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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Jan 13. 2022

117 매일매일 폭신폭신한 마음이 머물길

코스타리카 돈 미구엘 게이샤

 어른도 꾸중을 듣는다. 누구한테서든 꾸중을 들은 날은 기분이 좋지 않고 마음이 무겁다. 숫자로 보이는 나이가 몇십이라 해도 꾸중은 꾸중인지라 불편한 마음은 남는다. 다정스럽던 부모님께 야단을 맞으면 슬프고, 친한 친구한테서 지적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다. 오래 같이 산 사람이 전후사정도 모르면서 팩트체크를 하면 그때는 섧다. 야속한 마음에 눈물자국을 손등으로 비비고 후드 달린 패딩 재킷을 입고 강변으로 나간다. 클한 분노의 원망을 어쩌지 못해서다. 금세 얼굴빛을 바꾸기도 민망하니 자리를 피한다. 시 찬찬히 생각해 보라며 사정하기 싫다. 득력 없다. 르는 상태에서 오해하면 모질어진다. 나고 약한 사람이 된다. 사과도 소용없다. 괜찮지 않다. 바람이 차서 사람이 별로 없다. 너무나 조용하고 아무 소리도 없는 듯하다. 고가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소리만 크게 들린다. 잠시 딴 세상인 듯 낯설다. 자만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사람처럼 강변을 서성이다 눈이 마주친 청둥오리에게 인사하고 돌아온다.


 사람과 마주 보는 것이 괜스레 불편하다. 눈을 마주쳐야 마음이 읽히고 얽힐 텐데 바라보는 것을 피하고 싶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인해야 하는데 거리를 둔다.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기회를 피하는 셈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다 옳지 않음을 안다. 내 판단을 마지막으로 미루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이 바르다는 것도 안다. 그것이 현명한 소통이 맞다는 것도 물론 안다. 단지 지금으로선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다. 크든 작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함도 알지만 지금은 따뜻한 마음을 식히는 중이다. 외로운 섬처럼 거리를 둔다.

 

 오늘의 커피는 코스타리카 돈 미구엘 게이샤.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는 커피다. '이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었네' 하는 밑바닥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마음에 담은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를 준다. 상황이 좋지 않아도 그다지 속상하거나 조급해지지 않는다. 하거나 어두운 면을 봐도 실망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않은 서로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백하게 뱉을 수 있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족한 게  뭔가 생각하고 고치려고 시도한다. 부드럽게 단단하게 관계가 회복된다. 신을 가치 있고 소중히 생각하게 된다.


 코스타리카 돈 미구엘 게이샤는 콩알이 굵직하다. 적절히 볶인 원두를 부드럽게 갈아서 클레버로 내리면 환하고 달달한 과일향이 난다. 어둡거나 약한 쓴맛 대신 기분 좋은 카카오 쓴맛이 난다. 맛의 균형이 적절하다. 달달하고 쌉쌀하다. 고소하고 서늘한 부드러움이 있다. 홀연히 부는 바람처럼 시원한 맛이다. 뉘엿뉘엿 저물 무렵의 산 허리에 걸린 태양색 커피다. 커피 이야기로 꽃을 피워보자. 오늘도 나는 내가 읽고 싶은 거 말고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거나하게 마신다. 럼 준비 땅, 오늘의 커피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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