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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Jan 23. 2022

124 달달한 케이크는 없지만

엘살바도르 아파네카 이사벨

 사람들과 싸다니고 싶은 날이다. 마스크 쓴 사람들이지만 거리에는 왁자하니 흥성흥성 소리가 넘친다. 살뜰했던 동무들을 불러 장 보러 가자고 떼쓰고 싶다. 오늘은 우리 동네 장날이다. 역 앞에 길고 넓은 큰 장이 선다. 3, 8 숫자가 든 날이 장날이다. 장에 가면 먼저 호떡을 산다. 검은 설탕이 진득이 든 호떡을 종이컵에 담아 야금야금 베어 물며 이야기도 하고 기웃기웃 구경도 한다. 털 달린 옷에 설탕물이 묻어 끈적해진다. 물티슈로 닦아도 털은 서로 엉겨 붙어 모양새가 없다. 마스크를 올렸다 내렸다 하니 코 끝이 간질간질하다. 주부 셋이 호떡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어눌하고 단정치 못하지만 마음은 소풍 나온 듯 홀가분하다. 별것 아니지만 재미있고 삶이 단순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해 성실해 잘 살아야지 하는 고백까지 하게 된다. 겨우 따끈하고 끈적한 그 호떡 하나 때문에. 장에서 걸어 다니며 먹는 호떡은 맛이나 식감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시끌시끌한 이야기를 귀동냥하고 기름솥에서 몸을 꼬며 튀겨지는 꽈배기를 보며 설탕을 묻혀 먹을지 그냥 먹을지 고민하는 우둔한 일이다. 우둔한 일을 버벅거리며 하는 동안 무기력한 마음은 기름솥에 튀겨져 다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하는 힘 아닌 힘을 얻는다. 하얀 설탕 듬뿍 묻은 꽈배기는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몫이다.


 오늘의 커피는 엘살바도르 아파네카 이사벨. 매일 정성으로 원두를 동네 카페에서  것이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서 샀다. 그 서점은 책 말고도 다양한 것을 판다. 액세서리, 음반, 문구류, 심지어 커피까지 판다. 서 검색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어 구매했다. 200g, 예쁜 봉지에 들어 있다. 최근에 로스팅한 것을 받았다. 오렌지 향이 나지만 산미는 그다지 없는 엘살바도르 커피다. 여름 향기처럼 시원하고 파워풀하다. 평탄한 쓴맛에 고소한 견과류 맛이 가미되어 차분하고 안정감 있다. 한 입 두 입 마시면 두둥실 떠오르는 마음이 된다. 보온병 가득 담아 늘 서서 일하는 친구에게 보내고 싶은 커피다. 매일매일 바쁘고 힘들지만 그럴수록 휴식은 필요하다며 짬짬이 쉴 때 마시면 좋겠다는 쪽지도 붙여서 보내고 싶다. 나른한 몸과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마음에 쉼이 되길 바란다며 한 줄 더 써야지. 밋밋한 우리 일상에 휴식 같은 커피다. 쓸쓸하고 울적한 날이 더 많지만 겉으론 웃으며 지내는 대견한 친구들도 같이 마시면 좋을 커피다. 서로를 공격해대다가도 내일도 고단한 하루가 될 테니 오늘 밤은 푹 쉬도록 하자, 그런 따뜻한 말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부부 같은 마음이 있는 커피다. 끝으로 낮이나 밤이나 늘 붙어 다니는 단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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