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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Jan 15. 2022

119 파도와 고래가 마신 커피

커피 명가 - 슬도, 아메리카노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물결에 거리두기 시국인지 의심스럽지만 그 인파 속에 나도 같이 흐르는 중이라 달리 할 말은 없다. 방어진 슬도라 불리는 그곳에는 새끼 업은 고래상이 있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슬도 등대가 있으며 소리체험관이 있다. 슬도(瑟島)는 거문고 슬과 섬 도를 쓰는데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대중공업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빨간 등대가 떡하니 서 있다. 젊은 연인들의 포토존이다. 슬도에는 현대중공업에서 만드는 화물 선박들이 까맣게 떠있어 삭막하고 그악스러워 보이지만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은 섬에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는 슬도명파(瑟島鳴波)라 하여 시원하고 울림이 좋다. 드문드문 차박하는 차들과 낚싯대를 펼친 강태공이 눈에 띈다. 켜켜이 쌓인 파도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오래 살아온 다양한 수종들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들린다. 특히 파도와 고래가 한동안 매일 저녁마다 주거니 받거니 했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오늘의 커피는 커피 명가 슬도점 아메리카노. 사람들이 모이는 유원지 카페라는 생각에 맛이 허술할 것이라 단정했다. 기대하지 않고 마신 커피에서 색다른 맛의 감동을 받았다. 커피 명가의 아메리카노는 브라질 세하도와 콜롬비아 수프리모, 그 외 무엇이 더 섞인(3종의 블렌드 원두라는 표현에서 추측함)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서 곱게 분쇄한 뒤 고온 고압으로 추출하여 뜨거운 물을 섞어서 준다. 은은하게 묵직하게 기분 좋은 단맛이 느껴진다. 살짝 쓴맛 뒤에 혀에 감기는 깔끔함이 좋다. 잘 구운 아몬드의 고소함과 밀크 초콜릿의 부드러운 바디감이 다. 유명 로스터리 카페에 뒤지지 않는 한 커피를 만든다. 잔향까지 구수하고 향긋한 맛에 섣부른 내 판단이 무색하다.


 살다 보면 답답한 일이 이어질 때가 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부딪힐 때 그렇다. 불편한 마음의 간격을 조금씩 줄여나가야 한다. 누가 해결책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나는 난처하고 심란함이 동반될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카페로 가 혼자 있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쭈뼛쭈뼛 보다가 책도 읽는다. 한참 그곳 사람들이 하는 풍경을 지켜보면 심각함이 슬렁슬렁 어디론가 걸어가고 없다. 사뭇 경건해진 마음으로 돌아온다. 다시 순조롭게 일상으로 흘러간다. 쉽게 끓고 금세 식는 내 마음을 커피 한 잔으로 다룬다. 역시 커피는 마음의 여유와 연결된 마법의 음료다. 그러므로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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