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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Jan 06. 2022

114 충만한 삶을 바라건만

콜롬비아 로스 알페스

 하루키가 말했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 -  이것은 일이다. 비평가는 그에 대해 쓴다 - 이것도 일이다. 그리고 하루가 끝난다. 각기 다른 입장에 있는 인간이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사를 하고, 그러고는 잔다. 그게 세계라는 것이다."

 자의 일을 끝내고 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사를 하고 그러고는 잔다, 참 서늘한 문장이다. 일상을 이보다 간결하게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우쭐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하도 당연하고 밍밍 무의식의 리추얼. 그럼에도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보이는 문장이 아닌가 다. 무성한 풀과 나무 사이를 걸을 때 바짓단을 스치는 부드럽고 순한 물기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담담하다.


 불가해한 것이 삶이고 불확실한 것이 마음이라지만 나눠 먹고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하며 살던 두 사람이 헤어진다는 것은 첫눈에 반해 변치 말자며 약속하던 시간보다 어렵다는 걸 말하는 네가 하도 힘들어 보여 힘이 든다. 라도 해 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으니 그것이 답답하다. 쉽지만 어려운 이야기라며 네가 해주는 말을 귀 담아 듣는다. 타의에 의해 변하기 전에 달라져라, 마지막까지 몰리기 전에 먼저 달라져라, 네가 하는 말이다. 늘 어렵다.  집중력이 사라지고 억이 들쭉날쭉하고 방금 일도 잊는  경우가 많아서 더 어렵다. 떠들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혼자 조용하고 멍하다. 신의 일부를 가리고 자기 세계에 빠졌다. 햇빛을 가린 분홍 커튼이 사르르 흔드리는 모습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네가 슬퍼 보이는 건 당연한가. 상처받고 배신감 느끼는 마음은 주고 싶은 마음이 아서 이고 그건 너를 더욱 아프게 한다.


 오늘의 커피는 뜨겁지 않고 따뜻하다. 그윽한 향기는 달달하고 편안하다. 스산해진 마음을 붙잡는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보인다. 쌀떡처럼 쫀득하게 감기는 감칠맛이 있다. 숱한 상념들을 산뜻한 신맛이 가라앉힌다. 탁월한 테이스팅 능력이 없어도 감지할 수 있는 맛이다. 적당히 좋아, 라는 표현을 하면서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마음을 부른다. 게 이어지는 과일 맛의 여운이 근사하다. 불타는 듯한 한 때의 열정이 사라진 후 아주 많은 마음과 상처와 삶의 흔적들이 갈색빛으로 남은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닮은 커피다. 콜롬비아 로스 알페스. 없어서 곤란하지 않다면 필요 없는 것이라 말하는 담백한 커피다.  커피를 마시노라면 정확하고 섬세한 웃기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슬픔이 넘칠 땐 차라리 웃어버라, 그리 말하는 커피다. 과묵하진 않지만 말이 신중하고 행동이 잔잔한 사람에게 건넨다. 설령 삶이 밤일지라도 앞을 보고 걸어갈 수 있다면  괜찮다 하는 네게 준다. 우리, 씩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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