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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Dec 31. 2021

112 연말과 새해의 경계에서

엘살바도르 핀카 엘 바바로 파카스 옐로 허니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축제 같은 분위기 없는 쓸쓸한 풍경이지만 모두에게 '해피 뉴 이어', 차분한 목소리로 전한다. 마지막 날의 페이지를 덮으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 눈을 감고 같이 는 것이다. 커피 이름을 맞혀보자. 즐겁고 맛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첫맛이 어떤지 말해보자. 첫맛으로 어느 대륙 커피인지 알 수 있다. 그다음은 쉽다. 대륙별 분류가 가능하다면 같은 대륙 군에 있는 국가별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중남미 커피를 완벽하게 찾아낸다. 희한하게도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를 쉽게 구분하신다. 피 이름은 모르지만 커피가 내는 맛을 근사하게 설명하신다. 지난여름 커피집에서 아이스로 마실 때 말씀하셨다. 이 커피는 연기 내가 나고 해가 지는 것 같구나,라고! 정확한 표현이다. 과테말라의 기본 특성을 한 번에 느낀 것이다. 과테말라에 대한 이보다 간결한 설명이 어디 . 소녀 감성 가득한 분이다. 손가락은 꼽고 허리는 휘어 불편하지만 말씀은 온화하고 특히 발음은 아주 선명하며 목소리가 강단지다. 오히려 내 발음이 웅얼거린다. 좋은 게 너무 많다, 말씀하시는 분이니 어찌 젊지 아니하겠는가. 이가 든다는 건 주름이 늘고 삶의 무게에 짓눌린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분이다. 덕분에 올해를 보내는 내 마음은 가볍고 기쁘다. 끝으로 오늘은 여차저차 소식을 전하지 않던 친구에게 장문 문자라도 날려야겠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에 미끄러진 마음을 이제 제자리에 놓아야겠다. 끼지 말고 퍼주고 줄 수 있는 거 다 주고 올해를 보내야겠다.


 새해에는 노력으로 얻어진 것들의 가치를 믿고 수고로움을 거듭 계속해야겠다. 담하게 차분하게 각박한 세상을 편안히 받아들여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결론이 뻔히 보이지만 그럼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마시는 커피다. 나른하게 늘어진 뇌에 활기를 준다. 과하지 않게 우아하다. 친근감과 중후감 그 사이에 존재한다. 상큼하기도 발랄하기도 하지만 가볍지 않다. 얼음 동동 차갑게 마셔도 좋다. 군고구마를 곁들여 같이 마시면 포근포근 기가 막히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만족할 것이다. 입에서 살살 녹는 단맛에 마음의 철벽도 스르르 사라진다. 눈을 감고 커핑을 하면 그 커피만의 차별화된 향미의 요소를 발견한다. 산미, 밸런스, 균형감, 뒷맛, 바디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원두의 마른 향과 물을 붓고 내린 원두의 향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섬세한 혀를 가지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조금만 집중하면 된다. 새해에는 까다롭게 말고 섬세하게 삶의 무게를 고르게 분배하여 잘 달리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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