇다. 몸에서 물기가 줄어드는 내 몸을 닮았다. 몸이 왜 이런가 싶다. 빠릿빠릿 움직여지지 않는다. 돌덩이가 달린 듯하다. 런 날은 중미 커피가 어울린다. 낙엽 타는 냄새가 섞인 커피 냄새가 좋다. 깊이 느끼려고 원두 봉지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신다. 역시 좋은 냄새다.


 새해부터 달리기를 하려고 한다. 전문 용어 마라톤이라고 한다. 는 작가 중 마라톤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키와 김연수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마라톤 예찬은 글 속에서 만났다. 하루종일 매일매일 달려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달려서 친구 집도 찾아가고 달리면서 빵을 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했다. 먼 데까지 달리면서 를 돌아보고 살아온 시간을 더듬어 봐도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더없이 좋은 햇살 아래를 뛰어도 좋고 빗소리 통통거리는 질척한 거리를 무겁게 달려도 기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찬바람을 등지고 편히 달리거나 가슴으로 흠뻑 맞으며 달려도 개운할 것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도 좋고 시끌벅적한 도심도 괜찮다. 여하튼 달리기는 여러모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음이 투명해질 것이라 여긴다. 먼저 러닝화를 사야겠다. 학교 운동장 트랙을 돌며 호흡을 익히고 묵묵히 뛰는 연습을 해야겠다. 다리에 남는 기분 좋은 피로와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해 소망 하나 넌지시 적는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 계절의 미묘한 변화를 충분히 느끼는 감각을 제대로 유지하며 살고 싶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마음이 욱신거리고 힘든 일을 만나도 참으며 봄날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웃으며 살겠다고 말한다. 생의 유한함을 가까이서 배운다. 따뜻하고 즐거운 사람이 오래 기억됨을 안다. 질척거리지 않 사람으로 남겨지는 것이 인생의 좋은 성적표임을 믿는다. 더없이 좋은 사람은 되기 어려워 변함없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늘의 커피는 볼리비아 카라나비 에스페셜. 고소함이 뚜렷하다. 쓰고 밀어내는 신맛보다 밝은 단맛이 있다. 따스함과 포옹력이 있다. 쌀쌀해 보이지만 지내보면 따스한 마음이 있는 사람 같다. 마음이 푹 놓이는 부드러운 단맛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콤한 과자, 짭조름한 오징어 땅콩, 폭신한 카스텔라를 곁들이면 고요한 감동까지 온다. 참으로 맛있다는 뜻이다. 랑팔랑 나부끼거나 날아오르는 모양이 가벼움을 표현하는 '표표하다'는 단어가 울리는 커피다. 연말의 시간이 간다. 새해의 시간이 온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이 궁금할 때 안부를 날리자.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하나하나 꼽아보자. 해가 바뀌면 달라지는 것들을, 해가 바뀐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을 말해보자. 찬찬히 얘기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에 든 것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인생의 유한함을 가까이서 만났다. 안달복달보다 차를 우리고 커피를 내리자. 커피 향기 속에서 할 줄 아는 것이 그다지 없어도 잘하는 것이 별로 없어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기로 하자. 올해는 이렇게 정리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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