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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Feb 11. 2022

134 당신은 지금 '전성기'

과테말라 후에후에테낭고 아띨라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같은 밤이 같은 나무를 희게 물들인다.

그때의 우리, 이제는 똑같지 않다.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가장 고통스러운 젊은 날의 열정이 깃든 시집이라며 민음사에서 개정판을 광고다. 우선 버건디 바탕 위에 노랗게 익은 들판 같은 글체가 눈을 당다. 전면을 채운 훤한 얼굴 사진에 반해서 시집을 샀다. 진짜 훠언하게 생겼다. 장바구니에 담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일 때 작가의 얼굴은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는 데 영향을 준다.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저절로 딸깍한다. 얼굴 생김이 내용을 뛰어넘는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정현종 옮김 민음사. 43쪽에서 몇 줄 옮긴다. 사랑의 시와 절망의 노래, 젊음이라 부르자. 위로받고, 격려받고, 용서받고, 세상이 회색빛이었을 때 마음 깊이 나누던 모든 행위를 사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가 들었다. 늘 시는 어렵고 사랑은 더 힘들다. 태생적으로 부정적이고 불평불만이 많은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밝은 감정만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나가버린 것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마음 한쪽이 터져버려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지금 이 순간이 더 좋다. 마음이 짠하고 암울한 지금이 살아있는 순간이라 여긴다. 시를 읽는 것은 지루하고 심심하다. 어렵기도 하고 덜어내고 집중해야 한다. 진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짚어내야 하는 시 읽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헛손질 헛발질이 계속된다. 시를 잘 모르기에 더 어렵다. 구차한 변명과 열등감으로 뒤틀린 심보를 한 줄 시로 다듬는다.


 연한 겨울빛을 붙잡고 커피를 마신다. 포실포실 구멍 숭숭한 데운 우유의 고소함이 가득하다. 오늘의 커피는 쌉쌀한 브라질너트의 꺼칠함이 느껴지는 쓴맛이다. 조금 무겁고 스파이시하다. 난해한 시와 가버린 스무 살의 기억이 과테말라 후에후에테낭고 아띨라에 섞인다. 가득한 오렌지향으로 남는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는 지금,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어 불안하다. 불쌍한 나를 맡길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의연히 버틴 시간이 무용지물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지원군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보낸 시간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내 속에 쌓인 빛나는 것이 있을까 질문한다. 간신히 사는 데 익숙해졌는데 다시 서툴다. 오늘의 커피는  싸하니 청량해지는 향기가 좋다. 버거운 쓴맛이 막연한 불안을 녹인다. 울적하기까지 한 텅 빈 마음을 시와 커피가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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